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아람누리 미술관에서 12월 21일부터 3월 20일까지 전시되는 <장 자크 상페 특별전 - 꼬마 니콜라의 아름다운 날들>을 지난 주에 다녀왔다.


장 자크 상페는 꼬마 니콜라 시리즈 (르네 고시니 지음), 좀머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우리 아빠는 엉뚱해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발레 소녀 카트린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바보 같은 짓을 했어 (다니엘 오퇴유 지음)의 삽화가이자, 각별한 마음, 얼굴 빨개지는 아이, 속 깊은 이성친구, 겹겹의 의도,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아름다운 날들, 사치와 평온과 쾌락, 파리 스케치, 어설픈 경쟁, 거창한 꿈, 프랑스 스케치, 뉴욕 스케치, 인생은 단순한 균형의 문제, 랑베르 씨의 신분 상승, 작은 차이, 단순한 건 없어, 모든 것이 복잡해 등의 그림 이야기책들을 지은 프랑스 작가이다.

솔직히 말해서 일러스트레이터의 원화 전시라는 것은 - 더구나 상페처럼 모노톤의 소박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경우에는 - 그리 강렬한 매력을 가지는 전시는 아니다. 유화처럼 원본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조각처럼 입체적인 관람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말이다. 다만 그의 펜놀림과 연필 자국, 가끔씩 보이는 붓질을 조금 더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점과 조금 더 큰 사이즈로 그림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 경우에는 간만에 집 근처에서 문화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 발길을 이끌어 새해가 오기 며칠 전에 전시회장을 찾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시는 꽤 마음에 들었다. 워낙에 상페의 팬이기도 하지만,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그의 아기자기한 작품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둘러보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니 마치 내가 그의 그림 속의 소박한 인물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 인물들이 작은 것이 아니라, 세상이 너무 큰 것입니다."
- 장 자크 상페 -

상페의 그림은 원거리에서 본 배경 속에 조그만 인물들을 그려 넣는 것이 특징이다. 그림의 선은 단순하며, 묘사는 간결하고, 필체는 부드럽고 섬세하다. 주로 한 컷의 그림이 전부이며 대사는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지만, 그 속에는 촌철살인의 유머가 깃들어 있다. 세밀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림체와 날카로운 직관과 통찰을 동시에 지닌 그는 현대 사회의 모순과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슬쩍 비꼬면서 우리를 미소짓게 만든다.

"유머는 곤경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우리가 일시적인 궁지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제공한다."
 - 장 자크 상페 -


                             도록에서 찰칵

그러나 현대 문명을 풍자하면서도 결코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기에 그의 작품 속의 인물들은 서툴고 소심하며, 외롭고 우스꽝스럽지만, 우리로 하여금 냉소보다는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때로는 경쾌하고 익살스러운 유머로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하며 어떤 작품은 한동안 생각할 여지를 남기면서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의 그림은 사소한 순간들을 포착함으로써 가볍지만 소중한 일상을 깨닫게 만드는 힘이 있다. 프랑스 언론 <파리 마치>는 상페의 작품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현대 사회에 대해 사회학 논문 1천 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전시장 안에는 작품 전시 외에도 그의 작업실 공간을 꾸며 놓기도 하고, 그의 책들을 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놓았으며, 전시장 밖에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색칠한 그의 작품들을 붙여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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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 악단에서 연주하는 것을 꿈꾸며 혼자 재즈 음악가들을 그리는 것에서 그림을 시작했다는 그는, (이번 전시에서 "상페의 음악가들" 시리즈를 볼 수 있다.) 학교에서 정식 그림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며, 젊었을 때에는 제대로된 직장을 얻지 못해서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고 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수줍어 하는 상페는 "옷차림은 늘 단정하고, 세금도 어김없이 내는, 그렇지만 주변인" 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한다.


이번 전시회 팜플렛 표지에 담긴 이 연주자는 항상 인물을 작게 그리는 그가 모처럼 큼직하게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마냥 소박하고 겸손하기만 하다.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평범한 사람들을 세심하게 바라보는 그의 태도가 이처럼 따스하고 소박한 감성을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 나는 위대한 사람들은 위대한 말과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위대하지 않고 아무리 가소로운 것일지라도
그것을 이루려는 인간들의 노력에 나는 감탄한다."
- 장 자크 상페 -


ps. 처음으로 어린 아이를 데리고 전시회를 관람하다 보니까, 아주 큰 그림이 아닌 경우에는 그림이 걸린 높이와 아이의 시선을 맞추기 위해서는 내내 아이를 안고 다닐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걷지 못하는 아이니까 당연히 안아야 하지만, 유모차를 태우는 경우에도 시선은 여전히 낮다. 앞으로 종종 인식하게 될 "꼬마들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여러가지로 불편함이 많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2011년 1월 6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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