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ame is Rosetta

OLD POSTS/영화 2013. 12. 26. 23:03


얼마 전 외교부 장관 딸 특채 사건은, 워낙에 상식을 벗어난 일이기도 했지만, 수많은 청년 실업자들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사건이었기에 더욱 큰 논란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싶다.

88만원 세대라고도 불리우는, 취업에 있어서 엄청난 경쟁을 뚫지 않으면 안 되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 대한 논의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 모든 방면에서 좀더 많이 공론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젊은 세대들의 정치, 사회적 세력의 힘이 아직 약한 만큼 문화 쪽에서의 담론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예전부터 보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다르덴 형제의 예전 작품 <로제타 Rosetta>를 DVD로 보았다. 1999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벨기에를 배경으로 일자리를 얻기위해,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서 동정없는 세상과 싸우는 17세 소녀 로제타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거친 핸드헬드 영상으로 로제타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다르덴 형제의 다른 작품들처럼 차갑고 건조하며 사실적이다. 영화에 비쳐지는 벨기에는 우리가 "유럽" 하면 떠올리는 복지나 사회보장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조금의 온기도 없는 냉정한 세상이며, 트럭에서 파는 와플은 더 이상 달콤한 간식이 아닌 노동과 자본이 오고가는 씁쓸한 매개체이다.


수습 또는 인턴 기간이 끝나면서 로제타가 공장에서 해고당하게 되는 첫 장면에서는 아직 어린 그녀가 왜 그렇게까지 공격적이고, 억세고, 거칠기만 한지 의아해 하게 되지만, 알콜 중독인 어머니와 트레일러에서 사는 그녀의 삶의 단면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그 삶의 절박함이 그녀를 공격적이면서 동시에 방어적이게 만들고, 거칠고 투박하게 만들며, 마치 하루하루를 전쟁터에 나서는 것처럼 힘겹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거칠지만 아직 단단하지는 못한 어린 소녀는, 가난하지만 비굴하지 않기 위해서 애를 쓰고, 인간으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엄마를 다그친다. 그러던 그녀가 취업이라는 기회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는 장면에서 인간을 비정하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이 얼마나 무자비한 것인지 실감하게 되면서 마음이 너무나 아파온다. 힘들게 찾은 사람의 온기를 내버리게 만들었던 삶의 절박함은 로제타가 겨우 붙들고 있었던 삶의 의지마저 꺾어버린다. 마지막 장면의 깊은 절망을 느낄 여유도 주지 않고 영화를 끝내버리는 다르덴 형제의 냉정한 태도는 "이건 영화가 아니라 바로 현실이야."라고 말하는 듯 하다. 

다르덴 형제는 이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흔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내었는데, <로제타>가 만들어진 후에 벨기에에서는 십대 노동자들에게 최저 임금을 보장하는 새로운 법안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0년 전 벨기에의 현실은 그곳에서 그치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천유로 세대, 88만원 세대를 만들어 내는 오늘날에 재현되고 있다. 미국의 예를 보자면, Kelly Reichardt 가 연출한 미셸 윌리엄즈 주연의 <웬디와 루시>(2008)에서 알래스카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웬디의 절박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의 예로는 아직 정식 개봉하지 못하고 공동체 상영을 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개청춘>(2009)이 있다.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뻔뻔하고 비정해져 가기만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세계의 수많은 로제타와 웬디들에게 좀더 나은 세상이 오는 것이 가능할까. 영화가 세상을 바꾸는 기적이 좀더 많이 일어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My name is Rosetta. I found a job. I've got a friend.
I have a normal life. I won't fall in a rut.



2010년 10월 2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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