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위대한 작곡가 스메타나 (Bedrich Smetana, 1824 ~ 1884) 는 자신의 조국인 보헤미아의 아름다운 자연과 전설에서 6 가지 테마를 골라 하나씩 관현악곡으로 5년에 걸쳐 만들고 그것들의 연작 교향시 <Ma Vlast 나의 조국> 를 1879년 완성시킨다.

제1곡은 프라하로 흐르는 몰다우 강변의 고성(古城) Vysehrad 비세흐라드, 제2곡은 북쪽 두개의 물줄기에서 남쪽 하류로 가면서 거대해지는, 체코에서 가장 긴 강 Die Moldau 몰다우, 제3곡은 보헤미아의 娘子軍 (낭자군) 을 이끄는 여전사 Sarka 사르카에 관한 전설,

제4곡에서는 지평선으로 이어지는 보헤미아의 들녘과 숲 Aus Bohmens Hain und Flur (From Bohemian's Woods and Fields), 제5곡에서는 얀 후스 (Huss) 가 종교개혁을 위해 벌인 국왕과의 투쟁인 Tabor, 그리고 제6곡은 Huss 교도들의 진지였던 山 인 Blanik 블라닉.

스메타나가 이 곡을 만들때 만해도 그는 이미 청각을 상실한 상태였다고 하며, 대표적인 민족주의 작곡가답게 그가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은 지금도 체코 사람들에 살아 있다고도 한다.

6곡의 교향시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2번째 곡 Moldau (Vltava 의 독일식 표기).  먼저 Flute 이 지하에서 솟아 나오는 두 물줄기를 표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작은 물줄기가 모여서 점점 큰 줄기가 되고, 그 줄기들이 모여 급류를 형성하기도 하다가 하류에 다다르게 되고...



이어서 드디어 바이올린이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공간의 캔버스에 공기의 울림을 흔들어 그 유명한 몰다우 강의 테마를 그려내기 시작한다.

아래의 음반은 스메타나 <나의 조국> 명연으로 유명한 라파엘 쿠벨릭 (Rafael Kubelik) 과 함께 같은 체코 출신인 바츨라브 노이만 (Vaclav Neumann) 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68년 녹음으로, <나의 조국> 최고의 명연으로 꼽히는 연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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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에 구분없이 어떤 곡이건 그 곡의 개성을 나타내는 특징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다면, 그 곡의 더 깊은 이해와 감상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이 곡의 경우는 교향시이기 때문에 그 곡이 어떤 텍스트에 기반하는 가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일단 이 곡에서 우리는 그 모든 요소를 다 빼고, 악보로 올린 16분음표 속도의 레가토로 상승하는 선율이 표현하는 작은 물줄기와 4+8분음표로 구성된 shuffle 느낌의 리듬으로 상승-하강하는 선율의 큰 강, 이 두가지 만을 생각해 보자.

내가 만약 이 두 선율의 특징을 잘 살려서 몰다우를 기타 연주곡 버전으로 편곡한다면 원곡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80년대 메탈 강국 독일의 Accept 의 기타리스트였던 Wolf Hoffman 의 솔로 음반 <Classical 2000> 에 수록된 Moldau 가 그렇다, 는 생각이다.



울프 호프만은 백킹 어쿠스틱과 나일론이 16분음표 레가토로 계속해서 물줄기를 뿜어내고, 강의 테마를 Hamer 기타의 솔로로 연주하고 있다. 언급한 딱 2가지 특징만 가지고 곡을 간략하게 대중적으로 만든 것... 나름 근사하다. 강물소리도 좀 깔아주고, 약간의 변주도 좀 넣고...

Accept 시절부터 울프 호프만은 고전음악의 선율들을 차용해서 많은 솔로 라인들을 만들었는데, 그래서인지 Accept 의 음악들 중에는 (개인적으로는 듣기 거북스럽게 샤우트하는) 그 보컬도 살짝 묻어 가면서 꽤 근사한게 많다. 스콜피온스나 곧 내한한다는 마이클 쉥커 그룹보다 즐겨 들은 메탈 밴드이기도 하다. (Rock Will Never Die 진짜 라이브로  한번 들어 봤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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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노이만의 몰다우를 듣건 호프만의 몰다우를 듣건, 스메타나가 생각한 몰다우를 떠올린다. 이 음악들을 들으면서 노이만이 위대한 지휘자다, 호프만이 위대한 기타리스트다, 라고 떠드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들은 지금 스메타나를 연주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그 위대한 음악을 거울삼아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것일 뿐. 그들의 연주에서 아름다운 몰다우가 떠올려지는 경우 그때에만 난 즐겁다.

난 우리나라가 우리나라 출신의 세계적인 클래식 연주자 몇명 있다고 그들을 영웅 대접하고, 귀빈으로 모시면서 아주 호들갑 떠는 거 아주 밥맛으로 생각한다. 고질병인 '스타에 집착' 하는 것일 뿐이며, 그 호들갑떠는 행위 자체가 위대한 음악을 깡무시하는 발상이다. 만약 그 연주자들이 그 대접을 당연시 여기기까지 한다면 아마도 그들은 적어도 나에게는 평생 재수탱이 양아치들로 대접받게 될 뿐이다. 아쉽게도 그런 인물들이 꽤 많다.

위대한 연주자란 간단하다. 위대한 음악을 이용하여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음악 속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 그래서 그 참모습의 흔적이 녹아 들어간, 위대한 음악과 자신의 교감을 들려주는 이가 위대한 연주자이며 위대한 명연이라는 생각이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니며, 대중들에게 그것을 이해시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연주자들은 사람들과 그 음악적 거리를 좁히는데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음악을 접하는, 즉 연주자건 감상자건, 모두에게 있어서 '엄숙함'보다는 '즐거움'이 더 중요한 가치여야 한다. '엄숙' 을 강요하는 이들의 연주는 듣지 마라, 라는 것이 내 음악관이다.

연주자가 즐겁지 않으면 감상자도 즐겁지 않고, 그 음악은 위대하기는 커녕 허공에 울리는 댕댕 교회 종소리만도 못한 사운드일 뿐이다. 고전음악 연주하면서 또는 들으면서 자꾸 '엄숙함' 강요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엄숙함' 아마 스타가 만들어 내는 '엄숙함' 일 가능성 매우 높다.

난 위대한 음악의 유산에 기생해서 자신의 명예와 부를 쌓는데만 몰두하는 사람들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는 '겸손' 이라는 것이 뮤지션에게 요구하는 최고의 덕목이다. 절대로 '권위'가 아니다. 위대한 음악의 그 위대함 앞에서 겸손하지 않는 연주자에게 사실 뭘 기대하겠는가? 겸손하지 않다면 아마도 위대함을 아직 깨닫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그래서 음악 신동의 연주에서는 '위대함'보다는 '가능성'이라는 것을 들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가능성'이 '위대함'으로 잘 연결되지 못한다.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말이야...

연주를 잘하고 못하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약 내가 베토벤을 연주한다면 나의 연주에서 그에 대한 존경과 헌정이 얼마나 드러나는가, 가 중요한 것이며, 그리고 거기서 훌륭한 연주의 필연적 당위성을 찾고 묵묵히 그렇지만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연습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내가 <노다메 칸타빌레> 라는 일본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본 이유이기도 하다.

난 뮤지션이 아닌 음악 자체에 모든 가치를 둔다. 아무리 위대한 마에스트로에 비르투오소이더라도, 그들은 결국 베토벤을 연주하고 바하를 연주할 뿐이며, 그 위대한 유산에 기생해서 먹고 사는 이들일 뿐인데 그 연주자들이 뭐가 위대하다는 것인지 난 잘 모르겠다. 위대한 것은 그들이 연주한 음악일 뿐이다. 만약 그 음악에 그 연주자의 영혼이 깃들인다면 아마 그 연주자는 누구건 간에 위대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연주자는 필히 겸손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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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뮤지션이냐 양아치냐 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남의 음악 앞에서 겸손한 사람이냐 아니냐, 를 보면 된다. 더더군다나 위대한 음악가들의 유산을 다루는 방식에서 특히 말이다.

그러니 어줍은 고전음악 선율이나 기존의 인기 팝송 선율 샘플링으로 때돈을 버는 대중음악 뮤지션이나 작곡가는 당연히 생양아치에 불과할 뿐인데, 오히려 "샘플링이 뭐 어때서..." 하며 우기는 놈들... Wall-E 의 뱃 속에 다 쳐넣고 꽈악 찌그려뜨려 배출한 다음, 다 어디 쓰레기통에 쳐 넣어야 한다. 게다가 밤무대나 행사 뛰면서 대부분의 수익을 챙긴다고 하던데, 과연 그 수익에서 그렇게 정당하다 우기는 샘플링의 저작권료는 얼마나 내는지, 한번 따지고 들고 싶다.

보면은 이수만, 박진영, 서태지같은 놈들이 스타의 경제적 가치 얼마를 역설하며, 어디 조잡한 사운드 잡동사니들을 음악이랍시고 만들어 한국의 음악판을 쓰레기통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정작 자신들의 스타 자체는 우아한 영웅 취급을 받고 우리는 맨날 그들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처럼 접하게 하는데, 정말 화가 난다.

이게 보면 정치판이나 스포츠판이나 똑같다. 지금 한창인 올림픽도 스포츠 스타의 경제적 가치 얼마, 이런 개소리하며, 업계가 그들의 CF 스타로서의 몸값을 뻥튀기하는 것을 보면 가당치도 않다. 스포츠의 순수성보다는 그것에 기생하는 스타들이 판치고, 그 스포츠 스타들도 그 기생 경제를 마다 않고 받아 들이는 것을 볼 때마다 난 그저 '재수없네 진짜, 웬 꼴값들..." 하게 될 수 밖에 없다.

하긴 뭐 80년대 민주화에 기생해서, 마치 그것이 지지리 궁상이던 시절 60~70년대 근대화와 경제화에 이은 쾌거인 마냥 떠들어대는 친일파의 직계후손 뉴라이트들이나 이명박과 그 일당 같은 놈들이나, 이수만과 박진영 패거리들이나, 각종 스포츠 스타들이나 다를 거 하나 없다. 어차피 그들이 돈 버는 방식이 다 똑같기 때문이다. 위대한 음악에 기생해서 본인은 스타가 되어 명예와 부를 취하는 방식, 그러나 정작 그 음악은 외면되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스템...

흡혈귀에 피는 다 뽑히면서도 달콤한 키스의 맛에 정신이 팔려 실제로 온 몸을 다 빼앗겨 버리는, 때로는 본인도 흡혈귀가 되는 방식이 '스타 마케팅' 이라는 것인데,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라는 흡혈귀에 피를 뽑히면서도, 연예 스타와 스포츠 스타들을 동원해 '애국심과 민족주의' 라는 달콤한 키스에 정신이 팔리게 하는 정부, 뭐가 다르냐 이거다. <다크 나이트> 의 하비 덴트 검사도, 조커에게 피를 빨리고 스스로 흡혈귀가 되어 버리는, 그 비슷한 맥락으로 난 읽었다.

<다이 하드 1988> 거의 마지막에 이르자 이런 장면 나온다. 존 맥클레인 형사는 한스 구르버에게 이렇게 말한다.

"So that's what this is all about?  A fucking robbery?
 Put down the gun. Why do you have to nuke the whole building, Hans?"
"기껏 600백만달러 도둑질하려고 테러집단인 체하며 빌딩까지 통채로 부순거야?"

온갖 각종 스타건 뉴라이트건 이명박이건 온갖 의미를 다 가져다 붙여도 기껏 '도둑질' 의 명분찾기 놀이일 뿐이다.

2008년 8월 17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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