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애석하게도 나의 카페 순례 역사는 매우 짧습니다. 여행지를 정하고, 여행지에서 들러볼 곳들에 대한 계획을 짤 때, 그 지역의 멋진 카페를 꼭 들러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이 아주 최근이기 때문이죠.

몇년 전의 나는, 유럽 대륙을 포함하여 세계 여러나라를 여행을 할 기회를 꽤 누렸음에도, 그저 유명 관광지 또는 기껏해야 유명한 식당 정도를 들러보는데 급급한 초보 여행자였던지라,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카페에 앉아서 여유를 만끽하는 노련함을 갖지 못했었습니다.

단지 "여유"의 문제라기보다는 "카페의 진정한 매력"을 깨달은 것이 최근에 들어서이기 때문에, 그 전에는 "카페"라는 곳이 그 도시에서 얼마나 중요한 장소인지 미처 몰랐던 것이죠.

그런 이유로, 내가 즐거운 카페 순례를 경험했던 곳은 홍대 근처와 도쿄의 카페들이 거의 전부인 셈이네요. 사실 도쿄여행의 주목적은 카페와 레코드점 순방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카페들에 집중한 여행이기도 했죠. 도쿄 여행을 하기 전에 영화 <카페 뤼미에르>를 보면서, 그것이 여행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이런 나에게, 유럽 주요 도시들의 전설적인 카페들을 정리해 놓은 이 책은 세심하게 삽입된 사진들과 함께 꽤나 흐뭇한 대리만족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유럽의 카페라고 할 때 떠오르는 것들은 야외에 놓인 테이블들, 서너명이 둘러 앉아 밝은 표정으로 대화하는 모습들, 또는 혼자서 책이나 신문을 읽으며 여유를 즐기는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무엇보다도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그 안에 떠도는 자유로운 공기가 왠지 생생하게 느껴지구요.

카페가 가장 먼저 생겨난 곳은 터키의 이스탄불이라고 하지만, 카페의 분위기를 창조하고, 문화로서 발전시킨 것은 유럽인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카페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자유로이 사교와 담론을 즐기는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죠.

문화공간이 된 카페는 철학자들,시인들,소설가들,화가들,음악가들이 모이는 아지트가 되었으며, 혁명의 불씨를 일으키거나, 저널리즘의 토대를 닦는 창조적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고 합니다. 몽테스키외가 "유토피아적 몽상, 아나키즘적인 모반이 생겨나는 유일한 장소"라고 표현한 카페는 18세기부터 예술가와 문인들을 사로잡았던 것이죠.


이 책에서 나열하고 있는, 카페를 사랑했던 역사적 인물들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18세기 이후에 등장한 걸출한 문인과 예술인들을 모두 망라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네요. 그 대표적인 예로, 카페 프로코프 안에 전용 서재를 가지고 있었던 볼테르, 카페 드 플로르에서 살다시피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이탈리아 여행 중에 카페 그레코에서 모카 커피를 즐겨마셨던 괴테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커피와 카페를 매우 좋아했던 바흐가 침머만 카페하우스에서 정기적으로 음악을 연주하고 그 카페를 위해 "커피 칸타타"라는 소곡을 작곡했다는 일화도 인상적이구요.

이 책에 언급된 카페들의 단골들을 소개하자면, 라퐁텐, 루소, 몽테스키외, 볼테르, 당통, 마라, 로베스피에르, 나폴레옹, 스탕달, 발자크, 위고, 조르주 상드, 베를렌, 오스카 와일드, 벤자민 프랭클린, 고티에, 졸라, 발레리, 릴케, 장 콕토, 막스 에른스트, 피카소, 브라크, 앙드레 말로, 앙드레 지드, 헉슬리, 하인리히 만, 브레히트, 생택쥐페리, 자코메티, 헤밍웨이, 카뮈, 롤랑 바르트, 미테랑, 장 폴 벨몽도, 알랭 들롱, 로만 폴란스키,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에디트 피아프, 카사노바, 괴테, 로시니, 바이런, 쇼펜하우어, 바그너, 디킨스, 프루스트, 모네, 마네, 하이네, 니체, 토마스 만, 단눈치오, 멘델스존, 리스트, 보들레르, 안데르센, 고골리, 월터 스콧, 마크 트웨인, 토스카니니, 베를리오즈, 로시니, 비제, 구노, 바흐, 고흐, 로트렉, 고갱, 드가, 스위프트, 포프,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츠바이크, 프로이트, 트로츠키, 알텐베르크, 슈니츨러, 로자 룩셈부르크, 칸딘스키, 케스트너, 카프카, 스메타나, 바르톡 .... 등등 이 인물들 중 몇몇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튀었을 지성의 불꽃과 창작의 열정을 생각해 보면...

훌륭한 인물들이 드나들어서 카페 문화가 멋있어지기도 했지만, 카페라는 공간 안에서 지적, 예술적 교류를 통해 그들의 활발한 창작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했기에 카페와 예술 사이에는 서로가 서로를 발전시키는 바람직한 관계가 형성되었다고나 할까...



따라서 이 책의 장점은, 카페의 역사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철학,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등을 총망라하는 유럽 문화사의 대강의 흐름을 엿보는 재미까지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카페의 역사를 따라서 이스탄불, 파리, 베네치아, 로마, 런던, 빈, 베를린, 프라하, 부다페스트를 여행하며 카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책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 도시는 역시 파리입니다. 파리에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던 이유는 파리라는 도시가 아름다와서이기도 하지만 파리의 카페 문화가 그들을 매료시켰고, 그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동시대의 예술가들이 서로가 서로를 불러들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혁명기에는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담론의 장이 되었고, 평화로운 시기에는 사교의 장으로, 문화가 꽃피던 벨 에포크에는 자유로운 창작의 공방을 제공했던 카페, 뒤늦게야 카페가 도입된 우리나라에서는 그 자유로운 공기는 전달되지 않은 채 프랜차이즈와 체인점의 자본주의 상술만이 그 악취를 풍기는 공간이 되었으니 애석할 따름이죠.

짐 자무쉬의 영화 <커피와 담배>에 등장하던 허름하고 오래된 카페들과 그 카페 안에서 낭만과 방종을 즐기는 자유인들을 만나려면 어디에 가야하는 걸까...

2008년 1월 7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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