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방송인의 임신과 출산 과정을 두고 여러가지 말이 많은 것 같지만, 여성의 모성애는 때론 이성적으로 설명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의 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괴로운 상처를 준 범죄로 인해 태어난 아이에게조차 끝없는 사랑과 정성을 쏟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엄마라는 존재이니까요.

강간의 결과로 생긴 아기를 낳아서 키우겠다는 결심을 한 엄마와 십대로 자라난 그 아이와의 갈등은 영화 <노스 컨츄리>에서도 잠시 다루어진 바 있지만, 이 영화 <그르바비차>에서는 그 상처와 갈등이 영화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그르바비차"는 보스니아 수도인 사라예보의 한 마을의 이름입니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군의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이 마을에, 싱글맘 에스마와 12살짜리 딸 사라가 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게 된 사라는 "전사자 가족에겐 수학 여행 경비가 면제된다."는 선생님의 말에 아버지의 전사 증명서를 떼다 달라고 엄마를 조르지만, 에스마에게는 뭔가 비밀이 있어보입니다.


에스마가 겪은 일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유고 연방은 3개의 언어, 3개의 종교, 그리고 6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였는데, 1991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독립을 선포하고 연방을 이탈하자 세르비아 공화국 주도의 유고 연방군과 나머지 공화국과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각 공화국 내의 세르비아계는 독립을 반대하고, 이슬람계와 크로아티아계는 독립을 지지하면서 각 공화국은 내전의 화염에 휩싸이게 되는데, 이중 1992년에 발발한 보스니아의 내전은 세 정파가 극렬하게 충돌하면서 민족 갈등 및 종교 갈등으로 번지게 되어 당시 군사력이 우세했던 세르비아계 군인들이 민간인들까지 무차별 살상하게 되는 끔찍한 인종청소의 비극으로 치달았습니다.

단순히 정치력을 얻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다른 민족과 종교 세력을 제거하려고 했던 그들은 학살 뿐이 아니라 "조직적 집단 강간"을 자행했는데, 이슬람교도의 숫자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강간당한 부녀자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낙태가 불가능한 시기가 되어서야 석방했다고 합니다. 이런 끔찍한 범죄의 희생자 수는 2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보스니아 내전으로 인해  4년 동안 27만명이 사망하고, 인구의 반에 가까운 2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500개 마을이 불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1995년말의 보스니아 평화 협정으로 세르비아계 연방과 회교-크로아티아 연방으로 분할된 보스니아는 아직도 내전의 상처를 안고 불안한 공존을 하고 있으며, 아직도 암매장된 주검 발굴과 실종자 찾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위 역사적 사실은 "세계사의 9가지 오해와 편견" 이라는 책을 참고했습니다.


힘겨운 사춘기를 겪어 나가는 사라역의 루나 미조빅의 연기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으며, 엄마 역할의 미르자나 카라노비크는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 <아빠는 출장중>(1985) 에서 어머니로 나왔던 유고 지역의 대표적인 여배우로, 깊은 상처를 지닌 캐릭터를 매우 사실적으로 연기해 내고 있습니다. 성폭력의 피해자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어두운 내면은 딸과의 가벼운 레슬링 도중에도, 버스 안에서 낯선 남자와의 가벼운 신체적 접촉에서도,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남자를 경계하게 되는 순간에도, 일상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며 그녀를 괴롭힙니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피해자 여성들의 정신치료나 쥐꼬리만한 보조금은 형식적일 뿐이고, 이 엄청난 역사적 범죄는 결국 개인이 각자 짊어져야 하는 고통으로 남아 그녀를 짓누릅니다. 싱글맘으로서 당장 생계 유지가 급한 그녀는 나이트클럽 웨이트리스로 일자리를 구하지만, 성을 상품화하는 장면을 마주칠 수 밖에 없는 직장을 견디어 내는 건 정말 괴롭기만 합니다.



영화는 딸과 엄마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 전쟁의 상처를 어루만지고자 하지만, 고통과 눈물로 얼룩진 그 힘겨운 과정을 왜 무고한 이들이 겪어야만 하는지를 묻는 듯 합니다.

2006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과 평화영화상을 수상한 자리에서 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는 "13년 전 보스니아에서 2만명의 여성을 강간하고 10만명을 살해한  라도반 카라지치와 라트코 믈라디치가 아직도 유럽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유럽이고 아무도 그들을 잡는데 관심이 없다.  이 작은 영화가 보스니아에 대한 당신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 직후 언론들은 보스니아 이슬람 교도 인종청소의 주범인 '라트코 믈라디치'가 체포되었다는 보도기사를 내놓기에 바빴다고 하니, 영화 <그르바비차>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데 머물지 않고 언론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 셈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언론의 변화보다는 입밖에 내는 것조차도 섬찟한 단어인 "인종 청소"라는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그리고 현재 자행되고 있는 모든 내전과 침략을 비롯한 "전쟁"이 종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2008년 1월 5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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