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을 혐오하는 사람도 있고, 재미있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독설을 사랑하는 사람에 속한다. 물론 악의와 독기만으로 가득찬 독설은 제외하고, 유머 넘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독설에 능한 사람에게는 존경을 표하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커트 보네거트는 천재적이라고 불러주고 싶은 독설가이고, SF소설의 팬들을 거느린 뛰어난 상상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가 이렇게 블랙 유머에 뛰어난 대가가 된 것에는 2차대전 당시 하룻밤에 13만명을 몰살한 드레스덴 폭격의 현장을 경험한 것도 한 요인이 아닐까. 그 엄청난 인간성 말살의 순간을 겪음으로써 그는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는 동시에 결코 휴머니즘을 잃지 않는 대표적인 반전작가가 된 듯하다.

미국 잡지 In These Times 에 연재되었던 글을 엮어낸 그의 칼럼집, <나라없는 사람>은 그의 철학과 글빨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는 도중에 최소한 스무 번 정도는 박장대소를 하였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 게 좋다."



삶이 너무 두렵고 절망적이면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유머밖에 없는 것 아닐까 싶지만, 그가 바라보는 현재의 세계는 유머가 더이상 삶의 끔찍함에 대한 방어 메카니즘으로 작용할 수 없는, 이미 너무 엉망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특히나 저자가 "나라없는 사람"이 되고 싶어할 만큼이나 심각하게 망가진 미국은, 굳이 좋게 말하자면 가난한 사람도 비만이 될 수 있는 사회이지만, 나쁘게 보자면, 국가적 의료보험이나 제대로 된 공교육 제도가 없는 사회, 사형 집행과 전쟁이 오락거리가 되는 사회, 대학에 가려면 천문학적 돈이 드는 사회이다.

미국이 벌이고 있는 전쟁은 단지 억만장자들을 조만장자들로 만드는 일일 뿐이며, 단지 중증의 화석연료 중독자들이 석유를 얻기 위해 폭력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고, 한마디로 미국은 "돈에 대한 애착이 인간에 대한 애정을 압도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그런 미국을 따라가지 못해 안달인 우리나라는 어떻겠는가. 떡고물이라도 얻어보겠다고 "국익"을 위해 이라크에 파병하는 우리나라는 위에 나열된 단점들마저 모방하려고 열심히 애쓰고 있는 꼴이 아닌가. 따라서 그의 글들은 현재의 세계를 바라보는 냉철한 관점을 제공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는 데에도 매우 적절하고 유효하다.

그가 손수 그린 일러스트레이션들까지 곁들여진 이 책은 얄팍한 두께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의 모순을 조롱하고 인류의 폐부를 찔러대는 날선 풍자가 묵직하게 담겨있다. 그것은 이 책이,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이라크전 반대 활동에 참여하고 부시의 애국법에 반대하여 "나는 미국인이 아니다"라는 캠페인을 벌인 진정한 지식인이 남긴 마지막 기록이기 때문일 것이다.


2007년 12월 16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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