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는 포크와 펑크, 그리고 락 에너지의 대폭발 시대였다. 밥 딜런, 지미 헨드릭스, 비틀즈, 롤링 스톤즈, 레드 제플린, 딥 퍼플, 핑크 플로이드, 제프 벡, 조니 미첼, 사이먼&가펑클, 더 도어스, 더 밴드, 더 후, 제니스 조플린, 그레이트풀 데드, 마운틴, 산타나, 에릭 클랩튼, 슬라이&더 패밀리스톤, 제임스 브라운 등등등. (물론 이게 다가 아니다. 프로그레시브, 아트락은 포함시키지도 않았으니까.)

광포하게 쌓인 음악적 에너지는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폭발되기도 하는데, 이 락의 대폭발은 당시의 재즈 뮤지션들도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결국 재즈계가 이 엄청나게 축척된 펑크와 락의 에너지를 적극 수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1970년대에는 바야흐로 '재즈-락, 퓨전' 의 시대가 펼쳐지게 된다.

일렉트릭 피아노, 신서사이저, 일렉트릭 베이스가 피아노와 어쿠스틱 베이스의 차리를 차지하기 시작하고 피아니스트와 기타리스트들은 컴핑 대신 리프를 연주하고 베이스에는 싱코페이션이나 스타카토 연주가 많아지며 드럼도 R&B 스타일의 복잡한 반주 리듬과 고도화된 타임키핑 패턴이 엄격해진다.

락과 펑크가 재즈와 달랐던 점이라면 이런 거다. 짧은 프레이즈, 덜 빈번한 코드변화와 덜 복잡한 화성,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순한 선율, 계속 반복되는 간단한 코드진행, 반복되는 단순한 드럼패턴... 락의 리듬은 비트에 충실해서 강렬함과 안정성을 강조하는 반면, 재즈는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는 유연성과 바운스를 강조한다.

락의 특징은 한마디로 말하면 이런거다. 4개 코드, 12마디 블루스, 계속 반복되는 코드진행, 보컬의 강조, AABA 같은 작은 악곡 형식... 어떻게 보면 락이 지니는 이런 강렬함과 단순함이라는 대중친화적 요소를 재즈가 수용하면서 한단계 대중에 가까이 가면서도 재즈 뮤지션들로는 다양한 악기의 진보를 통해 엄청난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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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말 레리 코렐, 게리 버튼 등의 뮤지션들이 Jazz + Rock + Funk 의 스타일을 선보이기 시작하더니, 토니 윌리암스, 빌리 코브햄, 레니 화이트, 론 카터, 잭 드져닛, 허비 핸콕, 칙 코리아, 조 자비눌, 웨인 쇼터, 존 맥러플린 같은 당대 뮤지션들이 이 변화에 주목하고 있던 마일스 데이비스 주변에 모이면서 일련의 재즈-락, 퓨전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락 사운드의 반주 패턴들이 보이면서 점점 기존의 재즈와 멀어지게 되는 신호탄이기도 한 마일스 데이비스의 1968년작 <Filles de Kilimanjaro> 가 나오더니 이어서 1969년에는 <In a Silent Way> 와 <Bitches Brew> 가 세상에 나온다. 마일스와 조 자비눌의 합동작품이기도 한 <In a Silent Way> 가 워밍업이었다면 <Bitches Brew> 는 이 재즈-락 퓨전의 정점을 찍는 진정한 걸작이다. 지금 이런 거 만들라고 하면 아마 어려울 거다.



마일스는 심지어 자신의 트럼펫에도 앰프와 에코 플렉스 같은 이펙트와 와와 페달을 사용하기까지 하면서 고음역대를 격렬하게 몰아치듯 락의 열정으로 연주한다.

이 프로젝트 밴드 이후 조 자비눌과 웨인 쇼터는 미로슬라브 비투스 (이후 자코 파스토리우스) 와 함께 웨더 리포트를 결성하고, 존 맥러플린은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를, 칙 코리아는 스탠리 클락 등과 함께 리턴 투 포에버를 결성하게 된다. 허비 행콕은 펑크를 본격적으로 수용한 <Head Hunters> 를 발표하여 대박을 내기도 하고. 자코 파스토리우스와 팻 메스니가 부상하고, 키스 자렛과 팻 메스니의 명작을 쏟아낸 ECM 레이블이 탄생하기도 한다.

이후 이러한 경향은 좀더 대중친화적이 되더니 재즈의 즉흥연주가 빠지고 좀더 모던해진 뉴에이지가 나오고, 펑크의 경향이 좀더 세련되어진 GRP 계열 음악들이 나오고, 댄스가 가미되면서 애시드 재즈가 나오고 다양한 크로스오버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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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tches Brew> 이후 40년 만에 만난 일흔을 코 앞에 둔 두 명의 거장, 칙 코리아와 존 맥러플린은 20~30년 후배들을 새로운 멤버들로 영입하여 일종의 프로젝트 밴드를 만들어 Five Peace Band 라고 명명하고 투어를 시작하고 어제 한국을 방문했다. 베이스에 크리스찬 맥브라이드, 알토 색스폰에 케니 가렛, 드럼에 브라이언 블레이드... 존의 <Floating Point> 라는 음반의 마지막 트랙 타이틀이 Five Peace Band 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1994년 존 패티투치, 밥 버그, 게리 노박과 함께 어쿠스틱 퀄텟으로 내한했던 칙 코리아와 1997년 알 디 메올라, 파코 데 루치아와 함께 기타트리오로 내한했던 존 맥러플린을 10 여년이 지난 어제 오랜만에 이화여대 대강망 무대에서 한꺼번에 다시 보게 된 것이기도 하다.

그랜드 피아노와 야마하 모티프 신서사이저를 번갈아 연주하던 칙 코리아는 우리 나이로 69세였는데 꽤 날렵해 보였던 10년 전보다는 확실히 몸도 많이 불었고 건강도 꽤 안좋아 보이는 편이었는데 사인회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는 존과 후배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본인은 백업을 하는 수준이었지만, 그의 코드 보이싱 스타일은 여전히 잘 들렸고, 오버톤들도 살아 있는 듯 들렸다.

칙 코리아보다 한살 어린 68세의 존 맥러플린은 여전히 건재해서 번쩍거리는 고딘 기타로 그의 특징이기도 한 고급스런 드라이브 톤에 인도스러운 모드에 기초한 솔로 연주를 시종일관 보여 주었는데, 존 맥러플린을 나만의 멘토로 여기는 나로서는 실은 그의 연주를 처음 보는 셈이라 꽤 재미있었다. (97년 기타 트리오 공연은 그만의 개성이 표출되는 공연은 아니었음.)

그래서 이 재즈-락 퓨전 때문에 '음악'이라는 것에 빠지게 된 나로서는 "너는 어떤 스타일을 지향하냐?" 라는 질문을 받으면 난 딱 한마디로 답한다. "당연히 존 맥러플린이지" 난 그의 모드에 기초한 솔로를 대단히 좋아하고 어줍긴 하지만 실제로도 방구석에 쳐박혀서는 그런 식의 연주를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이 공연을 정말로 빛낸 뮤지션은 드러머 브라이언 블레이드다. 소개 자료에 보니까 재즈 뮤지션들이 가장 총애한다고 나오는데 난 이 구절에 백번 동의한다. 무대에 가방을 들고 와서는 드럼의자에 앉아서 계속해서 뭔가 공부하는 자세로 자신이 두들기는 드럼 사운드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며 드럼스틱을 날리던 그 모습이 정말 인상적인 플레이다. 와, 드럼이 이렇게 멋있는 악기였나, 아 새삼 깨닫는다.

지금은 웨인 쇼터와 함께 활동한다고 하는데 이 뮤지션의 솔로 음반을 몇 개 구입해야 한다, 라는 생각이 지금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고민하면서 그 고도의 플레이를 하던 사람이 사인해줄 때는 굉장히 소박하고 환하게 웃는 모습하며 뭐랄까 참 정감이 간다. 사인회를 하는 줄 모르고 현장에서 돈 꿔서 급하게 구한 존 맥러플린의 음반을 들이대니까 "이건 누구의 음반인고...." 라는 듯 이리저리 뒤적이고는 씨익 한번 웃어준다. 나도 한번 웃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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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에게 받은 사인CD 는 이제 가보다.

공연은 7시 10분에 시작해서 1시간동안 연주를 하고 20분동안 잠깐 쉬고 2부가 시작해서 거의 10시에 끝났는데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존 맥러플린의 솔로 플레이와 브라이언 블레이드의 드럼과, 2부 중간 약 20분 정도 히터를 틀었는지 갑자기 공연장을 웅하고 울리던 소리다. 그나마 잠깐이던 칙 코리아의 그랜드 피아노 솔로가 거의 묻힐 정도의 거대한 노.이.즈...

어처구니가 없었다. 분노가 치밀었다. 이 정도면 환불감이라고 중얼거렸다. 통풍구 팬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 어떻게 공연장 전체를 그렇게 관통하도록 큰 소리가 나는지도 의문이고 그런 소리가 나면 바로 통제가 되어야지 어떻게 그렇게 오랜동안... 전반적으로 연주되는 사운드가 강렬하였기 때문에 견딜만한 것이었지, 이 정도면 대형 음향사고다. 제발 이런 일 없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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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락 퓨전은 전통적인 Bop 을 듣듯이 듣기보다는 락의 감성을 가지고 듣는 음악이기 때문에 이런 뮤지션들의 음악을 지나치게 재즈, 재즈해서 스스로 거리감을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냥 락인데 조금 더 고난도의 플레이를 하는 음악이라고 보면 오히려 더 친근할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관심있는 분들은 언제 한번 1960년대와 70년대를 풍미한 유럽의 프로그레시브락과 아트락을 잘 들어보기를 바란다. 전체적으로는 보통의 락 음악같아 히트를 친 음악 중에서도 잘 들어보면 그 연주가 상당히 고도화되어 있고 그 곡의 진행에서 변화가 다양무쌍한 것이 꽤 있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 아닌. 포장은 간단한데 내용물이 꽤 복잡하다는 거다.

보컬이 부르는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에 그저 좋다고 마냥 들었는데, 악기들은 정말 분주히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반복 패턴이 들리지 않고 계속 변화하고 그런다. 겉으로도 이러한 변화무쌍이 표출되면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나는 프로그레시브락의 특징을 한마디로 '외유내강'이라고 표현하는데, Bop 이나 Hard Bop 등이 굳이 표현하자면 '외경내강' 정도라면 어제 공연에서 들은 이런 재즈-락 퓨전은 '외유내강' 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2009년 2월 1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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