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noratio elenchi

OLD POSTS/그외 2014. 1. 15. 10:12


가끔 이런저런 사업 아이디어와 관련 사업모델을 PT 하는 자리에 들어 갈 일이 있다. 그리고 가만히 한참을 듣고 있다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불쑥 던질 때도 있다.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전 하나도 이해를 못하겠거든요."

PT 를 하던 (나보다 한참) 선배는 "쟤 왜 저래?" 투덜대며 하던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함께 듣고 있던 후배들은 '싸아'해 한다. 며칠이 지나서 후배들과 커피 한잔 하는데 그 PT 때 '뜨아'했단다. 내가 원래 그런 놈이니까 하고 넘어 갔으려니... 난 그냥 피식 웃는다. 물론 악의는 없다는 걸 잘 아니까.

그러려고 했던 것이 아님에도 입을 열자 불쑥 튀어 나와 버린 그 말과 행동이 실은 내 성격과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 난 뭐 피곤하게 토론의 "예의' 따위 지켜가며 선배건 후배건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는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은 일단 아니다. 그렇다고 싸가지 없게 마구 내뱉는 부류는 더더욱 아니다.

하긴 세상 사람 누구나 자기 하고픈 말만 하고 나면 그만 아니던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라고? 그것도 분명히 능력이긴 하지. 하지만 아무 이야기나 마냥 들어 주는 거, 글쎄 난 그건 아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는 십중팔구 상대방의 관점 및 논점의 투영이기 때문에 내 관점과 논점에서 보면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들이 대부분이다.

ignoratio elenchi (irrelevant thesis), 논점 일탈, 제기되지 않은 논점으로 상대를 반박하는 오류, 멀어져만 가는 본질, 그리고 원인과 결과의 왜곡... 이것이 사람을 정말 피곤하고 지치게 만든다. 본질은 하나요, 본질 흐리기는 아홉인 세상이고 우리는 그렇게 교육받는다.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이해를 못하겠거든요." 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는 요구 제기는 쉽지 않다.

여기저기 찾아 낸 각종 정보와 자료들의 짜깁기와 그렇게 생성된 객관성에 기반한 텍스트의 작위적 해석, 상대방의 기를 눌러 버리는 현학적 문구,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는 잡다한 지식의 나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쭈욱 끌어가면서 본질 (essence) 에서 점차로 멀어지게 만드는 언변의 달인들 때문이다. 특히 테크놀러지, 경제, 정치, 사업 분야에 이런 '것'들이 많아 보인다.

짜증이 난다. 나는 논의의 대상이 그 무엇이던 간에 그 대상을 둘러 싼 양자 또는 다자간 커뮤니케이션에서 그 대상에 포커스를 맞춘 직설을 선호하며 그 주위를 뱅뱅 돌린 각종 논리에 기반한 달변을 대단히 혐오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가 아니라 "그러니까 그것을 왜 하겠다는 거야? 이 문제가 생기면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는데 이 문제는 시나리오에 포함시켰나..." 라는 것이 나의 주된 논점이다.

***

가령 누군가 이런 PT 를 했다고 하자. 제목은 '영원한 생명'. 서론은 "인간의 피를 마시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본론은 "피를 마시면 젊어지고 하늘을 날고 힘이 세어지고 어쩌구 저쩌구...", 그리고 결론은 "그러니 인간의 피를 마시도록 하자" 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가 "그런데 인간의 피는 어떻게 구하죠" 의문을 제기했다고 하자. 대전제에 관한 질문이다. "혈액은행을 터나요 아니면 사람을 죽이나요" 나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남의 생명은 단축시키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느냐, 라는 문제 제기이기도 한데 이 논점의 제기는 대단히 중요하다. 애당초 이 문제의 본질이니까.

아니면 이런 대전제 제기도 가능하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대신 영혼을 잃어야 한다" 라는... 어쨌건 나는 어떤 논의건 간에 그 기저에 깔려 있을 법한 대전제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사업모델이 대전제를 깨는 것이거나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면 난 다시 불쑥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라고 할지 모른다.

각종 데이타와 비교적 논리적 판단에 의거하여 잠재 수요 규모를 파악하고 시장 상황을 진단하고 신규 아이템의 영향력을 따져보고 예상 매출을 산출하는 과정 등을 쭉 설명하는 것은 실은 ignoratio elenchi 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정책, 법규, 타사업 잠식, 규제, 형평성 등의 대전제 고려없이 개발했던 사업모델이 대전제를 고려하게 되면 때에 따라서 일부 수정이 아닌 전면 개편되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니까.

"A 라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대단히 유망한 사업 아이템이며 S 업체와 논의를 해왔고 거의 모든 것이 합의 및 정리가 된 상황이다." PT 는 이러한 진행 경과를 팀원들에게 알리고 의견을 구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PT 시작부터 "A 라는 아이디어가 도대체 가능한건가"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인데, 나는 이미 거의 동일한 아이템으로 두번이나 물먹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들어 보기로 한다. 뭔가 다른 것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그 '대전제'에 대해 파악하지 못하면 그 이후의 어떠한 논의 과정에 대해서도 좀처럼 이해를 하지 못하는 뇌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선배의 PT 를 듣고 있으면서도 나는 내내 "아이디어가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아이디어 자체가 지금 성립하는 건가"를 계속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유사 사업에 대한 先경험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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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쑥 그런 싸가지 없어 보이는 발언을 했던 것은 발표자가 그 대전제 관련한 질문이 계속 나오는데도 답변을 회피하면서 "아이디어 자체의 우수성만을 강조"하고 관련 파트너 업체들과 아주 이야기가 잘 되고 있으니 쓰잘데 없는 호기심은 버리라고만 했기 때문인데, 여기서 또 궁금한 것. "도대체 대전제 고려 없이 뭐가 우수하고 또 뭐가 이야기가 잘 되고 있다는 것인지..."

각종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는 것이 "아 그건 파트너 업체가 다 가능하다니까 가능하단다." 가 전부다. 그러니까 발표자의 PT 는 파트너 업체에 대한 신뢰를 바탕에 깔고 있다,라는 것인데 실은 이것도 오류다. 합리적인 논리는 어떤 식으로든 만들 수 있다. 따라서 PT 의 본질 읽기는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니며 발표자 스스로 대전제와 논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대개 그 PT 는 ignoratio elenchi 에 의해 망가지기 십상이다.


2009년 5월 12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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