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인쇄물 - IKEA 카탈로그,
이케아와 잉바르 캄프라드에 이어서...

이케아라는 브랜드가 이렇게 크게 성공한 그 이면에는 스웨덴이라는 국가 브랜드의 이미지가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케아가 너무 성장해 버린 지금에는 반대로 이케아가 스웨덴의 국가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작용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스웨덴 국기의 색깔인 파랑과 노랑을 이케아의 브랜드 로고에 거의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소위 국민기업의 이미지도 엿볼 수 있구요.


<이케아> 책을 읽으면서 지리적, 정서적으로 다소 멀게 느껴지는 나라인 스웨덴을 좀더 자세히 접할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참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우리에게는 그리 가까운 나라가 아니지만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스웨덴은, 말괄량이 삐삐의 작가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여사의 환상적 동화들이나 팝 그룹 ABBA 가 70,80년대에 전파한 젊고 생기발랄한 이미지 등으로 인해 "친근하다, 안전하다, 그리고 유쾌하다는 느낌" 을 떠오르게 한다고 합니다. Yngwie Malmsteen 같은 기타선수 덕에 Rock 의 강국같아 보이기도 하구요... 볼보 자동차나 아니카 소렌스탐 등도 있죠...

안전하다는 느낌은 1814년 이래 한번도 전쟁을 치르지 않은 채, 중립 정책을 고수한 역사적 상황과 맞물려 있기도 하며,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사회적 진보의 대명사로써 정의와 평등의 요람, 여성해방과 남녀 평등의 고향이라는 인상을 심어 준 것도 좋은 국가 이미지에 큰 역할을 했을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 노동자들이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 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동차, 전화, 텔레비전, 주말 별장, 모터 보트를 가지고 있는 나라, 빈곤을 추방시키고, 실업을 극복하고 문맹을 제거한 나라, 모든 사람이 똑같은 교육의 기회를 갖는 나라, 단순히 중립만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베트남전을 비판하거나 제3세계에 대한 지원에도 힘을 아끼지 않는 등 세계 평화에 기여하려고 애쓰는 나라, 등등... 스웨덴 국민이라면 자국에 자부심을 느낄만 하지 않을까 싶네요.

스웨덴이 지금의 위상에 오르기까지에는 일찌기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세력을 얻었던 것이 큰 요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932년 총리직에 오른 페르 알빈 한손은 나라의 총리이지만 전차로 출근하는 검소한 사람으로 스웨덴을 복지국가로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국민들이 능력과 무관하게 사회적 보살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실업자보험, 국민 연금, 육아비, 의료보험, 주거비 보조금 제도 등을 지원하는 "국민의 가정" 이라는 모델을 만들어 냈습니다. 따라서 스웨덴 사회에서는 특권층도 소외계층도 있을 수 없으며 모두가 동등할 것임을 약속한 한손 총리는 진정한 의미의 기회 균등 법칙을 구현하여 누구나 가까운 거리에 최고의 학교, 유치원, 병원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특정 계층만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거부한 국가 정책은 심지어는 온 국민이 너무 균일한 생활방식을 갖는 것이 아니냐, 혹은 개성을 무시하는 집단주의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균일화를 통해 자원의 절약과 비용의 절감을 이루어 내고 국민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켜주는 나라를 만든 스웨덴은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국가를 성공적으로 조화시킨 모델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독일 작가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는 스웨덴을 두고, "부유한 사람들이 무시당하고 배척당하는 사회", "부자들이 정직하게 세금을 내지만 그 세금에 대해 아무도 관심과 이해를 가져주지 않는 환경" 이라고까지 표현했으니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회이네요.

재산이 많은 시민층은 오히려 무력하고 사회적 발언권을 갖지 못하며, 노동자가 기업의 이윤을 분배받는 모델을 시도하기도 하는 이 진보적인 나라는 바로 그 때문에 기업가들이 스웨덴을 떠나게 만드는 부작용을 겪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케아의 창립자가 그랬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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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안전망이 잘 갖추어지고, 기회균등이 실현된 스웨덴이 참 부럽습니다.

사회안전망이 갖추어지지 않은 나라의 특징이 경쟁이 심화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죽어라 외워 일류대학가야 좋은 직장간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가난해질지 모른다, 집을 소유하지 못해 노숙자가 되면 어쩌나, 병이라도 걸려 병원비 못내면 어쩌지... 하는 공포감이 사회를 움직여 치열한 경쟁사회를 만든다는 것인데요....

직장에서 잘리면 가족은 어떻게 되나,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되나... 하는 삶의 공포는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을 그냥 묵과하게 만들게 되고, 이런 공포 속에서 노동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동시에 실업자 비율도 높아만 가게 됩니다.

우리나라가 열심히 추종하는 미국식 시스템은 선진국들 중에서 빈부의 격차를 가장 심화시키는 경쟁 시스템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선진국이 되는 방법에 미국식만 있는 것이 절대 아니죠.

기회의 평등이라는 말로 위장된 무한경쟁 게임에서 게임에 참여할 기회를 아예 갖지 못하거나, 게임에서 승리할 확률이 매우 낮은 소외 계층이 매우 많음에도 불구하고, 기회의 평등 이라는 게임을 통해 경제적 신분상승 통로가 "평등하게" 열려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세뇌에서 이제는 조금씩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울대생의 40%가 경제적으로 상위층에 속한다는 통계가 말해 주듯이 이미 불공정한 경쟁, 불공정한 게임 안에서 "평등"을 논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건 이제 딴나라 이야기라는 걸 다들 아니까요.

미국 사회비평가 얼 쇼리스는 희망의 인문학을 통해 미국의 경쟁 체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 미국에서 "평등"이라는 개념은 모호하다. 평등의 주요한 쓰임새는 승자와 패자의 게임을 정당화하고, 결과가 미리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감춤으로써 승자에게는 자부심을, 패자에게는 수치심을 안겨줄 가능성이 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에도 진정한 의미의 평등이 실현되기를 염원하면서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에 나온 다음 글로 3부작의 이케아 이야기를 맺겠습니다.

빈부의 차이란 경제발전에 따라 해소되는 것이 아닙니다. 빈부의 차이는 正義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라는 말은 경제학의 용어가 아닙니다. 경제학 공부에서는 정의라는 말을 배우지 않습니다. 정의란 정치용어입니다.

빈부의 차이를 고치려고 한다면 정치활동, 즉 의논하고 정책을 결정하여, 그것을 없앨 수 있는 사회나 경제구조로 바꾸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2007년 6월 29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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