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골판지로 만든 집에서 살아가는 홈리스들의 비참한 생활, 동네 양아치들의 약자에 대한 이유없는 폭력, 아이를 잃은 여인의 자살 시도, 가정의 불화, 가출 소녀의 방황, 영아 유기, 이민자들의 곤궁한 삶, 도박과 알콜 중독으로 가족을 버린 아버지 등등 도쿄라는 대도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암울한 사건들을 한데 담고 있는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Tokyo Godfathers>(2003) 는 놀랍게도 시종일관 밝고 경쾌한 톤을 유지한다.

이렇게 긍정성을 발휘하게 하는 힘은 크리스마스라는 배경, 갓난아기의 순수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혈연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따스하고 푸근한 가족애가 있기 때문이다. 중년남자 진, 드랙 퀸 하나, 가출소녀 미유키는 노숙자이지만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한가족 같은 존재이다. 크리스마스날 우연히 버려진 아기를 발견한 이들은 아기의 부모를 찾아주기 위해 예상치 못한 모험을 시작한다.



아기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 갑자기 아이를 떠맡는다는 설정은 많은 영화에서 사용되어 왔고, 이 영화의 제목도 세명의 무법자가 버려진 아이를 돌보게 된다는 내용의 존 포드의 고전 <Three Godfathers>(1984) 에서 따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당장 자신들의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우며, 안락한 집도 갖지 못한 노숙자들이고, 이들이 잠시나마 아기를 돌본다는 것은 <세남자와 아기바구니>(1985)에서처럼 유쾌하거나 낭만적인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가는 스토리는 야쿠자 보스의 암살, 복권 당첨, 자동차 추격전 등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쉴틈없이 엮어가고, 중간중간에 끼어드는 유머 감각은 예측불허의 웃음을 안겨준다. 특히 잊지못할 임종 장면을 보여준 백발의 노숙자 할아버지와 이들 사건에 함께 말려드는 어리숙한 택시기사 아저씨는 주연들보다도 큰 웃음을 주는 멋진 조연들이었다.


<Perfect Blue>(1998), <Millennium Actress> (2001) 등을 연출하고, <Memories> (1995) 에도 참여했던 사토시 콘 감독은 실사 영화를 보는 듯한 섬세한 배경 화면으로 도쿄를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거리의 풍경이 사실적인 만큼, 도쿄에서 벌어지는 사회문제들 역시 리얼하게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미를 지닌 익살스런 캐릭터들은 암울하고 어두운 도쿄의 뒷골목을 인간의 체온으로 따스하게 만들고 있다.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비정한 아버지든, 성장통을 겪는 비행소녀든, 애인을 잃은 성적소수자이든 간에, 당장 희망이라고는 없는 사회 밑바닥에 자리한 사람들일 지라도, 아이 하나를 살리기 위해서 온몸을 던질 수 있다면,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는 낙관론적 결말은 이 영화의 약점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대책없는 해피엔딩이 어색하지 않은 것이 바로 만화라는 장르의 장점 아니던가.


2007년 12월 14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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