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뉴스 프로그램에서 앵커가 시청자들에게 뉴스를 전달합니다. 잘생긴 외모의 앵커가 신뢰감 있는 말투로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와 평범에도 못 미치는 외모를 가진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당황한 표정으로 전달하는 경우, 시청자들은 어떤 쪽에 채널을 고정하게 될까요?

내용보다는 그 포장이 중요한 세상, 메시지보다는 재미가 중요한 세상. 사람들은 잘생긴 사람이 나오면 열광하고, 그 사람의 내면에 대해선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사람의 인격이나 지성에 대해서는 알려고 들지 않는 편이 자신들의 환상을 유지하는 데에 훨씬 더 편리하다는 걸 영악하게 눈치챈 건지도 모르죠.
 
심슨 시리즈를 비롯해 수많은 TV 시리즈와 헐리웃 영화들의 제작자,작가,감독으로 종횡무진하는 제임스 L. 브룩스가 만든 영화 <브로드캐스트 뉴스>(1987)를 보면, TV 산업에서의 이런 얄팍한 생리는 20년 전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네요. 물론 TV 카메라의 뒤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재능과 실력으로 평가되지만, TV 카메라의 앞쪽에 서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외모와 인상, 쇼맨십 뿐입니다.


연애에는 서툴지만, 어릴 때부터 똑부러지던 제인(홀리 헌터)은 유능한 뉴스 PD로 인정받지만, 학창시절에 너무 똑똑해서 월반을 거듭하고 우등 졸업을 했던 아론(앨버트 브룩스)은 출중한 취재능력과 글솜씨에도 불구하고 결국 TV 앞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반면에 반반한 얼굴 하나로 운좋게 입사한 톰(윌리엄 허트)은 승승장구하여 성공가도를 달리죠.

TV 보도국의 숨가쁜 일상은 생생하게 그려지고, 직장 동료간의 우정과 애정 사이를 오가는 미묘한 삼각관계도 흥미롭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후반부에 직장 내부에서 벌어지는 가차없는 감원은 실제로 1984년에 있었던 CBS News의 대규모 해고를 빗대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비정한 기업의 생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해고당한 직원에게 "내가 도울 일은 없겠나?"라고 묻는 사장에게 "당신이 일찍 죽었으면 하오."하고 대답하는 장면은 다소 통쾌하기도 하더군요.^^

TV 저널리즘의 윤리의식에 대해 비꼬는 대사들도 직설적으로 나오는데, 보도국 직원들은 "원하는 기사를 얻기 위해, 인터뷰 대상자를 거짓으로 유혹할 수 있는지?"에 다들 yes를, "사형 집행 장면을 방영할 권한이 주어진다면, 방영할 것인지?"에도 yes를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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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세상은 여전하고, 아니 훨씬 더 천박하고 얄팍해졌으며, 사람들은 여전히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한 뉴스보다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도미노 무더기 넘어뜨리기를 보여주는 뉴스에 더 열광합니다.

나 자신도 TV 뉴스에 나오는 기자들의 외모에 대해 종종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음을 시인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로 잘생긴 앵커와 예쁘장한 아나운서만을 원하는 걸까요? 영화에서 까메오로 출연한 잭 니콜슨의 메인 앵커 연기를 보고나면, 그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에 "역시 외모보다는 성격!"이라는 외침이 저절로 흘러나오게 될 겁니다.

연예인같은 외모로 나르시시즘에 빠진 듯한  언론인들이 전하는 요즘 TV 뉴스를 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오늘의 사건 사고)들을 앵무새처럼 전달하는 게 전부인 듯이 보입니다. 특히나 요즘 아나운서들은 연예인과의 구별이 점점 없어지는 듯... 외모는 소박해도 좋으니, 제발 지성과 도덕성을 갖추고, 상부 권력의 검열에도 맞서 싸울 수 있는 멋진 앵커가 나와서 진지하고 심각한 뉴스를 정확하고 공정하게 전달해줄 날이 오길 바래 봅니다. 정말로 이야기되어져야 할 것들이 TV 뉴스에서 이야기되는 날들이 오기를 말입니다.

2008년 1월 11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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