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안좋아. 네가 들려주는 이 위로의 음악에도 난 기분이 나아지지가 않는다구.
네가 지키지 않는 약속들을 하기 때문에 난 기분이 좋지가 않단 말이야.

너의 집으로 들어가서 우리의 고독을 함께 나눠 보면 어때?
고독 말고는 이 세상에서 그 어느 것도 순수하지가 않거든.

이해가 안돼. 마치 렌즈를 통해 멀리서 널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누군가 나타나도, 난 그냥 여기 앉아서 드럼 사운드를 듣고 있을 걸.
전에는 그걸 고독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는데.

넌 알지 몰라, 내가 했었던 그 한심한 짓들 말이야.
다른 이들처럼 멍하니 뻗어 있었지. 솔직히 말하면 난 피하려고 했는데...

다시 아이였을 때로 돌아가면 우리는 언제 멈춰야 할지를 알았을거야.
하지만 그 착한 아이들은 지금 모두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어.
아무도 뭔가를 얻지도 이루지도 못했지.




어느 순간, 그 전까지의 삶에 대해 부정하고 지워 버리고 싶을 때, 그 순간까지의 거짓된 세상과 인간 관계에 대한 믿음을 다 깨고 싶을 때, 그리고 그 순간까지의 '나'를 아름답지 않은 '너'로 만들어 버리고는 저질렀던 그 모든 '나'의 흔적을 덮어 버리고 싶을 때, 난 Mew 의 <Comforting Sounds> 를 듣는다.

이 곡에 등장하는 '너'는 실은 그 순간 이전의 '나'다. '너'는 음악으로 '나'를 위로하려고 들지 마라. '네'가 했던 미래에 대한 약속은 늘 깨지게 되어 있어. 기운에 넘치던 '너', 점점 입을 닫게 되어 가는 '나', 그 순간 이후 '내'가 바라보는 '너'는 늘 마치 망원경 건너편의 추억처럼 변해 있다. 그건 무척이나 슬픈 일이다.

지금의 '내'가 되어 보니, 지난 '너'의 일들이 다 한심하다. 뽕맞은 상태에서 거짓으로 세상과 인간을 대하고 살았던 거야. 아마 그때도 그런 삶을 피하고 싶긴 했어.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하면서 말이지. 만약에 다시 10대 후반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지금 이 순간 이후에 '나'에 대해 이렇게 후회하고 있지 않도록 그 한심한 삶을 멈추었을지 몰라. 하지만 어쨌건 지금 이 순간 이후, '나'는 '너'를 부정하고 살게 될거야.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이 곡을 가끔씩 미친듯이 들을 때가 있다. 이 세상과 삶에 속았다고 느껴질 때, 그 이전의 '나'와 그 이후의 '나'를 분리하려는, 그래서 이전의 '나'의 삶의 흔적을 지우고 모든 것을 잊으려는 몸부림이 필요할 때다.

인간은 태어나서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씩 파괴되어감을 경험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음악이 필요하고, 쾌락은 강해지고, 고독은 깊어간다. 그러다가 나의 모든 것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이 오면 그 날은 눈물나는 날이다.

어제 밤과 오늘 아침, Mew 의 <Comforting Sounds> 를 연주하고 카피를 하면서 계속해서 미친듯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다시 이전의 '나'를 지우고 싶은 제4의 위기 상태를 맞으려나 보다. 나이를 먹을수록 파괴되는 것에는 '용기'도 있다. 용기가 사라지는 날 나는 죽는거다. 그래서 용기라는 나의 생명 연장을 위해 또다시 음악을 듣고 쾌락을 추구하지만, 남겨진 고독은 더 커진다.

이 무지막지한 상념에 빠지게 하는 <Comforting Sounds> 에 대한 연주 정보를 간략하게 만들어 올릴 생각이니 혹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이 곡을 듣고 연주해 보면서 '용기'에 관한 생각을 하시기를. 이 곡은 사용 재료는 아주 간단하지만 그 사운드 구성 미학이 대단하다.


2008년 12월 14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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