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쯤, "그 장르가 무엇이건 도대체 음악은 어떻게 들어야 하는 것일까, 제대로 듣는 방법이 있을거야" 를 고민하면서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뒤적거리며 한참 본 적이 있다. 한참 어릴 때부터 질리게 배운 피아노와 음악 이론들에 대해 지식 습득 차원에서의 딱딱하고 기계적인 접근방식이 아니라 정말 '이해 Understanding' 차원에서의 접근방식을 찾았던 거다. 기타로 바꾸면서 아마 그 궁금증이 더한 듯 싶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문화-예술의 분야는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작품의 외관상 드러나는 지식의 습득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본질적이지 않다는 거다. 음악? 음악은 일단 텍스트로서 '이해'될 수 없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에 관한 지식을 안다고 해서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그건 그냥 지식에 불과하다. 음악을 '이해'하려면 그 울림이 지금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오래 전에 어셈블리 언어를 가지고 게임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 CPU와 직접 나누는 대화인 기계어보다 한단계 인간의 언어에 가까운 프로그래밍 언어다. 참고로 프로그래밍 언어는 인간의 언어에 가까와질수록 '지식'이 되고 기계의 언어 쪽으로 가까와질수록 '이해'가 된다. 어쨌건 그 어셈블리로 작성한 코드를 디버깅을 하고 에러를 잡고 하는 과정 자체가 CPU 와의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다.

음악도 똑같다. 작곡자와 편곡자는 하나의 음악을 탄생시킬 때도 수많은 디버깅과 에러를 잡아 내면서 점점 공간 울림으로의 형체로 구체화되는 그 음악과 끊임없이 대화한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탄생된 음악을 '이해'하고 싶다면 우리는 그 음악이 만들어지는 언어를 먼저 구사할 필요가 있다. 물론 언어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재능을 타고난 이들. 한참 전자음악에 빠진 때가 있었는데 결국 이것도 하나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인거다.

이해할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경우는 예외로 하고, 언어를 모르면서 음악을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음악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그 음악적 어법, 그러니까 그들과의 대화 기법인 언어를 모른 채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 대단한 착각이자 환상이며 자기를 속이는 기만 행위다. 이 기만 행위에 대한 변명 중 하나가 '취향' 인 것일지도 모른다.

'저질에 싸구려 언어를 사용하느냐, 고급 언어를 사용하느냐'는 인간의 언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일상의 몇 단어만 가지고도 멋진 문장을 만들어 내듯 간단한 코드 몇 개만 가지고도 멋진 음악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현학적 단어는 많은데 결국 개소리인 것처럼 복잡하기만 하고 알고 보면 쓰레기인 음악도 많다. 천부적이건 후천적 노력이건 어쨌건 그들은 그 음악의 언어를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거다. 불행히도 나는 그런 이해의 능력을 타고나지는 않아서 후천적으로 그 언어를 배우려고 했는데 이게 쉽지 않다.

어쨌건 그렇게 해서 읽은 서적 중에 나에게 가장 큰 인상을 준 책은 이거였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Young People's Concerts>와 <The Joy of Music>. 전자는 <번스타인의 음악론>으로, 후자는 <음악의 즐거움을 찾아서> 라고 번역되어 나온 적이 있는데 지금은 구하기가 어렵다. 이것과 비슷한 더 괜찮은 책들이 나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01


<The Joy of Music>은 1959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Young People's Concerts>는 1962년에 출간된 다음 1970년에 내용이 추가되면서 개정이 되었다. 이 책들은 간단히 말하자면 오케스트라에서 어떤 악기들이 그 음들을 왜 그렇게 연주해야 하는지, 두 음이 한꺼번에 울렸을 때 뭐가 어울리고 뭐가 안어울리는지, 왜 이런 악기들이 모여서 연주를 해야 하는지, 교향곡은 뭔지...

등등에 대한 설명을 다양한 음악의 사례를 통하여 하고 있고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음악 미학적인 사고를 일깨우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그 대상은 청소년, 학생, 음악 애호가 또는 음악가까지... 등등 다양하다. 아마도 그 책 내용을 나중에 소개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들은 Leonard Bernstein 이 TV 방송에 출연하여 나같이 음악을 좀더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음악 애호가들이나 학생,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했던 요즘으로 치면 교양 강좌 방송을 편집한 것이기도 하다. <The Joy of Music>는 1954년~1958년 방영된 방송물 스크립트와 음악적 견해에 관해 번스타인이 여러 인물들과 나누는 가상의 대화를 엮은 것이며,

<Young People's Concerts>는 1958년 ~ 1970년까지 미국의 CBS 를 통해서 방영되었던 <Young People's Concerts>라는 프로그램 내용의 일부를 엮어 타이틀 그대로 텍스트로 출간한 것이기도 하다. 이 방송은 오래 전에 EBS 에서 방영되기도 했다는데 그때는 이런 게 있다는 것을 잘 몰랐고, 몇 년 전에 그 방영물 중 25개의 에피소드를 묶어 DVD 박스세트로 나온 바 있다. 이거 나오기 전에 번스타인이 하버드대에서 했던 강의를 엮은 것이 나온 바도 했다.

01


이 교양 다큐의 내용은 대단히 좋다. 아주 오래 전 흑백 화면이기는 하지만 번스타인이 젊었을 시절 청소년을 포함한 대중들에게 음악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는 열정이 보이며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위대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사례로 다양한 음악 이야기를 들려준다.

베를리오즈, 쇼스타코비치, 시벨리우스, 스트라빈스키, 말러 등 비교적 현대음악 및 후기낭만 작곡가들과 그들의 음악 이야기, 소나타 형식, 모드란 무엇인가, 음정, 관현악 사운드, 재즈와 고전의 결합, 선율이란 무엇인가, 인상주의, 음악에 있어서의 유머, 협주곡과 교향곡이란... 등등등 이런 주제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과 번스타인의 해설 강의가 펼쳐진다.

생각같아서는 이 DVD 내용을 쫙 정리 요약해서 이 블로그에 올려 놓고도 싶은데 시간이 허락할지 모르겠다. 어쨌건 책이건 DVD 건 본지가 꽤 되어서인지 거의 기억은 나지 않아 다시 볼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어떨지...


2008년 12월 26일 


Posted by bopboy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