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배우의 입을 빌어서 "당신은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직설적으로 설교하는 영화는 왠지 거부감이 느껴지게 된다. 단적으로 말해서, 관객들은 영화관에 가서 백분토론을 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치 상황에 대한 TV 토론이나 지식인들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돈을 내고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영화 <Lions for Lambs, 2007> 에서, 톰 크루즈는 언론인들을 비난하고, 메릴 스트립은 정치인들에게 야유를 보내고, 로버트 레드포드는 행동하지 않는 다수의 대중에게 설교를 늘어 놓는다. 이 영화는 이라크전에 대한 미국 진보진영의 반성문같아 보이는 동시에, 공화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계몽하려는 연설처럼 보인다.


정치적 야심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톰 크루즈는 네오콘의 상징처럼 나오고, 언론인으로서의 양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메릴 스트립은 끝까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며, 학생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정치학과 교수인 로버트 레드포드는 무기력한 지식인의 전형처럼 그려진다.

감독인 로버트 레드포드가 영화적 재미라든가 새로운 시각이라든가 하는 요소들을 모두 저버린 채, 진부해 보이기만 하는 이런 일장연설을 세 명의 주인공을 통해 늘어놓은 이유가 뭘까? 영화의 완성도를 희생해서라도 오직 대중에게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물론 이 영화를 보고 단 한명의 젊은이라도 이라크전에 자원하겠다는 생각을 고쳐먹는다면, 전쟁에 반대하는 유권자가 한명이라도 더 늘어난다면, 의미있는 일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에 대한 평단과 관객의 반응은 차가운 편이다.

이는 지나친 직설법에 대한 거부감과, 현실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진보-반전 진영에 대한 대중의 냉담함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베트남전 이후로 반전 메시지는 계속 반복되었지만, 미국이 벌이는 전쟁은 언제나 여전히 진행 중이니까.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은 영화 속에 Lion 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차대전 당시 한 독일군 장교가 "한심한 상사들을 위해 죽어가는 용감한 영국 병사들"을 일컬어서 한 말이라는 "Lions for Lambs"의 유래에 따르자면, "비겁한 양" 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은 편안하게 워싱턴 집무실에서 공격 명령을 내리는 톰 크루즈 캐릭터일 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시청률에 연연하는 메릴 스트립이나 강단에서 이상론만을 외치는 로버트 레드포드도 "말만 번지르르한 양들" 일 뿐이다. 기득권층에 속해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 정치인들을 비꼬던 대학생도 물론 양이다.

그렇다면, 극중에서 사자를 상징하게 되어있는 두 대학생 참전병들은 과연 사자인가? 왜곡된 애국심에 경도되어 무모한 용기를 발휘한 그들을 사자라고 부르기는 어렵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참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절박함이 아니었던가. 그들은 경제적 약자로서 참전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불행한 희생자들일 뿐이다.

영화에서의 "표현의 자유" 는 마음껏 누리면서도, 이라크 철군을 몇년째 실현하지 못하는 미국의 정치상황을 보면 답답함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나는 미국인이 아니니까 그들의 문제" 라고 한발짝 떨어져서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의 언론은, 우리의 정치는, 우리의 국민들은 그들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 우리들 중에 과연 사자가 몇마리나 있을까?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언론에서 떠들어 대는 대부분은 "양들의 논쟁" 인 것 같아 씁쓸하다.


2007년 12월 14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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