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25년은 살 수 있다. 25세가 되는 순간 카운터가 작동하고 1년을 세기 시작한다. 카운터가 0 이 된다는 것은 심장이 멈춤, 곧 죽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카운터의 시간이 0 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시간을 벌어서 채워 넣어야 한다.

유전자의 우수성에 따라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직업과 신분이 정해지는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려낸 영화 <Gattaca 가타카, 1997>의 감독인 앤드류 니콜의 근작 <In Time 인 타임, 2011>의 주요 모티브가 위에 언급한 이야기다. 참으로 암울하고 끔찍한 설정이다.

이 영화에는 두 종류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수백 수천년을 가지고 있는, 그래서 늙지도 않는 사람 그리고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목숨 연장을 분치기 초치기로 하며 매일을 죽음의 공포와 직면하며 사는 사람. 이 영화는 수천년을 살 수 있는 사람과 내일이면 죽을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스템이 돌아가는 작동 원리는 이렇다. 한 사람이 수천년을 살기 위해서는 수천 수만명의 시간을 뺏어와야 하는데 간단한 방법으로는 자본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필수품의 물가를 살인적으로 올리는 것이 있다. 버스 한번 타는데 1시간, 술 한잔 하는 데 1년, 커피 한잔에 10분... 등등 이렇게 벌어들인 시간을 차곡차곡 은행에 쌓아 놓는다.

그리고 부촌의 수천년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번 시간을 견고히 지키기 위해서 경비에만 엄청난 시간을 사용하며 늙지도 않고 호사스럽게 산다. 반면 게토의 사람들은 늘 뛰어다니고 폭력배에게 시간을 빼앗기고 엄청난 이자의 시간을 대출받아야 하고, 하루하루 매일을 죽음의 카운트다운과 직면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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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설정은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소수의 자본가가 시장을 장악하여 물가를 올리면 다수의 서민들은 빚을 지고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현실과 말이다. 자본가는 재산 보호와 축척을 위해 공권력을 동원하고 법 체계를 바꾸고 국가 경제를 팔아 넘기고 서민을 속이기 위해 언론을 장악한다. 물론 MB 정부가 지난 수년동안 아주 성실히 수행해 온 일들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참 무섭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영화가 무섭다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현실과 그를 위해 기꺼이 부역하는 사람들과 내가 하나의 시스템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현실과, 그를 위해 부역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내리는 명령을 수행하며 밥 벌어 먹어야 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현실이 무섭다.

열심히 산다는 것, 성실하게 산다는 것, 공정하게 산다는 것, 바르게 산다는 것... 등등의 가치는 현재와 같은 시스템에서는 참으로 허망하다. 손목에 기껏 하루가 찍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은 그들의 눈에는 생명이 아니라 그저 시간, 아니 하찮은 푼돈에 불과하다. 누구를 위해 성실하며 누구를 위해 공정하라는 것인가. 부역자들의 양심 또한 참으로 아찔하다.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그 사람의 인격이요 정치 성향이며 철학이다. 나에게 10억이 주어졌을 때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정치 성향과 인생관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직원들 한사람 한사람의 땀의 대가인 돈을 그토록 허망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를 도와주고 보호해주는 사람들이 조속한 시일내에 회사에서 사라지기를 바란다.


2012년 3월 10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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