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TV 정치 토론이라는 것은,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내기보다는 서로 자기 의견만 고집하다가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하는 난장판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출연자는 적절한 정보를 알려주긴 커녕, 어떻게해서든 중요한 진실을 가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순응주의에 빠져,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스스로 자발적 검열을 수행합니다. 제작진들이 초대하는 게스트들은 안심하고 초대할 수 있는 사람들, 즉 권력에 타협하거나 복종하는 사람들, 흔히 polifessor 또는 telefessor 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선호됩니다.

TV는 여론을 형성하는 권위를 가졌다고 착각하지만, 그들이 하려는 건 오히려 선동에 가깝고, 사람들은 그저 TV 토론이라는 이름의 말싸움을 생중계하는 쇼를 시청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죠. 그런데 어제 본 영화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에서 저는 TV 토론의 새로운 장을 경험했습니다. 가장 어설픈 토론이 진실을 전달하는 그 순간을 말이죠.


영화는 전반부에서 세 주인공 -TV 토론 사회자와 두 게스트- 의 변변치 못한 일상을 보여줍니다. 루마니아의 작은 도시의 지역 방송국 사장이자 TV 쇼 사회자까지 겸하는 비르질은 집에서는 아내에게 고함치기 일쑤이고, 한쪽으로는 불륜을 저지르며, 자기의 부족한 지성을 메꾸기 위해 토크쇼에 가기 전에 명언 사전을 뒤적입니다. 역사 선생인 마네스쿠는 전날에도 술주정을 피운데다가 오늘 월급날에는 외상값 갚으랴 여기저기 꾼 돈 갚으랴 정신이 없습니다. 당일날 갑작스럽게 섭외당한 할아버지 에마노일은 크리스마스 때마다 동네에서 대대로 산타 역할을 해온 고집센 늙은이입니다.

그러나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를 몰아낸 1989년의 부카레스트 혁명 16주년을 기념하여 야심차게 TV 토론회를 기획한 비르질의 역사 의식은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 "16년 전 혁명의 순간에 이 마을에도 혁명이 있었는가" 를 확인하고 싶은 비르질은 1989년 12월 22일 12시 08분 이전에 광장에 시위자가 있었는지 아닌지를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Was there? or Wasn't there?> 또는 <12:08 East of Bucharest>입니다.



또한 비르질이 계속해서 집착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사건이 일어난 후에 (차우세스쿠가 물러나는 것이 TV로 방영된 후에)거리로 몰려도 그게 혁명입니까?" 이 질문을 우리나라 버전으로 바꾸면, "해방 전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군중과 해방의 기쁨으로 뛰어나온 군중은 어떻게 다릅니까?" 라는 질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진지한 질문은 조악한 방송국 세트, 어설픈 카메라 조작, 옆에서 자꾸 딴짓하는 게스트들, 게스트들의 의견에 전화로 반박하는 동네 주민들로 인해 시종일관 코믹한 분위기에서 자꾸만 샛길로 새거나, 감정적 싸움으로 번지곤 합니다. TV 안에서 어설픈 영웅이 만들어지기에는 이 작은 마을 주민들은 서로를 속속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이 허술한 세트와 헛점 투성이의 방송 안에서 어렴풋이 드러나는 진실은 그 어떤 TV 토론보다도 진솔하고 솔직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감독이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혁명의 변방에 있었던 이 작은 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과연 부카레스트 혁명은 성공한 것인가?  한때 비밀경찰에 협조했던 자가 자본가로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음을 시사하는 전화 통화에서, 독재자 때가 더 살기 좋았다고 하는 시청자 전화에서, 그리고 역사 시험에 등장한 "프랑스 혁명"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에서, 무엇보다도 마을 사람들의 궁핍한 살림살이를 보면서, 우리는 어렴풋한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때의 혁명에 있어서 미디어(TV) 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즉, 만약 TV가 없었다면 이 작은 마을에 공산주의의 몰락은 어떻게 전달되었을 것인가 등등... 그러나 저는 함부로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역사적 순간에 그 자리에 없었다면, 12시 8분 "이후"에라도 광장에 나가는 것이 얼마 만큼의 용기가 필요했을지, 한 때는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던 역사선생이 왜 술주정뱅이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들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에마노일 할아버지가 말했던 것처럼요.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혁명을 만들어 낸다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이 가로등으로 밝혀지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영화는 끝을 맺고, 그 가로등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영화를 보시면 알게 됩니다.
 
2006년 깐느에서 황금 카메라상을 탄 이 초저예산 영화는 카메라 테크닉에 있어서 아주 단순한 방법을 택합니다.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장면에서 카메라의 시점은 언제나 고정되어 있고, 방송국 장면에서의 카메라 조작은 촛점이나 구도가 엉망일 때가 많습니다.  영화 중간에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하는 카메라맨에게 비르질이 야단을 치자, 카메라맨은 삼각대가 고장났다고 말하죠.^^  하지만 카메라의 시점이나 이동에 의한 왜곡과 조작이 가미되지 않은 영상들은 영화 내용처럼 잔잔하고 객관적인 진실을 표현하는 데에 잘 들어맞는 듯했습니다.
     
작년에 깐느 황금종려상을 탄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 을 비롯해서 요즘 들어 루마니아 영화들이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 관객의 반응은 썰렁하네요. 단관 개봉에 개봉일 밤 관객이 다섯명이라는 건 정말 안타까왔습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는 처형됐는데, 우리나라에선 자본과 배급의 독재가 점점 거세지기만 하네요.


2008년 1월 4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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