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약 16년 전 쯤 어느날 오전, FM 라디오 음악 프로를 들으며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잠깐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있는 동안 DJ (아마 박원웅?) 는 음악 퀴즈 하나를 냈다. 어떤 음악을 들려 주면서 이 곡에는 두 개의 음악이 섞여져 있는데 그 두 곡의 음악이 각각 무엇인지 엽서에 적어 보내주면 추첨해서 어쿠스틱 기타를 준다면서.

이어폰으로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볼 일을 다 보기도 전 첫 마디 딱 듣고 바로 두 곡이 각각 또렷이 들렸다. 비틀즈의 <Let it Be> 와 파헬벨의 <Canon in D> 를 그야말로 '섞어' 만든 곡이었는데 어렴풋하기는 하지만 물리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이었던 것 같은데 확실치 않다. 비틀즈를 바로크식으로 편곡해서 연주한 음반들은 꽤 나와 있다. Tokyo Solisten 의 <Pops on Baroque> 에서처럼 <Let it Be> 와 <Canon in D> 를 결합한 곡도 있기는 한데, 썩 맘에 드는 편곡은 아니다.

엽서를 구해다가 답을 적어 보냈고, 일주일이 지났다. 잊고 있다가 그 일주일 전에 문제를 들었던 때와 거의 동일한 시간이 되어서 나는 다시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또 잠깐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게 되었고 그 방송을 듣게 되었다 . 엇, 지난 주 퀴즈 정답자 발표. 정답자가 굉장히 많았지만 세사람 뽑겠다고 했다...   일주일 뒤, 나는 기타 교환권을 받았다. 그 기타는 지금은 사망하고 없지만 나 때문에 고생 꽤나 했다. 그나저나 그 음악은 도대체 뭐였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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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헬벨의 캐논은 참으로 많은 음악에서 들린다. 다양한 키에서 유사한 코드 진행과 선율을 따다가 쓰는 경우, 선율을 변주하는 경우, 여러 악기로 재해석하는 경우, 무척 다양하다. 파헬벨의 캐논을 알게 모르게 차용한 음악 중에서 아마도 가장 신나는 것은 Green Day 의 <Basket Case> 일 것이며, 가장 스타일리쉬한 해석은 George Winston 의 변주인 듯 하다. <Basket Case> 백킹이 E key 에서 캐논 진행과 유사하다.

<Let it Be> 는 C-G-Am-F-C-G-F-C 이런 진행이 곡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는데 <Canon in D> 를 C key 로 바꾸면 그 코드진행이 거의 C-G-Am-Em-F-C-F-G 로 <Let it Be> 와 거의 흡사하다. 진행 스타일도 실제로 굉장히 비슷해서 나는 <Let it Be> 를 거의 '팝송 캐논' 수준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또 파헬벨의 캐논 선율을 따다가 만든 것 같은 유명한 곡으로 Bob Marley 의 <No Woman No Cry> 같은 레게 스타일, Blues Traveler 의 <Hook> 처럼 A 키의 유사한 코드진행을 그대로 따와서 감칠맛나는 하모니카에 가사를 붙인 모던 블루스락 스타일, 마찬가지로 직접 따다가 가사를 붙인 Aphrodite's Child 의 <Rain and Tears> 의 고색창연한 락 스타일, 좀 멀리 나가면 U2 의 <With or Without You> 까지도 넣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가요에는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이 있다.

뭐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어떻게 보면 대중음악에서 사용하는 아주 기본적인 코드 진행이기도 하기 때문에 비슷하게 들리는 곡이 넘쳐 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피해가지 못한다면 빚을 지게 되는 것은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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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리지날 버전의 파헬벨의 캐논을 가장 즐겨 듣는 편인데 바소 콘티뉴오의 3성 바이올린 & 첼로 & 합시코드 구성이다. Collegium Aureum (콜레기움 아우레움?) 과 Jean Francois Paillard 의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것을 주로 듣는다. 전자는 정말 바로크 스타일같고 후자는 전자에 기름칠한 스타일이다.


3성의 돌림노래 3자매와 그 기초를 받치며 디딤돌 역할을 하는 저음역대 큰 형님, 3성의 돌림노래가 만들어 내는 긴장과 충돌의 조화, 이것이 참 현실에서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얼마나 튼튼할까?  탄탄한 기초 위에서 3 객체가 경쟁하듯 또는 서로 돕는 듯 공간과 시간을 채워 나간다. 3가지 개성과 스타일이 하나의 주제로 저음의 서포트 하에 경쟁과 상호협동을 위해 만나 엮인다. 이것을 그대로 조직에 적용하면 꽤 근사한 구성이 나올 것도 같다는 거다. 어쩌면 절실히 필요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조직? 난 그런 조직은 타이타닉호의 운명을 맞게 된다고 보는 편이다. (타이타닉호의 침몰 이유의 하나로 모두가 주위를 못돌아보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한 탓을 꼽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를 돌림노래를 부르고 엮어 가면서 경고하고 격려하지 않는 경우, 결정적 순간에는 위험해질 수 있다.

3성에서 하나가 현이 끊어져도 2 성으로도 곡은 유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호모포니처럼 한 성부만이 주제를 끌어가는 경우, 그 성부의 현이 끊어졌는데 나머지 화성의 기능이 제 갈길만 묵묵히 가버리면 어떻게 되나... 글쎄, 이런 문제를 고민하다 보면 이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폴리포니 스타일의 조직이 괜찮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2008년 11월 10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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