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를 다루었다는 점과 임순례 감독에 대한 응원, 그리고 여자 핸드볼 팀에 대한 애틋한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아테네 올림픽 때 준결승과 결승 경기를 실제로 너무 감격스럽게 봤었죠.


한국영화를 보러가면 가끔씩 느껴지는 감정 중에 "낯간지러움"이란 것이 있습니다. 우리 생활 속에 녹아있는 익숙하고 친숙한 행동이나 말투를 극장의 커다란 화면에서 접하게되면, 마치 내 가족의 속내 이야기가 까발려지는 것처럼, 괜히 민망하고 쑥스러운 감정이 들기도 하고... 사실 이 아줌마들의 억척스러움과 고집과 무대뽀는 비교적 낯익은 것들이어서 영화에서 내내 반복되는 그 "낯간지러운" 감정은 솔직히 잘 적응은 안 되더군요.

이 영화는 그다지 새롭지 않은 이미 보아왔던 전형적 캐릭터와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 전개, 온갖 클리쉐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스펙타클 없는 비교적 소박한 드라마입니다.

주인공들은 일생에 도움이 안되는 남편 (또는 경제적 무능이라고 하죠), 이혼, 불임이라는 여성의 아픔을 하나씩 각각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 아픔을, 이것은 어쩌면 지금 이 시대 여성들 대다수의 아픔일 수도 있겠죠. 핸드볼 코트 위에서의 열정의 발산과 그 열정을 공유하는 서로의 우정으로 극복하죠.

이렇게 이 영화는 그 감동적 실화였던 올림픽 핸드볼 결승전이라는 극적인 사건에 여성들의 열정과 우정을 엮어서 하나의 인간 승리 드라마를 만들어 나갑니다.


스펙타클은 없어도 아름다운 드라마가 있어서, 영화를 보는 동안 푹 빠져서 관람했습니다. 배우들 연기와 캐릭터가 잘 어우러졌던 것 같고, 조연들의 코믹한 장면들도 유쾌했으며, 클라이막스인 올림픽 결승전 연장전도 드라마로써는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을 보여 줍니다.

이런 조연들은 영화에서 무거운 주제를 짊어진 주연들의 어깨를 가볍게 하기도 하죠. 진지함 속에 유머가 간간히 살아 있으니, 아마도 이것이 관객을 끄는 힘인가 봅니다. 사무국장 역의 정석용은 안 그럴 거 같은데 한마디 하면 자꾸 웃기고, 엄태웅의 능청 연기도 괜찮더군요. 골키퍼 조은지를 비롯해 조연들의 그 훌륭한 연기가 또한 빛을 발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하나 마음에 안들었던 부분은 음악이었는데, 진부하거나 아니면 생뚱맞거나를 오고간 듯...

하지만, 역시 진짜 현실의 힘과 무게는 강렬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마음이 찡해진 부분은 이 경기를 그때 실제 보면서 정말 너무 감격스러워 했었던 기억이 나면서... 엔딩 크레딧에 나왔던, 그때 그 경기를 실제 뛰었던 그 노장 선수들의 경기 장면 사진들과 임영철 감독의 목멘 인터뷰거든요.

아무리 영화를 잘 만든다 해도 그때의 표정에서 묻어나는 열정과 아쉬움을 표현할 수는 없겠죠.

***

역경을 딛고 어떻게 해서든 근성으로 극복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영화의 소재로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정말 그들이 존경스럽다라는 마음이 들게 합니다. "나도 저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건데..." 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낯뜨거워지곤 하죠.

이 영화의 제목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인 것도 아마 "당신은 지금 인생의 최고의 순간을 만들고 있냐" 고 묻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극적인 드라마가 있건 없건, 은메달을 따든 동메달을 따든 간에,  그것이 생애 최고의 순간이 되려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 또한 필요한 것이 그 안에서 "정말 최고의 순간이야" 라고 느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기도 할 겁니다.

애 낳고 3주만에 경기장에서 뛰어야 하고, 아이 육아를 맡길 곳이 없어서 직장에 데려가야 하는 환경에서, 실업팀 1,000여 개로 무장된 덴마크 선수들과 싸워서 이기라고 하는 건 사실 처절한거죠. 그래서, 져서 그들이 마트에서 생선이나 팔고 있게 되더라도 그건 다 네 능력 탓이지 하는 식으로 그들을 대하는 사회는 더 가혹한 것이구요. 설령 이겨서 최고의 순간이 되더라도 현실로 돌아오면 여전히 가혹한 리얼리즘이 기다립니다.

지원과 관심이 턱없이 부족한 핸드볼 팀이든, 태안반도의 어민이든,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직원이든, KTX의 여승무원이든 간에 어떻게 해서든 개인의 힘으로 노력해서 극복해서 살아라 하지 말고, 어느 정도는 그 합당한 시스템을 만들어 준 후에, 열심히 하라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몸으로 때워서 이겨내야만 하는 휴먼 드라마는 영화에서만 보았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2008년 1월 18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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