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Fur> 라는 영화를 봤다. 감독은 한 실존했던 사진작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진작가의 실제 삶을 재현한 방식은 아니다. 그러니까, 다이앤 아버스라는 사진작가 이야기이긴 하지만, 영화 자체는 감독이 만들어 낸 상상의 스토리라는 거다. 그 속에서 다이앤 아버스의 삶을 마치 한편의 동화처럼 그려내지만, 다이앤 아버스의 사진작가로써의 자기 발견 및 인간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는 그 중요한 순간들은 여전히 담고 있다.

존 버거의 <제7의 인간> 이라는 책도 보면 유럽 이민 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나 내용은 단순히 노동자들의 현실 전달은 아니다. 거시적인 인류 문화 비평가로써 그리고 한 인간으로써 이민 노동자의 서글픈 삶, 지구촌 사회학과 경제학, 그리고 노동자들의 사진을 엮어 하나의 문학적 감성을 지닌 책을 완성한 것이지, 단순히 유럽 이민 노동자들의 현실을 글로써 재현하여 엮은 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노동자들의 현실만을 담고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보고서가 된다. 작가는 보고서를 쓰는 사람은 아니다. 보고서는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만든다. 그래서 느낌을 주고 받기에는 적합치 않다.

평론이라는 것도 비슷해서, 목적은 완성된 글 자체이지, 단지 영화를 평가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거다. 평론가는 자신의 취향, 경험, 미학, 철학의 관점에서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글로 남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남겨진 글 자체가 중요하다. 간단히 말해, 글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글은 책으로 보는 것이 깔끔하다. 영화 평론가는 보고서를 남기면 안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글이 아니라 이미지로 표현하고 싶으면, 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찍으면 된다. 간단히 말해, 이때는 영화감독이라는 말이다. 영화감독이 만든 영화와 그 세계관을 평론가는 글로써 사고한다. 또 그 반대로 작가가 남긴 책의 문장을 해독해서 그 세계관을 영화감독은 이미지로 표출해 낸다.

반면, 기자들은 글쟁이가 아니다. 그들은 현실 속의 진실을 전달해야 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은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보고서가 자신의 철학과 미학과 취향에 현실을 버무린 결과물이라면 그것은 미디어에 소식이라는 타이틀로 내보내면 안된다는 말이다. 기자라는 타이틀은 위에서 언급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평가할 만한 자격요건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완성된 글로써 가치가 있는 평론이라는 것은 각종 매체의 각종 영화 소식과 기자들의 평가와 블로거들의 감상후기와 함께 뒤섞여, 마치 잘난 체 하는 글, 일부러 어렵게 쓰는 글, 권위적인 글, 없애버려야 할 문화 따위 식으로 낙인찍혀가고 있다. 그리고 그 첨병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가 십자평 또는 열자평이라는 거다.

그런데 이 십자평 또는 이십자평이라는 거... 참 못할 짓이다. <Thumb Up/Down> 보다도 못한 정보다. 영화잡지들이 이런거 안하면 좋겠다. 십자평으로 할 만한 이야기는 <재미있다 or 재미없다> 또는 소위 말하는 초간단 <하이 컨셉트> 정도이지, <좋은 영화 or 나쁜 영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이 컨셉트>는 초간단 영화 묘사니까 비교적 객관적인 정보이고 평가의 범주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리고 <재미있다 or 재미없다>도 취향의 문제이므로 객관적일 필요까지는 없어 그 한마디로 족하다. 문제 삼을 일도 없다. 문제는 <좋은 영화 or 나쁜 영화>라고 말하는 십자평들이다.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 비교대상이 있어야 한다. 평가란 비교다. 비교 대상이 없는 평가? 그건 몽땅 개소리다. 이 짧은 평이 악평과 호평의 극단을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으며, 영화에 대한 온갖 왜곡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그리고 평론가도 기자도 블로거도 일반관객들도... 너도 나도 따라하고 있다.

정말 글재주를 타고 나서 십자 비교 분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해도 좋다. 그러나 그 정도까지의 글재주 없으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위 악평 또는 호평이라는 것을 하고 싶다면 그 비교 평가에 관한 사연을 구구절절 달아 주는 것이 평가의 기본 예의일 것 같다. 좋고 나쁨이라는 판단이 아니라, 그렇게 이야기한 이유 그 자체가 평론이고, 영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나의 이야기가 또한 평론이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보는 그 이유가 적합한지 아닌지를 공격하고 방어하면 되는 일이다.

<재미있다 or 재미없다>가 관객에게 할 소리라면, <좋은 영화 or 나쁜 영화>는 기자가 관객에게 할 소리는 아니다. 나는 관객에게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는 것은 기자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가 나에게 <이 영화 아주 나빠요!> 라고 하면, <그래서 뭐 어쩌라고?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라고 아리송해 할거다. 관객 또는 독자에게 영화가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는 것이 영화 저널리즘의 역할인가? 기자들은 언제부터 영화의 가치를 판단하기 시작했지? 조폭영화나 디워 따위조차도 기자들은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평론과 보도는 분리되는 것이 맞겠다라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평론은 글 자체가 목적이지만, 기사는 뉴스 전달이 목적이기 때문에 기사 자체는 하나의 도구다. 평론은 지난 것을 평가하지만, 보도는 새로운 것을 알려준다. 따라서 새로운 것을 평가한다는 것은 만든 사람과 한번 싸워 보자는 거다. 그러니까 기자와 평론가는 한사람이 겸할 수는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작년 여름 쯤의 필름2,0 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읽었는데, 미국의 버라이어티 지에서는 영화저널리즘의 독립성을 위해 평론가와 리포터를 분리하는 정책을 편다고 했다. 즉, 버라이어티의 평론가들은 그냥 영화가 좋으면 좋다고 나쁘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고, 영화 관련 보도는 또 별개의 문제이므로 그건 뉴스 저널리스트들이 한다는 거다.

<이 영화 너무 좋아요>, <이 영화 아주 나빠요> 이것은 영화를 좋게 또는 나쁘게 만든 당사자만이 들어야 할 소리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그 비교 대상을  알려 주는 것이 평론가의 일이기도 하다. 가령, 한 평론가가 어떤 영화를 보고 장면 장면들이 어디서 많이 본 거 같다라는 인상을 받았다면, 평론에 이렇게 쓰면 된다. "이 영화, 저 영화 명장면들을 너무 많이 베낀 거 같다. 그 영화들은 뭐뭐냐 하면...어쩌구 저쩌구... ", 그리고 평론 마지막 줄에서 감독에게 물으면 된다. "왜 그러셨어요? 베낀거 같은데... 아니면 몰랐나?"...

사실, 우리들은 나쁜 영화도 많이 봐야 하는데, 그 이유는 나쁜 영화가 나쁜 이유를 알기 위해서이고, 이것은 또한 좋은 영화가 좋은 이유를 알기 위한 것도 된다. 나쁜 것을 모르는데 좋은 것을 알 턱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그렇게 돈과 시간을 들여 나쁜 영화를 볼 만큼 그렇게 한가한 이들도 아니고, 또 그렇게 해야 할 아무 이유도 없다는 데에 있다. 나는 돈들이는 홍보를 많이 하는 영화일수록 나쁜 영화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미디어를 꿰차고 앉아 다른 영화의 접근을 막고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즉, 나름의 잠재관객을 가진 좋은 영화가 결국 관객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된다. 돈없는 마이너는 제 밥도 못찾아 먹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이러한 경향은 블로그까지에서도 심하게 보여진다.

그래서 영화 저널리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평론가들이 영화잡지나 각종 매체에 글을 쓰는 일이 나쁜 영화를 관객들로 하여금 못보게 하려는 것인가? 이건 황당한 소리다. 그것이 평론가들 또는 기자들의 일은 아니라고 본다. 난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난 기회가 된다면 명작이 아니라 나쁜 영화만 골라서 하는 영화제도 한번 했으면 한다. 제대로 된 평론가의 악평은 그것을 들어야 할 당사자가 따로 있기 마련이다. 감독, 작가, 제작자, 조명, 촬영, 미술, 의상, CG 등등등...

가령, 씨네21 같은 대중잡지에 어떤 영화가 미술이 후지다는 십자평이 실렸을 때, 그 평론가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영화를 봐야 하는데, 문제는 그냥 봐선 모른다는 거다. 그냥 막연히 후진가?  평론가는 관객에게 막연함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평론가의 할 일이란 무엇에 비해 후진지 그 비교 대상을 먼저 보라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다. 아니면 그건 그냥 미술 담당에게 하는 소리니까 영화관련 미술 잡지에나 실릴 평이다. 그런데 그 평을 우리는 그냥 읽는다. 평이 돌고 돌아 각종 억측과 비난을 몰고 다니면서 왜곡되고, 아무 관계도 없고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까지 욕을 먹어야 한다. 읽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러니까 타겟 설정 체계가 온라인의 마구잡이식 유통체계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는 거다. 어떤 평론이건 간에 그걸 읽는 사람들이 모두 공감하는 글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평론가가 영화가 나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그 자리에 있으면 안되는 사람이다. 최근 영화잡지들에게서 볼 수 있는 안타까운 부분은 평론과 보도의 교집합 쯤에 해당하는 어떻게 보면 애매모호한 영역에 서서 두마리 다 잡으려고 하는데, 보면 두마리 다 놓치고 있는 거 같다. 평론도 욕먹고 보도도 욕먹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블로그나 포털도 그걸 정말 똑같이 닮았다는 것도 현실이다.

영화 악평을 쓰려거든, 무조건 길게 쓰시기를... 적어도 이것이 최소한의 예의니까...


2008년 2월 2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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