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뉴웨이브를 대표했던 서극과 그의 1983년 영화 <촉산>을 이야기할 때 써먹는 다소 촌스러운 문구...

1960년대, 단순한 무협 액션에 미장센과 허무주의를 불어 넣어 고품격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홍콩 내에서 헐리우드 영화를 제친 홍콩 영화의 두 대부 호금전과 장철의 황금기 시대 이후, 1966년 모택동의 문화혁명으로 홍콩의 영화산업은 침체기로 접어 들기 시작했는데...
 
이때 다른 나라들과의 합작이 많이 이루어졌고, 이 시기에 우리나라의 정창화 감독도 홍콩으로 갔었다. 그의 1972년 작품,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1973년 미국 개봉해서 박스 오피스 1위를 했었고,  5주 동안 5위 안에서 머물기도 했다. 영화 대부와 경쟁하며... (물론 공식적으로는 홍콩영화이지만.) 쿠엔틴 타란티노가 킬빌에서 정창화 감독에 대한 오마쥬로 바친 장면이 바로 이 영화에서 나온 것...

1970년대... 홍콩영화는 여전히 어려웠다. 이 와중에 혜성같이 등장해서 바람같이 사라진 이소룡 말고는... 그러다가, 유학파들 및 젊은 영화 인재들이 모여 홍콩 뉴웨이브를 형성하고 홍콩영화는 부활하게 되는데, 서극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홍콩영화의 미래는 헐리우드의 SFX 같은 특수영상기법에 달렸다고 확신했고, 그래서 처음엔 나름 화려한 SFX 를 사용한 <접변>,<제1유형위험> 같은 컬트무비를 만들었지만, 관객은 외면했고, 비평가들은 칭찬했다. 그 화려한 시각효과, 촬영, 편집같은 영화의 기술적 부분에서... 그러나, 어쨌건, 홍콩의 젊은 세대들은 극장으로 몰렸고, 홍콩 영화 산업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1983년, 헐리우드 SFX 거성인 조지루카스의 ILM 과 함께 스타들을 동원해 야심작 <촉산>을 만드는데, 이 영화는 완전히 흥행에 실패를 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때에도 영화에 대한 평은 비교적 좋았다고.) 이때 서극은 깨닫게 되는데, "헐리우드의 SFX 는 홍콩 영화에서는 아니다...",  이후 그는 영화제작자, 즉 프로듀서로 변신한다. (그러나 그가 SFX 를 버린 건 아니다.)

1982년, 대처 수상이 등소평에게 1997년 홍콩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홍콩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서극은 오우삼과 함께 이 불안과 어둠의 정서를 주윤발이라는 영웅에게 불어 넣어 그 유명한 암흑의 서사시 <영웅본색>을 만들어 홍콩느와르를 등장시키며 화려한 부활을 이루어 낸다. 이후 홍콩에서는 1993년까지 흥행순위 1위 자리를 헐리우드에게 내주지 않았다. 이 시기가 소위 홍콩영화의 르네상스 라고까지 하는 홍콩느와르의 전성시대다.

1993년, 헐리우드의 <쥬라기 공원>에 일격을 당하고 나서 흔들리기 시작한 홍콩영화계... <천녀유혼>,<황비홍>,<동방불패>로 고군분투하던 서극도 결국은 무릎을 꿇고 결국 미국으로 가버렸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게 반환된 후, 오우삼, 서극 등이 홍콩을 떠난 자리를 지키면서, 남은 몇몇 감독들은 블락버스터를 제작하는 도박을 하게 되는데, 유위강 감독의 <무간도>가 그중 하나다. 그리고, 주성치도 <소림축구>로 최고흥행을 기록하며, 홍콩영화의 새로운 부활을 예고했고...
 
홍콩영화의 역사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영화같은 스토리를 지니고 있는데, 어쨌건...

여기서 한가지, 어쩌면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사실을 이야기 해주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서극의 영화가 SFX 를 많이 사용하면, 관객은 외면했고, 자제하면 관객은 찬사를 보냈다는 점이다 . 왜? 지금 사람들은 서극을 동양의 스필버그로 기억하기 보다는, <황비홍>이나 <영웅본색>으로 기억한다.

현재 헐리우드에서 사용되는 CG를 비롯한 SFX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한다. 우주와 판타지에서만 놀던 CG 가 이제 실생활 속에서도 감쪽같이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는... 즉, 일상 생활 안에서의 판타지로 SFX 는 사람들의 삶 속을 파고드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고, CG 라는 것은 결국 극사실주의라는 문화사적 흐름에서 보아야 한다는 거다. 단순히 SF 영화나 판타지를 위한 도구로써 CG를 바라보면 아마도 장담컨대 크게 역행하는 거다.

결론은, SFX는 판타지와 SF영화의 품을 떠나서, 이제 사람들의 현실세계로 돌진하고 있으며, 스크린 속 상상력이라는 것은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이제 더더욱 SFX 만 가지고는 메울 수 없게 된다. CG 의 이상향은 상상의 괴물이 아닌 완벽한 현실세계이며, 실제보다 더 진짜같은 사람이니까... CG 입장에서 봐도, 자기를 자꾸 괴물 속에만 감추려 드는 창조주는 싫어할 거다.

생각해보면, SFX가 세련되면 세련될 수록, 결국 무협의 격은 떨어졌다. 결국 서극이 적극 도입한 SFX로 인해, 홍콩의 무협영화는 사라져 갔고, 결론적으로 보면, 재능있는 감독들이 애매한 상업주의 영화판으로 내몰리고, 왕가위도 망가졌다. 이것은 정성일이 아주 오래 전, 서극이 적극 도입했던 SFX를 우려하며 한 말이다.

심형래와 그의 영화는 그러니까 한국영화판에 SFX 라는 망상의 폭탄을 하나 던져 놓고는
그것이 터지기를 기대한 셈이지만,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사실은, 어떤 영화학교에서도 돈 버는 영화 만드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거다. 헐리우드의 상업영화도 처음에는 예술영화하다가 돌아선 사람들이 만든 영화들이지, 처음부터 돈벌겠다고 덤벼 든 사람들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경영학이나 마케팅을 했겠지.

그 영화인생이 처음부터 돈벌겠다는 것인 사람들이 자꾸 영화판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면, 장담컨대, 그 영화판은 그냥 사라지고 만다.

참고로, 20년 전에도 헐리우드에서 3천만불 들여 500만불 벌면, 거의 재난이라 여겼다. 게다가 질적으로 저급한 영화로 미국흥행을 기대한다는 것은 헐리우드를 정말 우습게 보는 것인 동시에, 우리의 조급함과 저급함과 무식함을 만천하에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스필버그도 초기작은 굉장한 연출력의 작품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며,  영화판의 성장동력은 결코 SFX 에 있지 않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질좋은 영화를 만들려고 해야지, 질좋은 CG를 만들려고 하면 안된다는 거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그러면 영화판 자체가 망한다.

홍콩영화는 SFX 가 아니라 결국 자신의 강점인 무협의 부활을 통해 홍콩 느와르라는 전성시대를 누렸다. 우리만이 가진 최고의 강점은?


2007년 9월 18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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