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사스의 state song 이기도 한 Home on the Range (언덕 위의 집) 은 농부나 카우보이들이 즐겨 불렀던 미국의 대표적인 민요다. 미국 민요하면 LA 의 Roger Wagner 합창단이 떠오른다.


민요나 동요 같은 노래들은 그 선율을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몇 번 들으면 쉽게 기억되는 경향이 있다. 왜?


원하는 악보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직접 그렸다. 합창단이 이 노래를 F major key 로 부르고 있는 탓에... Sibelius 옛날 버전을 깔아서...

1. 적절한 도약의 사용과 전반적으로 물 흐르는 듯한 선율의 조합이 선율을 아름답게 만들고, 따라서 귀에 쉽게 들어 오게 한다. 동요나 민요의 선율적 특징이 대부분 이렇다.  못갖춘마디를 제외하고,  첫째와 둘째 마디는 물흐르는 듯한, 셋째, 다섯번째 마디에는 도약이 있다.

합창단의 노래에서는 도약의 처리가 감정을 누르듯 강약의 조절을 통해 절제 되어 있다. 리듬도 악보와는 다르다.

2. 반복과 대조의 조합이 균형의 조화를 이루어 낸다.  1~8 마디를 하나의 phrase, A 라고 하면, 9~16 마디는 거의 A 의 반복인, A' 이 된다. 17~24 마디는 새로운 phrase, B 이고,  25~32 마디는 다시 A' 와 동일하다. 소위 A - A' - B - A 형식이다. 사실, B 를 제외하면 거의 똑같은 선율의 반복이다.

A 가 반복되어 곡의 안정적인 뼈대, 즉 친숙함을 제공한다면, B 는 대조, 변화를 추구한다. 점4분음표 + 8분음표 + 4분음표의 리듬이 4분음표 + 점4분음표 + 8분음표로 바뀐다거나 17 째 마디에서 C 한음을 통해서 표현하는 감정 등...

실제로 대부분의 음악은 이러한 '반복과 대조' 의 연속으로 구성된다.

ooo

누구나의 삶 또한 하루하루가 반복의 연속이다. 중간중간 도약이 있기 하지만, 인접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어제의 삶, 오늘, 그리고 내일이 비슷하게 반복된다. 그러다 가끔씩 대조를 꿈꾸기도 하고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조' 가 자신의 진짜 인생임을 깨닫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난 주위에서 이런 사람 많이 보았다.

한 사람의 일생을 하나의 선율로 본다고 할 때,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선율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저 반복되는 구절에 대한 '대조', 즉, '변화'라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게 뭔지는 누구나 다 자신의 반복 패턴에서 찾을 수 있고 또 찾으면 된다.

난 특히 10 대나 20 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이성이 저 '반복' 의 가치라면, 감성은 '대조' 의 가치라고 말이다. 삶이 아름다운 선율이 되기 위해서는 너의 삶에 변화를 주라는 이야기다. 여기서 '변화' 라는 것은 기성 세대가 만들어 놓은 '반복' 적인 세계관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고, 거부일 수도 있고, 뒤틀기일 수도 있다.

10 대는 어른들이 '이런 거 공부해', 라고 할 때, 그것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이성이 아닌 감성적으로 한번 고민해보고, 그에 대한 '대조' 도 누구나 한번 고민할 필요가 있으며,

20 대는 사회가 '이런 거 시키는 대로 해' 라고 할 때,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 역시 감성적으로 따져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20 대에 이런 거 안하면 30 대에 반드시 후회한다. 이 시기가 자신의 삶의 반복에 대한 '대조' 를 수차례나 가장 활발하게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니까... 일단 30대가 넘어가면 단 한번의 변화에 대한 갈망조차도 큰 '용기'를 필요로 하게 된다.

어른들의 '세상이란 결국 다 그런 거지... 너도 똑같아...' 난 이런 말을 가장 싫어하는데, 이런 말에 절대 고개 끄덕이지 않는 삶, 그리고 '세상은 돌고 도는 거야' 라며 '반복'의 아름다움을 역설하는 사람들에게 침 한번 뱉고, '놀고 자빠졌네' 라고 하는 삶, 그것이 정말 아름다운 선율, 아름다운 삶이다.

2008년 8월 24일 작성


Posted by bopboy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