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며 살아갑니다. 일찍 세상을 뜬 오빠는 여동생에게 평생 동안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슬픔을 남기기도 하고, 젊은 시기의 질풍노도의 시간을 함께 한 친구는 평생 동안의 마음의 파트너로 남기도 하고, 이웃에게 잠시 내민 따스한 손길 하나가 평생 동안 잊지못할 고마움과 애정으로 간직되기도 하죠. 이렇게 깊은 연결고리를 맺게 만드는 사람들간의 교류는, 주로 가족이나 친척,친구,동료 사이에서 일어나지만, 아주 드물게는, 우연히 마주친 낯선 사람들 간에 일어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에블린이 우연히 양로원에서 마주친 니니 할머니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외로운 마음에 자리잡기 시작하고, 니니 할머니는 그녀가 인생을 새롭게 마주할 용기를 주게 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니니 할머니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휘슬 스탑 카페에 얽힌 이야기는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처럼 정겹고도 푸근하지만, 다음 전개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드는 미스테리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37분의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잘 짜여진 연출은, 플래시백 기법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현재의 에블린의 삶과 니니 할머니가 들려주는 잇지와 루쓰의 삶을 번갈아 가면서, 여자들의 우정과, 인종과 계급을 초월한 사람들 간의 애정과 배려, 용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남부 시골 마을의 잔잔한 일상을 다루는가 싶었던 이야기는 루쓰의 남편 프랭크의 실종 사건을 비롯하여 KKK단이 활보하는 무시무시한 폭력 사태를 다루기도 하며, 영화의 마지막까지 실종 사건에 싸인 비밀은 좀처럼 밝혀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두가지 비밀의 해답을 발견하고는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됩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인 잇지와 루쓰가 그 따뜻한 포용력으로 주변의 사회적 약자들과 많은 사람들을 감싸 안았듯이, 그리고 약자들을 대신해서 불합리한 인간들에게 용감하게 맞서 싸웠듯이, 니니 할머니는 용기와 배려로 가득찬 옛이야기를 통해 에블린을 따뜻하게 감싸 안습니다. 그리고 그 용기와 사랑은 에블린에게 전염되어 계속해서 세상을 바꾸어 나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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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Fannie Flagg가 쓴 원작의 힘이 워낙 탄탄하기도 하지만, 미국 개봉당시 6개월 동안이나 극장에 걸리는 슬리퍼 흥행을 기록했던 영화입니다.

액자 소설 형식인 이 영화의 바깥 이야기에서는 한 여인이 할머니와 진정한 친구가 되어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 그려지지만, 그 안쪽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가정폭력으로 얼룩진 불행한 가정생활을 여성들 간의 연대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비록 원작 소설에 비해서 영화에서는 암시적인 묘사에 그치기는 했지만, 두 여성이 결합하여 가정을 이루는 동성애적 관점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인종차별의 횡포에 일침을 가하는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온정 가득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제시카 탠디가 분한 니니는 멋지게 늙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설을 통해서 또는 영화를 통해서, 아니면 실제 삶에서 니니를 만난 사람들은 누구든지 좀더 씩씩해지고 당당해지며,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니니 할머니가 말해 주는 인생의 비밀은 별 게 아니더군요.

"I found out what the secret to life is: friends. Best friends."

영화 안에서 세번이나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조지아주로 날아간 오리떼 이야기입니다. 서로 다른 장면에서 매번 찡한 감동을 주는 그 이야기가 참 마음에 남더군요.


2008년 1월 10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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