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래를 못한다. 그렇다고 음치이거나 박치라는 것은 아니고 아마도 발성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노래를 위한 발성이 나에게는 대단히 어렵다. 성대 구조 생겨 먹은 것이 원래 그 모양이기도 하거니와 머리 속에 그려지는 이상적인 음높이 및 톤과 나의 호흡으로 실현되는 사운드의 괴리를 참기도 어렵다. 노래방 당연히 안간다. 어쩔 수 없이 가야 할 때면 아주 괴롭다.

초중고딩 시절 음악 시간, 노래 부르기 실기 평가를 한다고 할 때는 난 어김없이 입이 튀어나왔다. 아니 왜 노래를 부르라고 시키는 걸까. 너무 불공평해. 난 선천적으로 잘 못하는데 잘 하는 애들은 뭐야. 나더러 뭘 어쩌라구. 피아노 연주로 하는 것이 더 공평하잖아...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옳지 않은 생각이다. 공부하기도 따지고 보면 결국 노래 부르기와 다를 바가 없으니까. 둘다 아이들의 수많은 재능 중 극히 일부의 재능만을 따지는 편협한 평가 방법이기 때문이다.

요즘도 학교에서 이렇게 노래 부르기 실기 평가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음악 시간은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노래 연습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노래건 피아노건 아이들이 잘할 수 있는 악기를 찾도록 도와주고 서로 즐겁게 연주를 하면서 예술이 인간에게 주는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간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요즘 아이들은 너무 불쌍하다.

하여간, 난 노래를 못한다. 그런데 이 말의 의미를 돌려보면 나에게는 기타라는 악기가 내가 노래를 부르기 위한 반주 악기였던 적이 없다, 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나에게 기타는 나를 대신하여 나의 목소리가 되어 노래하는 악기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기타로 노래하기'. 그렇다고 잘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기타를 처음 배운 것은 음악 학원이었는데 수업 끝나면 매일같이 종로에 와서 가요나 팝송의 반주를 배웠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노래를 못하는데 또 노래를 가르친 셈이니까.

그 어떤 곡이건 가수들의 노래를 듣기보다는 늘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듣는다. 아주 짤막한 솔로 아니, 어떤 곡은 노래 끝에 고작 3초 정도 나오는 예쁜 기타 코드 톤을 듣고 싶어 일부러 노래 전곡을 듣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곡들이 또 의외로 많다. 후주 부분에 잠깐의 솔로가 들어가면 나에게는 이 후주가 클라이막스다. 어떤 곡이건 노래가 메인이었던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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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들으면 무아지경에 빠지는 <Speed Metal Symphony>의 전설, 제이슨 베커의 연주를 들으면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약 10개월 전 쯤 나온 그의 첫 베스트 음반 <Collection>에는 이전에 발표되지 않았던 새로운 곡들이 수록되어 있었고 그 중 <River of Longing> 이라는 곡이 수록되어 있다.

이 곡은 20년 전 제이슨 베커가 루게릭병으로 기타 연주 능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손이 떨려 제대로 연주할 수 없게 되어 힘들게 녹음해 둔 리듬 파트에 20년이 지나서 주요 솔로 부분을 Steve Hunter 와 Greg Howe 등에게 의지하여 완성한 곡이다.




이 곡의 구성을 잘 들어보면 흥미롭다. 크게 4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총 약 100 마디 좀 넘는 길이다. 곡이 시작하면 먼저 제이슨 베커가 녹음한 그 코드 진행 위주의 리듬 파트를 듣게 된다. 주로 E major scale 의 diatonic chords 들이 그 주재료이다. 이 다이어토닉 코드들만을 사용하여 그 코드 진행을 따라가 보면 대충 다음과 같은 진행이 만들어진다.


두번째 파트는 제이슨 베커가 녹음한 리듬 파트가 다시 반복되고 그 위로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연주하는 클린 톤의 기타와 베이스, 키보드 등이 더해진다. 세번째 파트는 제이슨 베커의 리듬 파트가 다시 한번 더 반복되고, 드럼이 가세하며 키보드가 코드 진행에 힘을 더하고, 서정적이던 사운드에 강한 박동이 뛰기 시작하고 날렵한 드라이브와 바이브레이션이 인상적인 기타의 격한 솔로가 연주된다.

그리고 네번째 파트. 모든 악기들은 연주를 일제히 멈추고 제이슨 베커의 리듬 파트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반복되면서 그의 1995년 앨범인 <Perspective>의 <Higher>가 연상되기도 하는 혼성 코러스 앙상블의 허밍이 연주된다. <Higher>도 그랬지만 나는 이 코러스를 들으면서 가끔씩 너무 격해짐을 참기가 어렵다.

나는 노래를 못해서 나의 목소리를 대신하라고 기타를 연주한 것이라면 이 마지막 코러스 부분은 연주를 할 수 없어서 그 연주를 대신하라고 사람이 노래한 것 같기 때문이다. 20년 전 손을 쓸 수 있던 시기에 녹음했던 코드 진행 리듬 파트와 이제는 굳어 버린 손을 대신하여 정적인 기타 솔로를 노래하는 허밍 앙상블이 함께 연주된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이 음악이 나오고 이 코러스를 듣고 있으면 눈에 이슬이 맺히기도 한다.

나의 기타 연주를 대신하여, 기타를 꿈꾸는 노래... 이 노래에 굳이 가사라는 것이 필요할까. 기타 연주에는 가사가 없으니 당연히 가사 없는 노래가 기타를 대신하겠지만, 이 허밍에는 실은 이미 이룰 수 없는 간절한 소망과 꿈을 향한 열정이 이미 담겨져 있고 그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 너와 나 사이에 굳이 가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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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래를 못한다. 하여간, 다시 말하지만 이 말의 의미는 나에게는 기타라는 악기는 내가 노래를 부르기 위한 반주 악기였던 적이 없다는 것이며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물론 기타는 기타대로 노래는 노래대로 잘하는 사람에게 기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가지지 못한 것을 대신해줄 수 있는 간절한 존재다. 그는 노래로 기타를 꿈꾸듯, 나는 기타로 노래를 꿈꾼다. 그리고 그것을 못하게 되는 날 정말 눈물 날 것 같다.


2010년 9월 3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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