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영화라면 질색하는 내가 좀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살다보니 좀비 영화들을 여럿 보는 것은 물론 좀비가 나오는 미드까지 보기 시작했다. 프랭크 다라본트가 연출했다고 해서 어느 정도 믿음을 가지고 보게 된 <The Walking Dead 워킹 데드> 말이다.

주인공 경찰관인 릭은 어디선가 낯이 익다 했는데 <러브 액추얼리>에서 키라 나이틀리에게 수줍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 남자의 새로운 연기 변신을 보여주며, Steven Yeun 이라는 귀여운 한국계 배우가 나오기도 한다. 잔인함의 강도가 꽤 세서 마음을 굳게 먹고 봐야하긴 하지만, 좀비라는 것이 사실 자꾸 보다보면 어느 정도 시각적 면역이 생기기 시작한다. 어찌하다보니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부터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대표 좀비 영화들을 줄줄이 보게 되었고, <Shaun of the Dead 새벽의 황당한 저주> 같은 작품은 아주 즐기면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세기말적 디스토피아 영화들은 좀비가 등장하든 대재앙이 닥치든 또는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등장하든 간에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설정과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되기 마련이고 (<더 로드>라든가 <눈먼 자들의 도시>라든가) 그래서 어디서 본 듯한 내용이나 식상한 분위기가 겹쳐지는 것도 조금씩은 있기 마련이지만, 현재 시즌 2의 중반까지 본 <워킹 데드>는 다행히 후반으로 갈수록 좀더 흥미로와지고 있다.

처음부터 가족과 떨어지게 된 주인공을 설정한 데다가 형제, 자매 등의 가족 관계를 큰 축으로 끌고가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워킹 데드>의 최근 에피소드에서는 "당신 가족이 좀비가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계속 반복된다. 가족이 당장 나를 잡아먹겠다고 덤벼드는 무시무시한 상황에서가 아니라, 도시에서 시골로 배경을 옮겨오면서 조금씩 덜 위협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때로는 심지어 온순해 보이기도 하는) 좀비들 속에서 (시골 좀비보다 도시 좀비가 더 흉악하다는 설정이 왠지 모르게 공감이 간다는...) "나의 가족이 좀비가 되었다..." 라는 설정은 개인에게도 그룹에게도 큰 갈등을 만들어 내고, 두 가지의 상반된 입장이 충돌하면서 시즌 2의 7편 <Pretty much dead already>가 끝났다. 이제 한 달 이상 기다려야 다음 편을 볼 수 있다는...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이 버리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듯한 이 드라마를 보면서 요즘처럼 각박하고 팍팍한 세상에, 게다가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소수의 인간들이 세상을 더욱 망쳐가고 있는 지금, 삶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되새기곤 한다. 살아남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소중한 것들을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삶을 잠시나마 생각해 보게 된다고나 할까...


2012년 1월 12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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