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벅 (2005)

OLD POSTS/영화 2013. 12. 27. 16:38


전에 친구에 대한 글을 쓰면서 친구의 정의로 "People who know you well, but like you anyway." 를 인용한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좋아하지 않게 되면 친구라는 관계는 끝났다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반면에 가족이라는 것은 아마도 친구보다 훨씬 더 까다롭고 힘든 관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은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않아도 계속 부대끼며 살아야 하니까요...

<Junebug>(2005) 은 이렇게 까다로운 관계인 가족을 담담하게 그려낸 영화 중 하나입니다. 20년 넘는 관록의 인디락 밴드 Yo La Tengo 가 그 음악을 담당했구요.

그러나, 음악이 나왔나 싶을 정도로 그 사용을 가능한 절제하고 있으며, 필요하다 싶은 장면에서만 조용히 하이든, 비발디, 슈베르트 등의 곡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오프닝과 엔딩에는 Syreeta Wright 의 1977년 곡인 Harmour Love 를 사용했는데, 당시 그녀의 남편이기도 했던 스티비 원더가 만든, 매우 흥겨운 곡이죠.


시카고에서 아트 갤러리를 운영하는 세련된 현대 여성인 매들린은 경매에 우연히 들른 조지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그리고,몇 달 후, 이 부부는 한 무명 화가와의 계약 건 때문에 노스 캐롤라이나로 여행을 하게 되는데, 마침 그 근처는 조지의 가족들이 사는 동네이기도 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전까지 매들린은 조지의 가족을 만난 적이 없다는 겁니다. 가족 잔치로 여겨지는 우리나라 결혼식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아마도 둘이서 혹은 친구들과 함께 간소한 결혼식만 치른 듯 하죠.

어쨌건, 조지의 가족들과 인사도 할겸 남편과 함께 노스 캐롤라이나에 간 매들린... 처음 만나는 다소 까다로울 듯한 화가와의 만남은 순조로운 듯 보이지만, 새로 만나는 남편의 가족들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듯 하고 좀 불편하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보면 진지한 버전의 <Meet the parents> 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준벅>은 코미디영화가 아니고 그 깊이와 묘사를 생각하면, 영 어울리지 않는 비유이긴 하죠. 결혼을 통해 결합하게 되는, 다소 이질적인 가족 간의 문화 충돌은 흔한 주제이겠지만,

평생 동네를 떠나본 일도 없어 보이는 보수적인 시골 마을의 독실한 기독교인인 조지의 가족들이 어릴 때부터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아시아,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이런저런 교육의 기회도 많이 가진 매들린과 허물없는 관계를 갖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한 비평가는 이 영화가 미국의 Red states 와 Blue states 의 문화 충돌이라고 표현했다고...


가정적인 며느리와는 거리가 먼 매들린이 왠지 못마땅하고 낯설기만 시어머니, 조용하게 은둔하는 걸 즐기는 과묵한 시아버지, 고등학교 중퇴에, 형에 대한 컴플렉스와 불만으로 가득찬 동생 Johnny 는 미국 청춘 드라마 <O.C.>로 스타가 된 Ben McKenzie 가 연기. 반항심과 분노를 제어하지 못해서 늘 폭발 직전의 다이나마이트 같고, 그의 아내인 유일하게 활달하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 Ashley 는 곧 출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영화 제목 Junebug 은 애쉴리가 뱃속의 아기에게 붙인 애칭이기도 하죠.

애쉴리만이 매들린에게 과잉에 가까운 호감과 친절을 내보이는데, 처음에 볼 때에는 푼수같고 왠지 모자라 보이는 그녀의 호들갑과 수다가 무뚝뚝한 가족들 속에서 버텨나가는 그녀 나름의 방편이라는 것을 느끼고 나니 가장 호감이 가면서 상당히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다가옵니다. 이 캐릭터를 너무나 잘 소화한 Amy Adams 는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수많은 연기상을 거머쥐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부분은 가족 간의 감정과 애증, 미묘한 갈등을 비교적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인데요, 대사를 통한 직접적인 묘사가 아니라 포착하기 힘든 암시 등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간접적으로 심리를 이해하게 하는 영리함을 보여주는 듯도 합니다.

가족이라서 표현하기 힘든 애정에 대해서도 가슴 찡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몇번 나오고,시아버지가 목공으로 만든 조각품이나 자니가 녹화하려 했던 미어캣에 관한 다큐멘터리 같은 것들... 교회에서의 모임이나 동네 사람들을 그려내는 과정에서 미국의 전형적인 보수적 시골 마을의 분위기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인상도 받게 됩니다.

미묘한 여운만을 남기면서 끝나는 이 영화가 그려내는 평범한 가족 간의 복잡한 감정들은  디테일부터 결말까지 우리 가족의 모습을 잘 그려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차피 가족 간에 쉽게 해결되는 것은 좀처럼 없고, 그 어떤 것도 예측하기 어려우며, 그 갈등의 본질을 파악한다는 건 무지 어려운 일이니까요...


매들린이 찾아가는 화가의 그림 장르는 아르 브뤼트 (Art Bruit : Outsider Art) 라고 하는 것인데, 가공되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예술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라고 하네요. 1945년, 정신 질환을 앓는 환자들의 창작 작품을 조사하던 장 뒤뷔페가 이들의 작품에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2007년 6월 21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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