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ffic 이라는 일상적인 단어가 동사로 쓰일 때에는 사악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동사로서의 traffic이 불법적인 거래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마약을 밀매한다든지, 코끼리의 상아를 밀거래한다든지, 인신매매를 한다던지, 불법이민자를 몰래 밀입국 시킨다든지 등등 traffic은 더러운 거래를 묘사하는 단어이다. 2000년에 스티븐 소더버그가 만들었던 영화 <Traffic> 도 마약에 대한 이야기였듯이.


17세의 소녀 마리아가 drug trafficking에 연루되는 사연은 이러하다. 1년 동안 뼈빠지게 일해 봤자 1700불이나 벌까 말까한 컬럼비아의 작은 동네에 살고 있는 마리아는 장미가시를 제거하는 공장에 나가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간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던 그녀는 어느날 부당한 해고를 당하고 하루아침에 새 직장을 찾아야만 한다. 변변한 직업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이 동네에서 소녀가장 마리아는 한번의 뉴욕 왕복 여행으로 5000불 을 벌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듣고 동요할 수 밖에 없다.

마약이 든 캡슐 60여개를 삼켜서 뱃속에 보관한 채로 입국 심사를 통과하면 성공이지만, 재수없게 검색에 걸리면 감옥행이고, 혹시라도 뱃속에 있는 캡슐이 터지면, 치사량이 넘는 마약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니까 이 손쉬운 돈벌기는 말하자면 목숨을 건 도박이다. 게다가 이 도박을 더욱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그녀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이다. 그녀에게는 과연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여주인공 카탈리나 산디노 모레노는 이 영화 이후에 <사랑해, 파리>에서 월터 살레스 감독과도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연기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내면에서 배어나오는 슬픔이 늘 자리하고 있으며, 당당하고 꼿꼿한 태도는 그녀의 불행이 그녀 앞에서 움츠러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앞으로 남미의 현실을 그려내는 여러 작품들에서 그녀의 기품있는 외모가 빛을 발하기를 기대한다.

실제로 수없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 이 끔찍한 마약 밀매 이야기는 인간이 한낱 "운송수단"으로 전락하는 비극의 일부일 뿐이다. 비록 마리아는 drug mule의 위험성을 잘 모른 채로 말려들게 되지만, 현실에서는 그 위험성을 잘 알면서도 그걸 무릅쓰고 치사량을 엄청나게 초과하는 양의 마약을 몸속에 밀어넣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들 나라의 피폐한 경제와 도무지 미래가 없어보이는 현실에서, 당장 생계가 절박한 사람들에게 거액의 현금으로 유혹의 손길을 내미는 마약상들은 악마보다도 잔인하고 악랄해 보인다.

인간의 몸을 이용해서 마약을 운송하고, 인간을 짐짝처럼 실어 불법 체류자를 밀입국시키고, 인간을 노예처럼 거래하고, 인간의 노동력을 헐값에 착취하는, 이 모든 trafficking은 예외없이 자본을 숭배하는 악한들에 의해서 행해지며, 인간성 말살의 최전선에서 인류를 황폐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영화 <Maria Full of Grace>는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현실을 그대로 그려낼 뿐이지만, 이 조용한 사실주의 영화가 뿜어내는 진실은 무겁게 퍼져나갈 것이다.

2007년 12월 17일 작성


Posted by bopboy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