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 (Max Weber : 1864~1920) 가 내린 근대국가의 정의를 보면 "정당한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조직이 바로 국가의 본질이라는 설명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 독점하는 권력의 대표적인 것이 경찰권, 처벌권, 교전권(전쟁권) 이라고 하구요.

그러고보면, 우리는 국가에 의한 폭력에 매우 관대한 경향이 많습니다. 이라크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어갈 때보다도 테러리스트나 범죄자 한 명이 수십명을 죽였을 때 더 호들갑을 떱니다. 군인이나 경찰의 폭력은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근대 사회가 되면서 사람들은 국가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넘겨주면 국가가 개인을 정당하게 보호해 줄 것이라 기대했죠. 그러나, 지난 20세기를 돌이켜 살펴보면
국가폭력에 의해 살해된 사람의 수가 전례를 찾을 수 없이 엄청났던 시대라고 합니다.

지난 100년간 "국가"에 의해 살해된 수는 2억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1억 3천명은 타국민이 아니라 자국민을 살해한 경우입니다. 최근 1989년부터 1998년간의 10년 기록만 보아도 그 사이에 108건의 무력분쟁이 발생했고 이 중에 92건이 내전이라고 하죠. 내전이라는 건 자국의 국민이 희생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불합리한 내전의 사례에 대해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폭력 관련하여 한 국가에 대해서 분석한 것을 보면, 폭력에 의해 희생된 자국민의 수가 많은 시대는 그 나라의 군사력이 강했던 시대와 일치한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미국은 묘하게도 적절한 예가 됩니다. 한국전, 베트남전, 그라나다 및 파나마 침략,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 등등, 아이티,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수단, 코소보 등 세계 각지에 "인도적 개입"이라는 명목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많은 희생자를 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끊임없이 전쟁을 해 온 미국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더 폭력에 물들고 있습니다. 비록 자국에서 전쟁을 치르지 않고, 자국민을 죽이지 않았더라도, 타국에서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사회로 복귀시키고, 군인 지원자를 끊임없이 길러내는 과정에서, 그리고 TV에서는 계속해서 전쟁 장면을 중계하고 "자기 방어를 위한" 총기 소지를 허용하는 이런 환경에서, 미국 사회에는 다른 형태의 폭력들이 자라나게 되죠.

갱들에 의한 폭력, 연쇄살인범등 범죄에 의한 폭력, 테러리스트에 의한 폭력, 그리고 때로는 아무런 이유도 없는 모방 폭력 ... 버지니아텍 사건 이후 총기 소지 허용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하자 "피해자들이 총을 가졌더라면 자신을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일부 미국인의 주장을 보면서 국가의 탄생에서부터 원주민 정복이라는 폭력의 역사였던 미국의 어두운 과거가 지워지지 않고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로, 코스타리카 헌법에는 "군사력을 유지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이웃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이 나라는 정부가 국민에게 가하는 폭력을 제한하고자 이 규정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중남미 대부분 국가에서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 정권을 만들고 국민에게 독재와 폭력을 가하는 일이 자행되자 이를 막기 위해 평화헌법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폭력을 이용하지 않고 평화를 쟁취한 이야기는 레너드 위벌리 (Leonard Wibberley :1915~1983) 의 1955년도 소설인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The Mouse that Roared)" 에도 나옵니다.


이 소설은 나온 지 50년이 지났지만 날카로운 풍자와 통찰력으로 지금 읽어도 여전히 상당한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영리한 외교 정책을 쓰는 북한을 그랜드 펜윅 공국에 비유한 기사도 있었던 것 같은데... 아주 작은 나라이지만 미국과 맞장떠서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는...

이 소설은 1959년 Peter Sellers 가 1인 3역으로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심심풀이로 볼만한 영화같습니다. Peter Sellers 는 Stanley Kubrick 의 1964년 고전인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에서도 천재과학자 스트레인지러브 박사 등 1인 3역으로 주연을 했던 그 배우. 막판에 폭탄을 둘러싼 숨막히는(?) 액션이 특히 인상적 ...ㅋㅋㅋ

소설에서 묘사된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등의 면모는 현재와 비교해 볼 때, 각국의 정치와 문화가 정말 얼마나 변하지 않는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반복될 수 밖에 없음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2007년 5월 2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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