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김종철은 <녹색평론> 발행인이자, "생태적 삶"의 가치를 전파하는 생태주의 운동가로 한국 생태 환경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생태론은 자연 중심의 사고로 인간을 중심에 두는 환경론과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녹색평론> 잡지를 본 적은 없지만,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책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같은 책들 꼭 읽어보시라. 비교적 최근에 본 것들로는 <녹색평론선집>이나 <한미FTA 핸드북>같은 것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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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평론>을 만드는 이유로, "소외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온 농민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라고 했을 때 난 참 내가 비겁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멋지게 살자'라는 다짐조차 내 입에서 겉도는 위선임을 또다시 일깨운다. 다시 위선자가 될 수는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 강좌를 참 잘 들었다고 느낀다. 아래에 김종철의 강의 중 (내가) 다시 되새길 부분을 추려 놓았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정치권의 녹색뉴딜 또는 녹색성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구? 녹색은 성장과 결합이 불가능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성장시키지 말자는 거다. 그런 이야기 들으면 <녹색평론> 제대로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정부의 정책에는 아무 희망이 없다. 그럼에도 녹색성장이 먹히는 이유는? 환경론과 생태론의 차이를 몰라서 그런 것 같다. 환경론은 인간중심주의고 생태론은 그것을 넘어서는 거다.

환경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대중들이 사용하니까. 그러나 틀린 말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령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아이가 한 명 죽었을 때 내가 아픔을 느끼는 것, 그리고 분노하는 것, 이것이 생태적 감수성이다. 녹색사상은 환경적 감수성이 아닌 생태적 감수성에 기반한다.

사람들은 대안을 내놓으란다. 윗놈들은 돈 쳐먹고 매일 문제만 일으키는데 날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지... 그 문제점을 끊임없이 알리기 위한 잡지 발행조차도 지금 하루하루가 전투다.

지금의 경제위기가 빨리 극복해야 할 대상인가?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낭비와 탕진의 경제가 계속되면 어차피 우린 전멸이다. 이것은 일단 멈추자는 섭리의 작용일 수도 있다. 우연? 필연일 수도 있다. 인류 문명의 파멸을 막는 어떤 존재의 조절일 수도 있다. 인류 사회를 위해서는 기회다. 잘 활용해야 한다. 지식인들의 활발한 담론 활동이 필요하다.

이 기회에 "어떻게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해라.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말했다지. "좋은 삶은 관조적인 삶" "좋은 삶이란 좋은 삶이 뭔가를 생각하며 사는 삶"이란다. 실천은 일단 그 다음 문제다.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 한다. 사회가 고장나면 인간에게는 성찰의 기회가 온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이 되면 아득캄캄하지만 좋은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예상치 않은 비상사태에 직면한다? 이것은 기회다. 마음을 어둡게 가지지 마라.

나의 생태학적 상상력의 뿌리가 뭐냐고? 난 농적가치를 이야기한다. 농민 중심의 사고방식. 농업을 중심에 두자는 거다. 나이 드니까 자꾸 생각난다. 중요한 가르침의 원천이 할머니와 외할머니더라. 일제, 해방, 전쟁, 유신독재, 군부독재, IMF, 모든 시대를 다 살면서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웠다. 그 강인한 정신은 어디서 나오는가?

경제위기? 죽지 않는다, 함께 하는 공동체만 있으면. 없으면 아무리 잘 살아도 항상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에콜로지 자체가 '관계'에 대한 사상이다. 개인주의는 다 혼자다. 얼마나 끔찍한가? 항상 불안하고 고독하다.

한번이라도 내 인생에 충실하게 살아야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다. 답은 관계다. Social Capital. 인간관계라는 자본의 회복이어야 한다. UN 같은 세계기구의 잘못이 뭐냐 하면 세계 소득의 균일화라는 기계적인 적용을 한다. 아프리카, 방글라데시 사람들 행복해 한다. 서구가 가만히만 내버려 둔다면.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래서 농업이 살고 자급이 되기 때문에.

서울 수도권에서 매일 2천만명이 똥을 싼다. 그거 지금 다 어디로 가나? 지금 편리한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것인가? 인생은 기본적으로 이야기다. 좋은 인생? 내가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를 만드느냐 하는 거다. 문학적 감성도 그렇다.

아이들은 사람들과 섞여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야기 나누며 사는 삶이 너무 없어졌다. 물질적 삶이 풍부했다면 인간관계가 나오나? 이웃간 교류가 필요없어지는데. 결핍이 있어야 관계와 배려가 형성된다. 일시적인 것이 지속이 되려면 어느 정도는 궁핍이 지속이 되어야 한다. 상부상조, 인심 같은 가치들은 가난하니까 나오는 것들이다.

가장 소중한 재산은 타인과의 관계다. 하나님의 왕국은 너희들 안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웃을 사랑하라. 한다. 인류를 사랑하라 하지 않는다.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라. 경제 위기 오래 갔으면 좋겠다. '서로 도와줘야 살 수 있다.'라는 가치가 사회전반에 퍼지도록. 이거 체험하고 죽어야 한다. 그래서 협동조합같은 것들이 좋다. 얼마나 좋아.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국가는 절대로 자본의 편이다. 민중의 편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공격한다. 아무 이유가 없다. 그냥 국가 확장 논리다. 대의 민주주의는 기득권자들의 권력을 영원히 누리려고 만든 장치일 뿐이다. 우리는 별도도 자율적 삶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주의 혁명했더니 몇천만 죽고 또 국가주의, 관료주의 나타났다. 대안? 상부상조-협동체를 만들어 국가와 자본에서 벗어나 사는 능력을 키우는 것 말고 있나? 대의 민주주의로 절대로 해결 안된다. 기대할 것을 기대해야지.

풀뿌리 민주주의 살리려면 공동체, 결사체 들이 수없이 나와야 한다. 우리가 지금 공정택하고 싸울 때인가? 누군가는 해야 하겠지만 누군가는 우리끼리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생협 같은 것들. 내년부터 "대학 안가기 운동" 적극 지지 하겠다. 대학 나와 봐야 비정규직이고, 정규직 되봐야 40세 정년이다. 모욕적 인생이다. 왜 이러고 사나?

젊은 사람 입장에서 '녹색 뉴딜'에 관계없이 많은 일자리가 도시에서 사라질거다. 찾기도 더 어려워지고 임시적 삶이 아니라 지속적 삶을 살아 가려면 농촌으로 가라는 거다. 농적가치를 중요시 하면서. 도시 사람들이 굉장히 두려워 하는데 모여서 하면 재미있을 거다.

전부 농촌으로 갈수는 없으니 도시에서 농촌 살리기를 도와 주어도 된다. 내 식탁만이라도 우리 농산물 올리겠다 생협 운동하고 농촌도 돕고, 도시에서 농적가치를 실현하자는 거다. 농촌에 사실 일자리 많다. 에너지 문제와 같이 해결해야 한다. 지역공동체 자립기반은 순환적인 물질생산이다. 지금은 사치를 동경한다. 소돔과 고모라와 다르지 않다.

농적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 중간 단계로 도시농업에 관해서 고민한다. 과수원 나무 분양 같은 것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도 형성한다. 쿠바를 보아라. 자연농법 연구를 국가차원에서 꾸준히 지원했다. 교육수준이 높으니 과학이 생태계를 보호하는데 쓰여진다. 얼마나 좋은가? 특정시기 동안 쿠바 고생했지만 지금은 "사람의 힘으로 농사를 짓는다" 가치를 실현하고 있고 지금은 잘 산다. 기계와 농약을 쓰지 않는다. 기술의학에서 자연의학으로 대체된다. 최고대학의 중심에는 농과대학이 있다.

폭력적 편리함에 평화적 고단함이 지고 있다. 소득 생각하면 농촌 못간다. 자식 대학보낼 생각해도 못간다. 자급 차원에서 생각해라. 쓰다가 남으면 파는 거다. 상품으로서의 농업? 안된다. 그래서 대학 보내지 말자는 거다. 이것을 해 나가는 힘이 뭐냐고? 인간으로서의 자존심? 노예가 아니라 인간답게 자유인으로 살고 싶다는 그런 것. 절대로 국가와 자본은 농민을 도와주지 않는다. 농촌 잘 살게 한다고? 봐라 어떻게든 농민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생태적 삶과 환경적 삶의 차이를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자본주의적 가치를 인정하면서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문명의 부정일지도 모른다. 농촌 가고 싶은 사람들은 이런 맘으로 가라. 그리고 사상이 없으면 안된다. 농촌에 남아 있는 사람? 봐라 다 도인이다. 쫓겨서 가면 다 파국이다.


농적가치. 사실 대단히 중요한거다. 자본의 의해 농락당한채 왜곡되고 철저하게 밟혀져 왔다. 그런데 그것은 실은 "인간이 자본에 밟혀져 왔다" 라는 것과 직접적 동의어이기도 하다. 농업의 가치는 산업으로서보다는 인간 가치로서 취급되어져야 한다.

가령, 쌀은 인간을 살리는 식량이지만 부족해지는 순간 바로 인간을 위협하는 무기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한 나라의 '식량자급'이라는 문제는 최후까지 결코 포기되어서는 안된는 인간 삶의 지존의 가치다. FTA 에도 농산물 교역, 쌀, 밀, 옥수수같은 작물의 포함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을 포함시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계약이라고 하는데도 국가와 정부는 쉽게 포기하고 만다. 그 이유가 뭐냐고? MB정부의 미국산 소고기와 옥수수 수입 봐라. 우리나라에 어떤 사태를 초래하는지.

아프리카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들을 봐라. 식량을 수출하면서도 자국의 국민들은 굶어 죽는다. 서구의 국가들은 이 나라의 농업을 자본으로 통째로 접수하고는 수출만 시켜왔다. 조용한 폭력을 동원한 글로벌 사채상환 빚잔치에 농산물과 농민들이 동원된다. 정부와 국가는 이것을 종용한다. 농산물과 농민의 노동이 교역의 대상인가? 전세계 기근의 문제. 자국의 식량이 남아서 외국에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빚을 갚기 위해서 수출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지붕 오르고 사다리 차버린 국가들이 그렇게 세계를 마치 소몰이 하듯 몰아왔다. 각국의 농업부터 자급에서 수출로 전환시키면서 작살낸다. 쌀과 소고기 같은 농산물과 축산물의 먹거리가 자유 무역의 대상이어서는 곤란하다. 아프리카 아시아가 왜 이러고 사는지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농업을 버리는 나라가 진정한 후진국입니다.

농업의 가치는 인간의 가치와 직결된다. 나는 농지면적 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덮는 면적을 인간성 상실 지수로 봐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 수치가 > 1 이 되는 날 인간의 가치는 떨어질 땅도 찾지 못하게 된다. 벌써 넘었는지도 모르지만. 자, 빌딩과 아파트 숲으로 싸인 도시와 문명에서의 삶에서 과연 행복하십니까? 불행히도 공식적인 불행지수도 점점 커져만 간다.

강좌의 가르침대로 그것은 농촌의 붕괴에 따른 인간 관계의 상실, 커뮤니티 정신의 소멸 탓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아파트와 빌딩은 대부분이 관계의 차단을 기반으로 세워진 건물이며 그 안에서의 삶은 철저히 외롭다. 대신 세상은 사이버로 연결된다. 사이버 커뮤니티가 그렇게 인기가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업자들이여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지 마라.

재사용 불가능한 에너지도 곧 고갈되는 마당에 함께 하는 삶이 아니면 그 에너지 비효율성에도 견뎌 낼 수 없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사회가 고장나면 인간에게는 성찰의 기회가 온다" 라는 말에는 아마도 인류 최고의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농적가치는 꼭 농업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 어려움을 공유하는 관계에서 진실이 소통할 것이며, 인간 관계를 통한 진실의 소통에서 문학적 감수성, 음악적 감수성 같은 것들이 생겨날거다. 그래서 가난과 예술의 불가분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인지도 모르지.
 
현재의 나? 확실히 느끼는 것은 나와 내 주변의 사회적 관계는 고장이 난 것이 분명한데, 고치는 방법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2009년 1월 15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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