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난 일단 '삶의 질(質)' 이라는 개념이 먼저 떠오른다. 뭐가 되었든 간에 '질 (Quality)' 에 신경쓰는 나라. 그런데, 이 '질' 이라는 것은 없던 것을 인위적으로 만들기 보다는 Natural, 그러니까 타고 난 성질과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삶의 질' 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는 상당히 이율배반적이다. 그리고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는 선진국 또한 이율배반이다. 그러니까, 자연을 원형 그대로 살리느냐 아니면 갈아 엎느냐, 만으로도 선진국, 선진정부냐 아니냐 따져 볼 수 있다.

'질' 의 반대 개념은 '양(量)'. '질' 의 개념이 가치판단의 문제일 수도 있고, 주관적인 부분이 강하다면, '양 (Quantity)' 의 개념은 분석적이고, 가능한 눈으로 보이는 보편성이라 할 만한 성질을 끄집어 내어 객관성을 확보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그래서 대다수의 학문은 '질' 이라는 추상화보다는 '양' 이라는 구상화를 선호한다. 물론, 구상화보다는 추상화가 어렵다.

대학을 보자. '양' 의 관점에서 대학을 본다면, 새로운 생각과 창의적인 분석이 담긴 논문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반면, '질' 의 관점에서 본다면, 실적으로서의 논문 편수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결국, 대학은 '양 과 '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질' 좋은 논문을 많이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질' 이란 시간을 많이 들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 대학 자체가 '질' 의 관점을 강조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학들이 실적 평가의 방법으로, 논문 편수를 세고 있는지, 아니면 논문에 어떤 내용이 담겼나를 들여다 보고 있는지를 가지고 우리는 그 대학이 선진 대학이냐, 후진 대학이냐를 가늠할 수도 있다. 대학의 선진성, 결국 '양'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질'에 대한 지원, 추상화를 볼 줄 아느냐 모르느냐, 의 문제다. 선진국 안에의 후진 대학?  이것 또한 굉장히 이율배반적이다. 어쨌건, 선진국은 선진 대학의 충분조건은 되지만, 필요조건은 아닌 거 같다.

'질' 과 '양' 의 이분법적 사고를, 내용이냐 쪽수냐를 넘어, 합리성과 창의성이라는 부분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도 가능할 거 같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 개념, 그래서 그것의 맞고 그름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것의 합리성을 고민할 때, '질' 이라고 한다면, 기존의 것, 개념과 비교 평가를 할 수 있는 합리성이 확보되어 있는 상태에서, 추가로 새로운 부분의 발견을 고민할 때, 굳이 따지자면 '양' 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다리 건너, 선진과 후진을 창의성과 합리성의 맥락에서 본다면 굳이 그렇게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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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량 생산된 유기농 채소를 먹느냐 농약을 사용해 대량 생산된 채소를 먹느냐를 '질' 과 '양' 의 관점에서 각각 보자. '양' 의 관점에서 보면 '소량' vs '대량' 이고, '질' 의 관점에서 보면 '유기농' vs '농약' 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유해한 물질을 사용 안하느냐 vs 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양' 에 함축된 의미 중에는, 유해한 물질을 사용해도 좋다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유기농' 과 '농약' 은 지역화 (Localization) 과 세계화 (Globalization) 의 개념으로도 연결이 가능한데, 금방 생산한 유기농 채소를 그 지역에서 바로 소비하지 않고 다른 먼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상태 보존을 위해 방부제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양' 의 관점에서 보건, '질' 의 관점에서 보건, 이건 멍청한 짓이다. 따라서 농약으로 대량 생산된 채소에 방부제를 사용하게 되고, 결국, 세계화란 '이중의 저질화'를 의미할 수도 있다. 아니면 현지화라는 이름의 방식도 있는데, 이때에도 '유기농' 은 생각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것은 다른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어쨌건, 초반부에 언급한 '질' 의 의미에서 볼 때, 선진국과 세계화는 결국 또한 이율배반이 된다.

성장과 분배도 비슷한 문제로 생각된다. 숫자라는 하나의 결과물로 대표되는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질' 을 뒷받침하는 개념들 즉, 영양상태의 균형, '유기농', 소량생산, 창의성, 자연, 본성, 가치판단, 주관성, 논문 편수의 강조보다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포함 여부, 지역화 등이 당연 희생될 수밖에 없고, '농약', 대량생산, 합리성, 세계화 등이 강조될 수 밖에 없다.

반면, 분배라는 개념에서는 균형, 다수의 행복, 다수의 고용 안정, 덜 효율적이나 더 창의적, 농약이 없고, 지역화를 강조하고, 다수의 소량 생산, 소량 소비, 등이 강조되고, 이를 위해 기꺼이 더 내는 인간의 '질' 적 의지, 주관, 인간을 생각하는 가치판단, 을 강조하게 된다. 아울러, 현재를 미래의 세대와 함께 분배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 또한 같은 맥락이다. '양' 을 극한으로 강조하는 자동차의 '대량 생산' 때문에 석유는 딱 100년 한 세대의 전유물이 되어 버려서, 지금까지 마구 퍼다 썼는데, 생각해 보면 석유를 미래에 양보하는 것도 '질' 을 생각하는 마음일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동차의 대량 생산이 야기시킨 엄청난 가솔린의 수요, 그로 인한 미국의 산유국에 대한 집착, 원유 확보를 위한 전쟁의 불사, 그 수많은 자동차가 배출해내는 어마어마한 양의 배기가스와 환경의 오염, 자연을 파괴하고 건설되는 각종 도로, 그리고 교통사고, '양' 의 강조가 초래한 부작용들이다. 그나마 이것도 한 세대만의 축복일 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도로는 자동차 기업이 돈 내서 만들지도 않고, 세금으로 만든다는 것을 함께 인지해야 한다. 자동차는 석유도 있어야 하지만, 도로도 있어야 달린다. 일종의 삼자 합작. 그래서 자동차 산업은 석유를 사용하는 한 뭘 해도 '질' 에 근접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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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유기농으로 키운 블로그냐, 농약 쳐서 키운 블로그냐, 이런 문제도 생각할 수 있다. 포털이라는 미디어가 어떤 사실 (Fact) 의 앞뒤 인과 관계의 이해없이 어느 한 단면만을 보게 하는 성질이 대단히 강하다. 나름, 양이 많아 열량은 높지만 다양한 음식의 고른 섭취에서나 가능한 영양상태의 불균형을 초래해서 미디어 정크푸드화의 가능성이 크다.

결국, 콘텐츠의 '질' 측면에서 볼 때, 정크푸드, 아니 정크콘텐츠라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지금까지 기존의 대다수 메이저 언론도 정크 언론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어쨌건, 유기농 콘텐츠, 유기농 블로그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블로그에 미확인 펌이라는 농약을 마구 뿌려서도 안되고, 대량 생산에 대한 욕심도 버려야 하며, 소규모 생산이지만 하나하나에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말이 된다. 한 사람의 생각과 의견의 표현이 유기농이 된다는 것, 구상화보다는 추상화 보기에 신경쓴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럴 때, 비록 단타이라 하더라도, 에너지가 실린다. 물론, 읽는 것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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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타락하는 것은 그 마음 속에 '양' 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사라지기 시작할 때 부터일 것 같다. 미국에서 '질' 을 강조하는 그 좋은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이라도, 숫자에 함몰되는 '양' 을 강조하는 세계로 뛰어 들면서부터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타락했다. 이들은 대량 생산된 '농약' 채소 때문에, 농부의 가치까지도 그 '농약' 채소를 길러낸 그 생산 시스템의 일개 고용인 수준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아마도 도축장, 정육업계 같은 곳은 가장 이것이 심하게 나타나는 곳일거다.

'질' 좋은 '자유 시장 (Market)' 도 분명히 존재한다. '다수, 다양' 의 공급자와 '다양' 한 수요자들이 존재, 양자간 정확한 정보의 공개 및 접근 가능, 동일한 조건 하에서의 거래 가능, 공평한 권리 확보, 그리고 가격에 인위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장 지배 세력이 없을 때... 그런데 이 시장에 '양' 을 강조하는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할 때, 시장의 '질' 은 파괴된다. '질' 이 보호되는 시스템이 시장에서 사라질수록, 적어도 그 나라의 경제도 '질' 에서 멀어진다. '질' 의 경제가 아닌 '양'의 경제를 꾸리는 나라는 물론 선진국일 수는 없다.

마지막 이야기. '양' 을 강조하는 기업에 '질' 이라는 가치로써 정면 도전할 수 있는 집단은 소비자 밖에 없다. 그래서, 기업에 '질' 의 공급을 요구하고, 기업이 거부할 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소비자들이 많은 사회가 선진 사회이며 선진 시민이 된다. 그런데, '양' 을 강조하는 기업처럼, 성장률, 일인당 국민소득 같은 '양' 에 집착하는 정부가 있다면, 이 또한 당연히 후진 정부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이런 정부는 결국 '질' 을 요구하는 시민들과 충돌하게 되는데, '질' 의 긍정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보통 그들을 밟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것이 지금 '질'의 요구의 상징인 촛불과 '양' 의 강요인 경찰의 폭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2008년 7월 11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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