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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4회 부산국제영화제는 몸도 안좋고 해서 그야말로 며칠 쉬다 오자는 기분으로 다녀왔다. 영화도 뭘 볼까 미리 알아보고 간 것도 아니고 해서 되는 대로 표를 구할 수 있는 작품 몇 편만을 보았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미리 영화를 고르고 갔던 작년, 재작년에 본 영화들에 비하면 영화들이 2%씩 아쉽다라는 생각이 든다.

부산 해운대는 갈수록 별로 가고 싶지 않는 곳이 되는 듯 하다. 이제는 바다와는 별로 관계 없는 곳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PIFF 상영극장의 하나로 센텀시티에 생긴 신세계백화점에 위치한 CGV 가 추가되었는데 뭐랄까 좀 기이한 곳이라는 느낌이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롯데백화점 롯데시네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자본주의의 꽃인 백화점에서 자본주의로 멍들어가는 세계의 다양한 영화를 보고 나와서 거기서 밥먹고 쇼핑도 하고 한다는 것이 뭐랄까 참 "씁쓸하구만" 하게 된다.

남포동에 위치한 부산극장과 대영극장은 언젠가 극장 리스트에서 제외되거나 변방이 될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제는 해운대에 거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 쪽에서 숙박하는 이들에게는 멀고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나이가 들어 그런건가... 이런 상황에서 해운대 근처에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CGV 등의 거대 멀티 플렉스가 다 모였으니... 평소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극장을 찾는지 잘 모르겠다. 하여간 자본의 힘이란 참 무섭다.

그나저나 이 신세계백화점은 세계 최대라고 하는데 엄청 크긴 하다. 내부도 넓고 이것저것 많이 가져다 놓을 수도 있고 시원시원하긴 한데, 백화점도 넓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닌가 보다 싶기도 하다. 한가지 궁금한 것은 부산 해운대에 롯데를 비롯하여 이 거대 백화점들을 먹여 살릴 만한 돈많은 소비자는 풍부하게 있는가, 라는 것이다. 너무 넓어 한산하게 보이는 것인지 사람이 없어 그런 것인지... 사람들도 빠져나가는 중이라던데.



아프리카 영화와 아랍 영화를 좀더 보았어야 하는데 아쉽다. 최근 몇 년은 주로 이 쪽 영화가 관심 일순위다. 하여간 1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 6편인데 다음과 같다.

1. 사뮤엘 마오즈의 <Lebanon 레바논, 2009 이스라엘>
2. 세디그 바르막의 <Opium War 아편전쟁, 2008 아프가니스탄>
3. 수산나 니키아렐리의 <Cosmonaut 우주비행사, 2009 이탈리아>
4. 아다마 드라보 & 라지 디아키테의 <The Power of the Poor 가난한 자들의 힘, 2008 말리>
5. 마르코스 카르네발레의 <Anita 아니타, 2009 아르헨티나>
6. 프랑수아 뤼넬의 <Mona Lisa Has Vanished 모나리자 사라지다, 2008 프랑스>

<레바논>


<레바논>은 지난 9월 있었던 66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바시르와 왈츠를>처럼 1980년대 이스라엘의 중동 침략을 다룬 영화다. 2009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면서 애니메이션인 <바시르와 왈츠를> 과 느낌이 상당히 유사하며 역시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데 촬영을 전공한 탓인지 그 영상과 촬영기법이 대단히 독특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공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젊은 이스라엘 병사 4명이 타고 있는 탱크 내부가 전부다. 탱크의 바깥 세계는 오로지 운전 또는 포격용 관측창으로만 보여진다.

총을 쏘아 살인을 해 본 적이 없는 이 순진한 젊은 네 병사들은 시민들을 죽이고 마을을 파괴하면서 괴로와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상부의 명령에는 복종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처지다.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의 이들의 갈등은 언제라도 폭발할 것처럼 시종일관 긴장을 유발하고, 탱크라는 대단히 협소하고 한정된 공간은 탱크를 벗어나지 못하는 병사들의 갈등과 공포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멀찌감치 마치 불꽃놀이 관전하듯 전쟁을 바라보게 하는 영상들, 이런 영상들은 전쟁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관객을 탱크에 태워 1인칭 주인공으로 만든 다음, 쉴새없이 초조함에 움직이는 관측창과 잠망경을 통해 명령에 의한 살육과 파괴의 현장을 직접 바라보게 하고 괴로와 하면서도 살기 위해 살인을 해야 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감을 그 닫히 한정된 공간 안에서 체험하게 한다.

<아편전쟁>



2003년 <천상의 소녀 Osama>을 연출했던 세디그 바르막의 2008년 작품이다. <천상의 소녀>에 출연했던 마리나 골바하리가 이 영화에도 출연하고 있으며 부산국제영화제를 인연으로 한국도 제작에 참여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 매력인데 일단 심각하지 않고 재미있다. 영화에 담겨진 여러 이야기들은 도대체가 이것이 무슨 상황인가, 싶을 정도로 다소 황당하고 혼란스러우면서 코믹하기까지 한데 "아프가니스탄의 현 상황 자체가 실은 혼돈 그 자체다" 라는 영화 상영 후 시네토크에서 감독의 설명이 있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령에 헬기 사고로 불시착한 미국 병사 두 명이 근처에서 생계를 위해 양귀비를 재배하던 아프가니스탄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양귀비는 탈레반이 무기 구입 등을 위해 기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체적 고통을 잊기 위해 양귀비를 말아 피던 미군 병사들은 이 가족들로부터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접근을 시도한다.

좀처럼 그들의 생활 양식과 여성에 대한 가치관이 이해하기 어려운 아프가니스탄 가족들과 티격태격 만들어내는 여러가지 해프닝들을 보고 하하하 웃지만 그 웃음은 실은 뭐랄까 참으로 혼란스러운, 누가 누구의 적인지도 이제는 구분이 안되는 아프가니스탄의 현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일종의 실소로 변하며 이 실소에 비례하여 비극은 부각된다.

버려진 탱크나 헬기를 집으로 삼고 양귀비를 키우며 살아가는 이 아프가니스탄 가족은 탈레반에게 이용당하고 강대국들과 국제 정치와 희생양이며 전쟁의 피해자이기도 한데 정작 그들은 자신들이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 모든 것을 종교, 미신, 관습에 돌릴 뿐이다. 이들 가족의 포로가 되어 양귀비 재배를 도와주며 먹을 것을 얻어 먹는 미군 병사들과의 관계도 아이러니다.

감독은 이야기한다. 단순히 일개 에피소드를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이러한 혼돈스러운 상황이 모든 아프가니스탄인들의 현실로 보아도 좋다라고. 그만큼 현실이 어렵다라고.

<우주비행사>


이 영화 역시 독특한 작품이다. <우주비행사>가 타이틀이 아니라면 <공산주의 소녀> 정도가 어떨까 싶다. 미국과 소련이 우주를 놓고 경쟁하던 50년대와 60년대 10대를 보낸 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소녀 루시아나의 성장 이야기다. 우파 부르주아인 새아빠를 파시스트라 몰아붙이고, 함께 우주를 동경하는 간질병 환자이자 역시 공산주의 소년인 오빠와는 늘 함께 한다.

루시아나는 스푸트닉과 라이카에 열광하며 진정한 공산주의자로서의 꿈을 키워 나간다. 함께 청년공산당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남성우월주의 마초 공산주의자들 틈바구니 속에서도 용기있게 여성의 목소리를 낼 줄도 안다. 그러나 루시아나는 10대 소녀다, 라는 점을 영화는 부각시킨다.

우주라는 거대한 이상에 눈을 돌리고 이 우주에 꿈을 날려 보낸 소련의 보스토크와 가가린의 공산주의의 위대함을 주장하면서도, 사랑에 눈을 뜨고 누군가를 남자친구를 소유하고픈 질투심에도 눈을 떠가면서 10대 소녀로서의 열병도 톡톡히 앓는다. 공산주의자를 꿈꾸지만 그렇다고 이데올로기로서 인간의 순수한 감정을 가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마도 이 작품이 데뷔작인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인 듯. 역시 상영 후 시네토크 자리가 있었다. 보니까 시네토크라는 것도 너무 시시콜콜하게 질문하고 그러면 안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영화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이긴 한데 영화를 생각하는 재미가 사라져 버리는 단점도 있다.

<가난한 자들의 힘>



아프리카 말리에서 나온 영화다. 잘은 모르겠지만 말리 영화를 또 볼 수 있을까 싶다. 아프리카 영화를 눈여겨 보아야 하는 이유를 아주 간단히 말하면 아프리카를 알면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립 및 착취와 억압에서 비롯하는 세계 경제 흐름을 알 수 있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게 만드는 무지와 광신의 비극을 알 수 있고, 소위 선진국들이라는 국가들의 비열함과 이중성을 알 수 있으며, 뉴스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지는 세계는 실제와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가상의 세계라는 것을 깨닫게 하게 때문이다.

영화는 말리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살인 사건과 그 수사 과정을 다룬 작품으로 이 사건을 하나의 전설처럼 한 여인이 마당에 모인 아이들에게 말리의 전통 악기인 코라를 연주하면서 들려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팡당팡가의 전설' 이라는 것인데 영화의 타이틀을 말리어로 하면 Fantan Fanga 라고 한다.

주술사의 말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전통과 관습을 악용하여 단지 자신의 상관에게 충성을 보이고자 살인하고 제물을 바치는 따위의 야만적인 만행을 서슴치 않고 묵인하는 말리의 정치 끄나풀들과 권력자들의 실체를 똑똑히 파악하고 이 무지한 관습을 떨치고 저항해야 한다는 메세지가 담긴 영화로, 완성도보다는 끈질기게 저항하면서 살아 남자,라는 <가난한 자들의 힘>을 주장하는 메세지가 마음에 오래 남을 그런 영화다.

<아니타>



<송곳니>라는 영화를 보려다가 결국은 표를 구하지 못하고 우연히 본 작품인데 생각 외로 영화는 괜찮았다. 아니타라는 뚱뚱한 다운증후군 소녀(소녀가 아닐 수도 있다. 나이가 가늠이 안되니) 아니타의 이야기로 1994년 7월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있었던 AMIA (유대인상조회) 폭탄 테러 사건이 영화의 배경이다.

폭탄 테러로 자신도 다치고 또한 자신을 평생 돌봐준 엄마를 잃은 아니타는 그 혼란 속에서 집을 잃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를 떠돌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아니타의 오빠는 아니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애타게 찾기 시작한다. 아니타가 만나게 되는 이들은 그러니까 힘들게 세상을 사는 이들이다. 이혼 당하고 양육비를 보내며 근근히 벌어 먹고 사는 사진작가, 조그만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중국인들, 고물장수와 혼자 사는 늙은 간호사...

아니타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엄마가 해준대로 먹여 달라 씻겨 달라 이 가난한 이들에게 요구를 한다. 힘겹게 사는 그들이지만 아니타의 요구를 어떻게든 들어주고 동거동락을 하게 되면서 (다운증후군인 탓이겠지만) 아니타의 세상을 단순하면서도 관조적으로 사는 삶의 방식과 자신의 현실과 비교를 하면서 잠시나마 위안과 희망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 한 질문은 "행복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세상을 몰라야 하는 것일까" 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가난한 자들의 힘>이나 <아편전쟁> 의 배경이 되는 나라처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해 알면 알수록 마냥 아무 생각없이 행복하게 살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인생의 다운증후군이란 것이 "행복한 삶" 을 살기 위한 일종의 필요악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배움과 현실의 괴리 하나만으로 사실 인생은 이토록 피곤한데 배움은 배움일 뿐이고 현실은 현실일 뿐, 적당히 진실을 탐하려 하지 말고 이 사회에 적응하여 잘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하고 옳은 삶인지 참...

아 그리고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이는 요즘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리토 비탈레였다. 꽤 오래 전에 리토 비탈레의 음반을 구입하여 듣기도 했는데 영화 전편에 흐르던 서정적인 음악으로 오랜만에 이렇게 들으니 반갑기도 하고...

<모나리자 사라지다>



이 영화는 왜 보았는지 모르겠다. 보다 보니까 그레고와 콜랭이 출연하는데 그가 출연했구나 하는 정도 밖에는 난 그다지...

2009년 10월 14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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