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 (1995)

OLD POSTS/영화 2013. 12. 27. 10:18


어젯밤에 끔찍한 악몽을 꾸었다. 우리나라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배경이었지만, 도시 전체가 폭동으로 불타고, 젊은이들은 서로 패거리지어 서로를 죽이려들고, 약자들은 게토보다도 처참한 환경에서 숨어다니고 있었다.

꿈속에 가득했던 적대감과 증오감, 폭력성과 공격성에 몸서리치다가 잠에서 깨어났지만, 현실도 역시 우울한 건 마찬가지이다.

계급과 인종 문제, 실업과 빈부 격차, 거기다가 공권력의 횡포로 인해 발생한 비극과 그에 따른 사회의 추락을 그렸던 영화 <증오>(La Haine) 가 문득 떠올랐다. 파리 교외 지역에서의 폭동과 그 배경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영화는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에게 95년 깐느 감독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이 감독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멜리에가 짝사랑하던 남자 역할로 더 익숙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배우보다는 감독으로서의 재능이 훨씬 더 탁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증오는 증오를 낳는다는 말이 있듯이, 비록 중동 지역에서 유태인과 아랍인은 서로 증오하는 관계일지 모르지만, 삼총사처럼 뭉쳐다니는 세 주인공인 빈쯔(유태인), 사이드(아랍인), 위베르(흑인)는 다인종으로 구성된 친구들로서, 외롭고 적대적인 세상에서 유일하게 서로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준다.

이들이 사는 방리유 지역은 파리 외곽이지만, 영화에서 흔히 보는 파리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임대 아파트 수준의 허름한 주거단지일 뿐이며, 잦은 폭동으로 인해, 학교도 불타고, 체육관도 파괴되고, 주민들은 식료품 살 돈, 교과서 살 돈 조차도 쪼들리는 궁핍한 생활을 한다.

경찰의 취조 중 구타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진 아랍소년 압델로 인해, 성난 젊은이들과 경찰과의 대치 상황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고, 영화는 혼란스런 마음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세 친구의 하루를 쫓아간다.


영화에서 시위진압대의 모습은 우리나라 전경들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지만, 이민자 청년들을 노골적으로 비하하고 차별하는 경찰의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며, 파리 시내의 잘 사는 동네 경찰들의 시민에 대한 정중한 태도와 이유없이 이민자들을 연행하는 경찰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법이 더 이상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세상이며, 경찰이 더 이상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는 세상인 것이다.

할 하틀리의 영화 <Simple Men> (1992) 에 보면 그런 말이 나온다. 법이라는 건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 간의 계약일 뿐이며, 도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라고. 법을 어기고도 잘 빠져나가면 그건 괜찮은 거고, 법을 어기고 재수없게 걸리는 사람은 그 죄값을 치르는 것 뿐이라고. 그리고 정부는 법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고.

얼핏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강자의 편에 서 있는 검찰과 경찰이 있는 국가에서라면 매우 현실적인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사회가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가이다.

영화 <증오>의 인상적인 첫장면은 다음과 같은 위베르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50층에서 추락하는 남자 얘기 들어봤어?
 밑으로 떨어지는 동안 그는 계속해서 중얼거려.
 아직까진 괜찮아...
 아직까진 괜찮아...
 아직까진 괜찮아...

 어떻게 추락하는가는 중요한 게 아냐.
 중요한 건 어떻게 착륙하느냐지."

추락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우리나라는 과연 어떻게 착륙하게 될까...

2007년 12월 20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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