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은 유치한 영화일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극장을 찾기도 하죠.  블락버스터라고 하는 헐리웃 영화들이란 것이 사실 그 그럴듯한 포장을 벗겨내고 나면, 매우 유치하거나 참 당황스러운 내용인 경우가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엔터테인먼트도 삶의 활력소가 되기 때문에 블락버스터도 즐겨 보는 편입니다만, 그에 대한 리뷰는 잘 안쓰게 되네요. 보고 즐긴 것으로도 충분하다 생각되기도 하거니와, 딱히 영화에 관해 별로 할 이야기도 없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영화가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받는 요인 중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너무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들게 되면 뻔한 영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고, 코미디 영화의 경우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는 또 좀처럼 흔치가 않습니다. 물론 채플린처럼, 관객들에게 정말로 웃음과 메시지를 동시에 강하게 전달하면서도, 걸작의 반열에 오르는 작품을 만드는 천재들도 있긴 합니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

영화 <Evan Almighty, 2007> 는 뻔한 교훈과 유치한 코미디라는 두가지 요소를 정말 두루두루 갖춘 영화로 <Bruce Almighty, 2003> 를 비롯하여 에이스 벤츄라, 라이어 라이어, 너티 프로페서 등의 코미디를 많이 만들었던 톰 섀디악 감독의 작품이죠. 따라서,
짐 캐리 주연의 Bruce Almighty 의 후속이기도 한 이 영화가 유치하리라는 건 충분히 예측가능했지만, Steve Carell 의 원맨쇼를 한번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에 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에이스 벤츄라 를 굉장히 좋아했었죠...ㅋㅋㅋ...


미국 드라마 The Office 로도 유명한 Steve Carell 은 The 40 Year Old Virgin (2005) 에서의 소심-순진한 노총각 역할에 이어 Little Miss Sunshine (2006) 에서의 게이 삼촌 역할로 이어지는 캐릭터들을 통해, 자신은 참으로 우울하나 남들은 웃게 만드는, 독특한 코믹 연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The 40 Year Old Virgin 에서 수퍼그룹 Asia 를 좋아하는 순수한 노총각 앤디로 분한 그가 다른 등장인물들과 함께 펼치는 마지막 댄스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죠. Evan Almighty 를 보다 보면, 동네 극장 간판에 "The 40 year old Virgin Maria" 가 걸려 있는 장면이 스쳐 지나가기도 하죠....^.^;

Bruce Almighty 에서 God 이었던 모건 프리먼이 여전히 God 이고, 악랄한 개발주의자 정치인은 존 굿맨이 맡았으며, 미드 길모어 걸즈에서의 로렐라이로 국내에도 팬이 꽤 있는 걸로 아는 로렌 그래함이 에반 (스티브 카렐)의 부인으로 나옵니다.

에반은 TV 앵커를 하다가 하원의원에 당선된 새내기 정치인입니다. "Change the world" 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국회에 입성하는데, 그 슬로건을 맘에 들어 한 것은 God 도 마찬가지 ... God 은 에반을 노아의 방주를 만들 인물로 정하고 그에게 그 임무를 부여합니다.

엄청나게 낮은 연비와 환경파괴로 환경주의자들의 비난을 받는 자동차인 HUMMER 를 몰고, 숲을 싹 밀어버리고 만든 신개발 지역에 건설된 저택을 구입하는 등, 환경보호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고 무지했던 에반은 거의 반강제로 방주 제조 임무를 수행하면서 환경과 가족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고 새롭게 태어난다는 비교적 단순한 줄거리의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로도 알려졌는데, 마케팅 비용까지 포함하면, 2천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들였다고 하는군요. 177 쌍의 온갖 종류의 동물들을 참여시키는 것만 해도 상당한 비용이 들었을 것이고...

동물이 출연하는 영화 엔딩 타이틀이 올라갈 때 자주 볼 수 있는 "No animals were harmed in the making of this movie." 라는 문구를 사용하려면, American Humane Association 의 엄격한 모니터링 기준을 준수하여야 한다네요. 따라서, 촬영 중 동물들의 권리와 노동환경 보호를 위한 부대 비용이 꽤 들어간다고... 일반 촬영 스탭들의 노동 환경이 열악하기로 유명한 우리나라와는 사뭇 대비되는 부분이죠.

모든 동물들의 안전을 위해 서로 천적 관계인 동물이 함께 출연하는 장면은 모두 따로 찍은 후 CG 합성 작업을 거쳐야 했고, 출연 불가능한 일부 동물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하고, 거대한 방주를 실제로 제작하고, 막판의 홍수 장면을 실감나게 보여주기 위한 CG 작업 등등... 동물들의 대규모 출연비와 제작비가 정말 만만치 않아 보이네요.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영화의 주제인 "환경 보호"라는 메시지에 충실하기 위해, 영화 촬영장에서 자동차 이용과 1회용품 사용을 금지했고, 촬영에 의해 발생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맞먹는 2,050 그루의 나무를 버지니아와 캘리포니아주 야생동물 보호구역에 심었을 뿐 아니라, 세트 제작에 사용된 목재 등을 재활용하거나 Habitat for Humanity (사랑의 집짓기 운동 연합회) 에 기부하였다고 하네요.

노아의 방주를 만든다고 하길래, <The Day After Tomorrow, 2004> 에서처럼 오만한 인간들에게 엄청난 재앙이 오는 결말인가 싶었는데, 의외로 소박한 결말이어서 약간 심심하고 허무하긴 했지만, 나름 현실적인 결말을 내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사람들은 늘 환경에 대해 말들은 많이 하지만, 기후 변화의 속도와 강도는 아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의 위력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 같고, 갑자기 천재지변이 여기저기 출몰해서 금세 인류가 멸망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영화에서 환경 파괴로 인한 암울한 인류멸망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것도  몇번 보고 나니까, 사람들도 웬만한 충격과 공포에는 단련이 된 것도 같구요.

이 영화는 그런 메세지보다는, 성장과 개발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One single Act of Random Kindness at a time", 즉, 차라리 하나씩이라도 자연의 재생에 도움이 되는 작은 일들부터 행해나가자는 작은 요청을 던지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영화 제작진들 스스로도 이미 환경 보호를 위한 작은 실천을 몸소 행했다는 것이 이 엉성한 코미디 영화를 조금 더 설득력 있게 만드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2007년 7월 31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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