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2010년을 강타했다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에 이어서 EBS에서는 지난 1월 마이클 샌델의 하버드 대학 특강을 방송했다. <Justice>라는 제목의 이 강의의 내용은 철학(또는 윤리) 입문 정도로 보아도 될 것 같다.

DVD로도 나온다고 한다. 자식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은데 적당한 자료가 없어 고민 중이었다면 이런 강의도 괜찮아 보인다. 주입식 논술보다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고 의견을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철학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뭐 어쨌건. 1시간짜리 강의가 12개, 총 12강으로 이루어져 있다. 분량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 중 6강은 칸트에 관한 이야기다. 18세기 철학의 중심을 독일로 옮겨 왔다는 독일 철학의 대명사, 독일 사람이 사랑하는 세사람, 베토벤, 괴테, 그리고 칸트. 철학은 이 사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한다.

하여간 마이클 샌델은 칸트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중간중간 열심히 경청하는 또는 교수와 의견을 주고 받는 수강생들의 모습이 잡히는데 난데없에 스파이더맨의 모습이 잡힌다. 물론 스파이더맨의 복장을 뒤집어 쓴 학생인 것 같지만.


얼마 전 <MBC스페셜>에 김제동, 안철수, 박경철이 출연해서 스파이더맨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영화 마지막에 스파이더맨이 주절주절하는 대사인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This is my gift, my curse."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에 대해 이야기한다. (놓쳤다면 아쉬울만한 내용인 듯 하다. 듣기로는 분량이 꽤 되었다고 들었는데 그에 비해 방송시간은 비교적 짧다. 미래는 SNS 로 통한다, 뭐 이런 식의 이야기도 했다고 하고...)

하여간 영화에서처럼 평소에 "정의"에 대해 고민해오던 스파이더맨이라서 이 철학 강의를 들으러 온 것인가... 이런 설정이 꽤나 흥미롭다. 저 스파이더맨 옷을 뒤집어 쓴 학생은 아마도 정말로 정의를 고민하는 스파이더맨의 입장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이 영상을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약간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그외 기타 스퍼히어로들... 이 수퍼히어로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고민을 한다. "나에게는 큰 힘이 주어져 있는데 이 힘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쓰는 법을 배워야지.

수퍼히어로들은 우선 철학부터 배워야 한다. 당연하다. 그 큰 힘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배워야 한다는 거다. 물론 이 배움에는 제대로 쓰지 못했을 때에는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라는 내용도 포함된다. 따라서 생각해보면 나에게 힘이 주어졌을 때 가장 먼저 찾을 것은 자연스럽게 철학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철학이어야 하겠지.

따라서 스파이더맨이 칸트를 배우러 오는 것은 이색적인 것이 아니라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어야 할지도 모른다. 진정한 인간의 자유와 욕망에의 복종을 구별하고 스스로를 이성적으로 통제하며 윤리에 대한 자율적 판단 기준을 확립하지 못한 수퍼히어로라면 결국 그 힘을 어디에다 쓰게 될까...

큰 힘을 획득한 다음 그것을 자신들의 욕망에 복종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며 그것이 자유라고 떠드는 무리들이 유난히 설치는 시기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난 특히 음악 분야가 그런거 같더라. MB는 큰힘 중독자 같다) 칸트는 그들이 그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그 큰 힘을 남용하는 것을 보고 자신에게 배우러 온 스파이더맨에게 뭐라고 말할까...


2011년 2월 4일 작성

Posted by bopboy
TAG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