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기 헬렌 켈러 여사는 "전쟁의 고통은 항상 노동자 대중이 짊어집니다.  지배자들이 시키는 대로 전쟁터로 끌려 나가 죽음을 당하는 것은  수많은 노동자 대중 그 자신들입니다." 라고 한 바 있다.
 
그보다 더 신랄한 표현으로는, 국가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전쟁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은 "부잣집 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장난감 병정과 같다"고 한 커트 보네거트의 말도 있다.


대선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살릴 겸, 1914년 참혹한 1차 대전의 최전선에서 벌어진 감동적인 Christmas Truce 를 영화화한 <Merry Christmas>(Joyeux Noël) 를 보러 광화문 씨네큐브에 갔었다.서울 시내 단 한군데서 상영 중인데다가 금요일인데도 관객이 얼마 없어서 안타깝다. 뛰어난 수작까지는 아니더라도, 크리스마스에 보기에 가슴뭉클한 영화인데...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바로 전날까지도 서로 죽고 죽이던 프랑스 지역의 어느 최전선에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독일, 프랑스, 스코틀랜드의 세 진영 병사들이 임시 휴전을 선포하고 No man's land 에 함께 모여, 죽은 병사들의 시신을 묻고, 함께 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나누고, 함께 축구 시합을 하고, 서로 편지를 보낼 주소까지 나누었다는 이야기이다. No man's land 란 적군의 참호 사이에 놓인 어느 한쪽의 영역도 아닌 중립지역을 말하며 특히 참호 전쟁에서는 진격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병사들의 시체가 즐비한 곳이다.

스코틀랜드 쪽의 백파이프 연주로 누그러기기 시작한 분위기는, 독일 진영의 테너 병사의 캐롤, 크리스마스 트리, 프랑스군이 제공한 샴페인으로 지구상의 그 어떤 곳보다도 따뜻한 크리스마스의 순간을 만들어 낸다.

영화를 보면서, 이들이 따뜻한 정을 나눈 후에 어떻게 전투를 계속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지만, 명령 불복종에다가 반란 죄를 저지른 수백명의 병사들을 차마 총살할 수 없었던 상관들은 이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송시키는 고마운 처벌을 내린다.



세 나라의 군인들이 등장하는 만큼 영화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영어, 독일어, 불어가 뒤섞이고, 세 나라의 익숙한 배우들이 여럿 등장한다. <에쥬케이터>와 <굿바이 레닌!>의 다니엘 브뢸, <카핑 베토벤>의 다이앤 크루거, <빌리 엘리엇>에서 아버지 역할을 했던 게리 루이스, <Inside I'm Dancing>의 스티븐 로버트슨, <마이 베스트 프렌드>의 대니 분 등등...

감동의 대미를 장식해야 하는 성악 부분이 립싱크로 인해 좀 미약한 점이 있었지만, 영화는 참호전의 잔혹함과 따뜻한 인류애를 대조시키면서 전쟁의 부조리를 비판한다.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대사는 프랑스 장교가 분노하며 장군에게 항의하던 부분이다. "우리가 여기서 어떤 고통을 겪는지 알아요? 하나만 말하죠.  자기집에서 칠면조나 뜯으며 명령하는 자들보다 나는 독일군이 더 가깝게 느껴져요."

비록 여자 성악가의 존재 등을 비롯해 영화의 많은 부분은 픽션이지만, 1차 대전 당시의 크리스마스 휴전은 몇몇 전선에서 실제로 일어났으며, 현재까지 세 나라의 군대기록보관실에는 병사들이 서로 함께 찍은 사진이나, 주고받은 서신 등의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 전설적인 크리스마스 휴전의 마지막 생존자 Afred Anderson 은 2005년에 109살의 나이로 운명하셨다.

                 1914년의 christmas truce 를 기리기 위해 벨기에 지역에 세워진 십자가


가끔씩 현실은 영화보다도 더 영화같은 때가 많다. 만약에 이 영화가 실화인지 모르고 관람했더라면, "저게 과연 가능할까?" 하고 의구심을 품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믿기 힘든 일 중의 하나는 소년들에게 전쟁의 당위성을 가르치는 어른들이 있으며, 신자들에게 전쟁의 신성함을 부르짖는 종교인들이 있으며, 상부로부터 살인 명령을 받고 전선으로 내몰리는 병사들의 전쟁이 아직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Joyeux Noël," "Frohe Weihnachten" and "Merry Christmas."

2007년 12월 22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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