그런데 궁금하다. 독재 정권이 몰락하고 민주 정권이 들어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지. 24년간 지속되던 독재 정권에 동조하여 호사를 누리면서 국민들을 억압한 인사들은 죄값을 치루게 되는 것인지. 그들을 뒷받침하던 국가 인프라와 가난에 시달리던 국민들은 하루 아침에 잘 살게 되고 모든 이들이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인지...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 좀 해보자,라는 루마니아 영화 두 편이 작년 초에 개봉된 바 있다. 하나는 부카레스트 혁명 당시 우리 마을도 혁명에 참가했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 TV 에서 우스꽝스런 토론 장면으로 웃음을 준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쟁쟁한 거장들을 제치고 2007년 60회 깐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알려지게 된 크리스티안 문쥬라는 감독이 연출한 <4개월, 3주... 그리고 2일> 이라는 영화다.



차우셰스쿠 집권 당시인 1960년대 후반의 루마니아는 출산율이 매우 낮았다고 한다. 이에 차우셰스쿠는 집권하자마자 강압적인 출산율 촉진 정책을 사용하는데, 피임기구를 수입 금지하고, 출산하면 애국자라 규정하고, 아이를 많이 낳으면 세제 혜택을 주고, 그리고 임신중절을 금지시켰다.

출산율은 급증하긴 했지만 몇년 되지도 않아 출산율은 다시 내려갔고 4년이 지난 후에는 출산 촉진 정책 시행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더니 이후로는 조금씩 계속 떨어졌다고 한다. 출산을 하지 않기 위해 피임기구를 밀수입하고 병원이 아닌 곳에서 불법 낙태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불법 시술은 당연히 산모 사망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영아 사망률 또한 급증했다고 한다.

국민들은 식량 및 생필품 부족에 허덕이는데 정부는 아이를 많이 나으라고 하니... 일자리도 부족하고 육아 시설도 부족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고 바로 고아원으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아니면 비싼 대가를 치루고 또는 목숨을 걸고 태아를 지우거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엉터리 출산 장려 정책은 당연히 국민들의 분노를 키울 수 밖에 없었고, 차우셰스쿠 정권이 몰락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폐지한 법이 임신중절 금지법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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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3주... 그리고 2일>는 차우셰스쿠 정권이 막을 내리는 1989년의 2년 전인 1987년 대학교 기숙사를 배경으로, 즉 2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그러고 있었던 것. 주인공 오틸리아가 같은 방에서 함께 지내는 다소 철없어 보이는 대학교 기숙사 룸메이트 가비타의 불법 낙태 시술을 돕느라고 하루종일 정신없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잡힐까 불안하면서도 수치와 분노를 이를 악물며 참아내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어쩌다보니 임신을 하지만 키울 능력이 안되는 가비타는 성행하던 낙태 불법 시술을 결심하고 수소문한 다음 시술자를 물색하고 호텔을 예약한다. 그러나 실제 호텔을 찾아가 확인하고, 시술 비용을 빌리고, 시술자를 만나 약속을 잡고 심지어 시술자와 시술 비용을 흥정하는 것까지 모두 오틸리아의 몫이다. 더군다나 어리숙한 가비타가 시술자에게 임신 4개월 3주 2일을 2개월이라고 속이는 바람에 오틸리아는 수모를 당하고 시술비 부족 대신 요구한 성관계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가 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불법 시술자에게 꼼짝없이 몸까지 바쳐가며 친구의 낙태를 도와야 하는 오필리아의 처지가. 기가 막힐 노릇이다. 독재 정권의 무지한 판단이 루마니아 여성들을 위험천만한 불법시술과 유아이긴 하지만 일종의 살인행위의 노예로 옥죄는 상황이.

영화는 이렇게 오틸리아가 겪는 하루 동안의 스트레스, 분노, 두려움, 불안함, 초조함, 수치심, 그러니까 22년 동안 지속되어 온 루마니아 국민들, 특히 여성들의 스트레스, 두려움, 분노, 수치심을 압축한 다음 오틸리아에 투영시키고 관객들로 하여금 간접적으로 오틸리아를 체험하게 함으로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 동안 몸 속에서 성장한 태아를 몸 바깥으로 빼내는 불법 낙태 시술은 차우셰스쿠 정권에서 살인죄에 해당했기 때문에 시술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거의 목숨을 걸고 인생을 거는 일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루마니아의 여성들은 왜 낙태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 몸 바깥으로 빠진 아주 조그마한 4개월 3주 2일 만에 사망한 태아를 들고 어두운 거리 쓰레기장을 찾아 헤매는 오틸리아의 모습에서 관객은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나는 우선 "국가폭력"을 떠올린다. 그 모든 단초를 제공하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욕구를 인위적인 제도와 장치로 억압하여 눌렀을 때 그 부작용과 피해를 물러 설 곳 없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피해자 또한 국민일 수 밖에 없다. 두번 죽인다, 라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다. 두 여대생과 불법 시술자와의 관계에서 묘사되고 있듯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는 무심하고 냉정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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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에 거스르는 인위적인 교란에 시장 질서는 조작되지도 않을 뿐더러 교란의 틈을 타 발생하는 불법과 범죄의 부작용들은 고스란히 약자의 몫이 된다. 현 정부의 수많은 정책 상당수 역시 기존하는 시스템의 원칙과 질서를 교란시키고 파괴시켜 새로운 원칙을 세우려는 것들인데 기존 원칙과 질서라는 것이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급교란은 필히 부작용을 낳을 수 밖에 없다. 지금 이 나라에는 온통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아니면 그럴 증후가 보이던가.

루마니아는 1989년 독재 정권이 몰락하고 민주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임신중절 금지법을 폐지했다. 그러나 24년 동안 루마니아 여성들은 숨죽이며 불법 낙태 시술을 받아 왔고, 국가의 낙태 합법화 선언 이후에는 엄청난 수의 낙태 수술이 발생하게 되었다. 각종 피임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인위적인 교란의 후유증은 여전히 지속 중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교란 대신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장을 만들어 주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급자 위주의 경제 정책이나 사고 방식은 늘 시장 교란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은 이런저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낙태에 대한 수요는 늘 있게 마련이다. 이 수요에 대한 공급의 원천적인 차단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 자체가 실은 '경제'적이지 못한 사고 방식이겠지. 수요가 있는 상황에서 합법적인 시장을 만들어 주지 않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뻔한 거다. 불법 시장이 판치리라는 것은. 그리고 불법으로 인한 부작용과 피해는 수요자가 떠안게 된다.

"낙태를 틀어 막으면 인구가 늘어나겠지..." 와 거의 동일한 사고 방식에 기반한 경제 및 각종 정책을 마구 쏟아내는 정권이 지금 우리나라를 휩어잡고 있다. 그리고 함께 사는 이웃의 불법 시술 때문에 오틸리아가 겪는 비슷한 부작용과 스트레스와 두려움과 분노와 초조함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중이다. 한마디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2009년 11월 24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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