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선천적 장애인과 후천적 장애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과 성인이 되어 앞을 못 보게 된 사람, 다시 말하면, 파란색이 뭔지, 무지개가 어떻게 보이는지 아예 모르는 사람과 잘 알고 있지만 어느날 갑자기 그 모든 것을 보지 못하게 된 사람, 과연 누가 더 불행할까.

원래부터 걸을 수 없었던 사람과 어느날 갑자기 걸을 수 없게 된 사람, 또는 태어날 때부터 침대에만 누워있어야 했던 사람과 어느날 갑자기 전신마비가 된 사람...

손가락 하나를 다쳐도 대단한 고통과 불편에 시달리는 듯이 엄살부리는 나로서는 그 양쪽의 고통 중 어느 쪽도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하긴 힘들지 않나 싶지만. 하지만 거리를 마음껏 활보하고, 가족과 포옹하고, 세계곳곳을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전신마비가 된다면, 그 박탈감과 상실감은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좌절과 고통일 것이다.

이번 주에 영화 <잠수종과 나비 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를 보기를 고대하고 있노라니, 몇년 전에 읽었던 이 영화의 원작 <잠수복과 나비>가 생각났다. 원제를 보면 "잠수종과 나비"가 더 적절한 번역인 것 같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갑갑함을 표현하는 면에서도 "잠수복"보다는 "잠수종"이 더 맞는 것 같고... 여기서 "나비"는 잠수종 안에 갇힌 그의 자유로운 정신을 상징한다.


43세 되던 해, 1995년 12월 8일에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locked-in syndrome", 즉, 전신마비 상태가 된 "장 도미니크 보비"는 정신은 멀쩡하지만 단지 왼쪽 눈꺼풀을 깜박거리는 것만이 가능한 환자이다. 그러나 그 사고 이전에 그는 39살에 <엘르>지 편집장이 된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열살짜리 아들과 여덟살짜리 딸의 자상한 아버지로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졌던 그가 이제 글을 쓰는 방식은 처절하게 느린 방식으로 진행된 다. E S A R I N T U L O M D P C F B V H G J Q Z Y X K W 라고 쓰여진 문자열은 프랑스어 사용빈도에 따라 글자를 배치한 알파벳 모음인데, 이 문자열을 따라가다가 장이 원하는 글자에서 눈을 깜박이면, 알파벳 한 자를 쓸 수 있는 방식이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이런 식으로 완성되고, 이런 극도의 인내를 요하는 작업에 의해서 쓰여진 글이 장장 176페이지의 기나긴 책이 된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들은 그의 상상의 나래를 따라서 전통방식으로 만든, 입에서 살살 녹는 소시지의 맛, 고다르의 영화 <미치광이 삐에로>의 한 장면, 또는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불운한 등장인물을 떠올리며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그의 육체가 자유로웠던 마지막 날에 들었던 비틀즈의 "A Day in the Life"를 추억한다. 그리고 1997년 3월 9일, 세상을 떠난다.

"예전의 삶은 아직도 나의 내부에서 불타오르고 있지만 점차 추억의 재가 되어버린다."


장 도미니크 보비처럼 자신이 장애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부인이 갑자기 열차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자, 뉴욕의 여피족 부부였던 그들이 새로운 인생을 받아들이고 극복해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그린 책, 대니 그레고리의 <모든 날이 소중하다>도 역시 장애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루 아침에 휠체어 신세가 된 아내를 받아들여야 하는 대니가 찾은 방법은 "사물을 새로이 바라보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 이다. 이 책은 글보다는 따스한 그림들로 가득 차 있으며, 바쁘게 인생을 살던 그가 세상을 "천천히,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전에는 스쳐 지나가던 작은 것들을, 나무를, 강아지를, 뉴욕을 새로이 바라보면서, 또는 그림으로 그리면서 "비둘기는 동물세계의 노숙자같아." 라는 통찰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또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진정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 대니는 말한다.

"모든 날이 소중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진심으로. 하지만 그것을 깨닫기 위해 때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장애를 얻기 전에는 하루하루의 소중함,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미처 느끼지 못하다가 장애를 만나고 나서 뒤늦게 그 소중함을 아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흔한 이야기이지만,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지 않나 싶다. 그래서, "Every single day in the Life"를 소중하게 여겨야겠다고 한번 더 생각해 본다.


2008년 1월 27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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