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도쿄여행 중 지브리 스튜디오에 들렀다가 복도에 전시된 특이한 그림들에 매료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의 그림체와는 조금도 닮지 않은 이 그림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걸까 궁금했었는데, 그 환상적인 스틸 사진들은 바로 프랑스 애니메이션 <아주르와 아스마르>의 장면들이었고, 지브리가 배급을 맡았기 때문에 그곳에 그림들이 전시되고 있었던 거였다.


2차원도 3차원도 아닌 특이한 입체감과 현란한 색채는 다른 어떤 애니메이션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신비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고, 인물들의 묘사 또한 워낙 정교하여 마치 만화가 아니라 예술품을 보는 듯해서 아주 깊은 인상을 받고 돌아왔는데, 몇 달 후, 씨네큐브에서 이 작품이 상영된다는 소식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보러 갔었다. 리뷰는 미루다가 이제서야 올리지만, 정식 개봉일이 1월 중순이니 참고들 하시길... 이 작품의 영상미는 극장화면에서 확인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개인 소장용으로는 블루레이 디스크 발매를 기다리고 있음.



프랑스 출신인 미셸 오슬로 감독의 작품들을 이전에 몇 편 보기는 했었지만, <프린스와 프린세스> 는 실루엣 애니메이션의 정교함에 감탄했으나, 색채는 단순한 편이었고, <키리쿠와 마녀> 를 비롯한 키리쿠 시리즈는 귀여운 캐릭터에 평면적인 그림으로 이루어진 애니메이션이었기에, <아주르와 아스마르>에서의 보게 된 이국적이고도 환상적인 영상은 정말 뜻밖의 선물이면서 무한한 감동을 주었다.

단순히 영상으로만 놀라움을 준 것은 아니고, 오슬로 감독 특유의 엉뚱한 유머 감각은 한층 더 유쾌해졌고, 음악을 담당한 가브리엘 야레의 사운드는 정말 아름다왔으며, 정교한 애니메이션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움과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마치 예전에 유명했던 컴퓨터 게임인 "페르시아의 왕자"에 나오는 부드럽고 유연한 동작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느낌을 준다. 분위기도 비슷하고... 작곡가 가브리엘 야레는 <베티 블루> 음악을 맡았을 때부터 최근 <타인의 삶>까지 항상 좋아했었는데, <아주르..> 에서도 이국적인 느낌의 음악을 멋지게 만들어 내었다.

흑인과 백인의 두 주인공을 등장시켜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혼합시키되, 스토리와 그 영상 안에는 이슬람 문화에 대한 존중이 깊이 배어있음이 느껴진다. 세세한 디테일까지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하여 건축물과 의상 등을 묘사했으며, 레바논 태생의 가브리엘 야레의 음악까지 멋들어지게 어우러져 동서양의 화합을 추구한 감독의 정성이 영화 가득히 배어 있다고나 할까...


미셸 오슬로 감독은 1920년대부터 독일에서 활동한 실루엣 애니메이션의 거장인 여성 감독 로테 라이니거 Lotte Reiniger 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녀의 대표작인 <아흐메드 왕자의 모험 The Adventures of Prince Achmed> (1926) 이 아라비안 나이트와 알라딘의 이야기를 차용하고 동화와 신화에 기반한 줄거리들을 사용했듯이 미셸 오슬로도 이슬람과 동양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꽤 높은 것으로 보인다.


<아주르와 아스마르>의 주인공은 파란눈의 백인 아주르와 갈색피부의 아스마르로, 이들은 아주르의 유모이자 아스마르의 엄마인 제난의 보살핌 아래 형제처럼 자란다. 매일밤 자기 전에 자장가와 동화를 함께 듣고 자라난 두 아이는 제난이 들려준, "용감한 왕자님이 아름다운 요정 진을 구해내는 이야기"에 매료되어 요정 진을 구하는 걸 자신의 꿈으로 삼는다. 어느덧 청년이 된 두 소년은 우여곡절 끝에 아스마르의 나라에서 재회하고 요정 진을 찾아 함께 모험을 떠난다.


마법의 열쇠 세 개를 찾아내고, 푸른 발톱의 붉은 사자와 무지개 날개를 가진 새를 만나서 검은 절벽 안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을 찾아내야 하는 이 모험은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호기심까지도 이끌어 내며, 등장하는 인물들은 입체적이고도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로 채워진다. 특히 투덜쟁이 크라푸와 깜찍하고 당돌한 샴수 사바 공주는 상당히 독창적인 캐릭터들이다. 어딘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이 이야기는 한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전개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두 청년의 신비한 모험에 푹 빠져들게 만든다.

"영화 제작이란 어린 시절 놀이의 연속과도 같다."라고 말하는 미셸 오슬로는 순수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타파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뛰어난 완성도를 가지는 그의 작품들이 담고 있는 문화의 다양성이 널리 전해지기 바라며, 그의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놀라운 세계를 펼쳐낼지 몹시 기대가 된다.

2007년 12월 27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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