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계량화

OLD POSTS/그외 2014. 1. 28. 17:43


"모든 것은 수치화할 수 있다,라고 했던 케네디 정부 국방부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의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패배하고 말죠. 그 자신의 말대로 합리성이 그들을 구원하지 않은 것입니다. 맥나마라는 프레데릭 테일러의 후예이기도 했는데 테일러는 관리 시스템에 과학적인 방법을 도입하여 노동의 생산성을 극대화시켜 경영 이론의 기초를 세운 인물이죠.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그 방식도 테일러 시스템...

테 일러는 인간 노동을 계량화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인간 노동 뿐 아니라 거의 전 분야에서 수치화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죠. 수치화가 매우 어려운 예술계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수치화, 계량화하여 분석하고 기획하고 전략을 만듭니다. 그래야만 규격화가 가능하고 표준이라는 것도 가능하고 예측이 가능하고 사업이 가능하죠. 계량화라는 작업은 대단히 유용합니다. 만병통치약 같죠. 모든 사업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야만 하며 원인과 결과는 수치화되어야만 하니까요.

그러나 모든 것을 수치화하는 것에 따르는 그 부작용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구요? 간단하죠. 인간은 입력한 규칙대로만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성이라는 것이 있고 본능이라는 것이 있고 가치 판단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애플이 만들어내는 제품에 환호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죠. 디자인과 감성에 최대한 어필하면서도 편의성을 극대화시키려는 노력에 때로는 감탄을 하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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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는 우리나라에서 수치화의 가장 큰 폐해로 꼽을 만한 것을 교육 시스템으로 봅니다. 평가를 하고 점수대로 등수를 매기는 것 말이죠. 사실 수치화는 가정을 어떻게 하며 무엇을 전제로 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인간의 가치 판단에 따라 수치는 180도 뒤집어질수도 있는 것이죠. 그리고 실은 어떤 현상을 수학적, 통계적인 모형으로 세우는데 이미 인간의 가치 판단이 작용합니다. 따라서 자본가가 세우는 모형과 노동자가 세우는 모형은 처음부터 다르죠. 부모와 자식간의 모형도 다릅니다. 서로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정이 다르고 전제가 다르니까.

아주 공정한 등수를 매기기 위해서는 모두가 동의하는 어떤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따르는 평가가 있어야 합니다. 가령 아이들의 다양한 능력을 평가하고 능력순으로 등수를 매기려고 한다면 어떤 기준을 들이대야 할까요. 생각해보면 참으로 막연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평가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감성, 다른 재능, 그리고 다른 개성과 다른 환경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죠. 그 수십만의 아이들에게 동일한 기준을 들이대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물론 동의하기가 어렵죠. 등수를 매길 수 있는 평가가 가능한 시스템 중 하나를 도입한 것일 뿐입니다. 물론 그것이 아이들 한명 한명의 재능이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일 가능성은 대단히 낮겠죠. 모든 아이들의 가치와 개성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평가하여 등수를 매기는 그런 것이 존재할까요. 그러나 불행히도 이 시대를 사는 아이들과 어른들은 그런 것이 있는 것으로 철썩같이 믿는 것 같아 보입니다. 아니면 어쩔수 없이 수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사람들은 등수를 매긴 다음 "너는 얼마짜리"로 인간의 다양한 가치를 수치화하는 것에 매우 익숙하고 거부감이 없는 정도를 넘어서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종종 해봅니다.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시스템을 욕하면서도 실은 내가 몇 등인지를 확인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게 되면 몹시 불안해 하는 거죠. 슬픕니다. 이런 현실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러나 사회에 진출했을 때 등수와 능력이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도 우리는 곧 알게 되며, 그때 등수의 허구성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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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첫회를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죠. "이제 감성과 열정의 세계까지 계량화가 시작되는구나" 감성과 열정에 수치가 매겨집니다. 가수들은 무대에서 한 곡을 부르기 위해 열심히 연습을 하고 무대에서 열창을 한 다음 자신의 열정과 감성에 점수가 매겨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뮤지션들은 감성 계량화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대중들은 환호하고 있습니다. 제작진이 계량화 시스템을 교란시키려고 했을 때 분노했고 정상화하자 다시 안도하죠.

실은 대중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철저하게 감성 계량화를 주장하고 있죠. 저는 참 놀라운 것이 신자유주의라는 정글에 던져지고 거의 희망없는 경쟁을 통해 생존 방법을 처절하게 익혀야 하는 피곤한 인생을 살면서 그 폐해에 대해 한탄하는 대중들이 뮤지션들의 감성을 계량화하고 평가하고 등수를 매겨 뮤지션들의 정글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는 주저함이 없어 보이니 말이죠. 일종의 분풀이인가요. 당한만큼 갚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대중은 함정에 빠진 것 같아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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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는 지금 이 시대 뮤지션은 이제 진정한 멸종 위기를 겪는 것 같습니다. 컴퓨터와 샘플링으로 제작된 음악과 화려한 비쥬얼을 결합한 수많은 음악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자신의 몸으로 연주하는 뮤지션이 설 땅은 점점 좁아 드는 상황에서 계량화 시스템에 매몰된 대중들은 그들의 남아 있는 열정마저 계량화하고 등수를 매기자고 하니 말이죠. 그리고 즐거워합니다.

<나는 가수다>가 만드는 평가 시스템이 테일러 시스템과 다른 것일까요. 테일러 시스템은 수많은 합리화를 동원하게 되죠. 합리화의 합리화... 그러면서 점점 확산되었죠. 음악이라고 예외일까요. 그렇게 계량화하는 것에 대한 수많은 합리화들이 난무하죠. 대중들은 감동을 이야기하더군요. 지독한 사교육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한 학생들의 몸부림도 감동이라면 감동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맥 나마라의 말처럼 <나는가수다>의 합리성은 가수들, 아니 뮤지션들을 구원할까요. 그래서 우리나라 음악산업을 구원할까요. 수많은 기타리스트와 드러머들을 구원하고 작곡가들을 구원하며 음반 사업자들을 구원할까요. 등수라는 합리성이 과연 그들 모두를 구원할까요. 우리는 이미 계량화의 폐해에 대해 충분히 경험해왔고 지금 그 정점을 관통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첫회 를 보면 이 문제의 정답이 있죠. 첫회에서 제작진은 계량화 시스템 자체에 모든 포커스를 맞추고 역량을 쏟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음악에 대한 배려는 없었죠. 미처 생각을 못해서 그랬던 것일까요. 제작진은 처음부터 하나의 완성된 음악이 지니는 가치의 전달보다는 계량화 시스템이 원활히 돌아가는 데에 더 관심을 두었습니다.

대중은 그것을 망각하면 안되죠. 아이돌 위주의 뮤직쇼에서도 볼 수 없는 난도질에 가까울 정도로 거친 편집으로 희생되는 가수들의 노래 및 뮤지션들의 대한 열정을 보면서 대중들은 그들에게 왜 여전히 희망을 볼까요. 수많은 오류를 감추려는 합리화의 합리화에 아주 진절머리가 나네요. 중요한 것은 시스템에 대한 가정과 전제를 누가 어떻게 세우느냐죠. 감성은 계량화될 수 있다 아니면 없다,라는 출발선상에서 말입니다. 막상 쇼가 끝나면 그 계량화의 허구성을 깨닫게 될까요.


2011년 4월 6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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