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2009년 신년강좌 1월 20일 : 정혜신에게 김어준이 '위기의 심리를' 묻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나와 내가 아닌 것의 경계를 묻는다."


정혜신은 정신과 전문의로 남성심리가 전문이고 마인드 프리즘 대표이며, 김어준은 딴지일보 총수로서 권위주의에 촌철살인을 날리는 것으로 유명하단다. 특히 김어준은 최근 한겨레신문에 인간관계의 심리를 분석해주는 야매 상담소를 차리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날 강좌는 정통에 대해 날리는 야매의 도전장 정도 되나...

김어준의 "대통령의 자격요건이 뭐요?" 라는 질문에 정혜신은 "자기성찰이야. 지금 대통령은 쉽지는 않겠지만 일단 희망은 가져보자구. (예의상)" 이라고 간단하게 답한다. 이 말은 이 날 강좌의 핵심 주제이기도 했는데 이야기를 쭈욱 듣다보니 "가끔은 정신과를 찾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군" 하는 생각이 든다.

김어준의 "어떤 남자가 매력있소?" 라는 질문에 정혜신은 "화 잘내는 근육없는 남자. 이런 건 기본이지" 라고 간단하게 답한다. 하루 몇시간씩 운동해야 유지되는 근육을 달고 사는 남자에게 자기 영역이 침범당할 때 화를 낼만한 지성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라는 거다. 욕심이나 포악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역의 경계을 명확하게 느끼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화(火)'라는 것이다. 차라리 불같은 성격과도 통할 듯 싶다.

"근육없고, 자아의식 강해야 매력이 넘쳐. 자기 것에 날이 서야 하고, 가치관이 다듬어져 있어야 하고, 사실 이건 나이 들어야 가능하지만... 그래도 요즘 젊은이들에게서는 그런 것들을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려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관계없이 영어에 코가 꿰어 끌려가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다면 분명해지는 한가지는 TV 에 넘쳐나는 그 '매력' 완전 없는 멍청이들에게 현재 우리의 삶은 점령당했다는 거지. 이런 제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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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상담을 받는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나같은 사람이 또 있냐" 라고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치료는 "어 많어. 너만 그런거 아니니 안심해" 라는 이 위로의 강력한 치료는 심리적 안정을 주는데 효과가 크다고 한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주는 심리적 불안감이 일반화, 보편화되면서 객관화되고 거리감이 생기고 그래서 불안이 안정으로 변화한다는 거다.

문제는 그 불안이 개인적이지 않고 집단적이라는 것. 이런 식이면 개인적 차원에서 불안은 해소가 되지를 못한다.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되듯 불안이 전염병화되고 있다. 같은 자극에도 사람마다 느끼는 물리적 통증이 다 다른 법인데 개개인이 자신의 개별적 불안의 실체 파악도 하지 못한 채 집단의 불안 요소를 일괄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여 버린다,라는 거다. 실체없는 공포 조장의 대명사 매카시즘이나 국가 경제위기를 철저히 개인화시켜 버리는 MB정부의 작태를 보라.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내가 느끼는 그 불안의 실체를 개인적 차원에서 파악해야 하는 것. 경제위기로 인한 집단의 불안과 내가 느끼는 불안의 정체는 동일한 것인지 아니면 전혀 별개의 것인지 분명히 밝혀내자는 거다. 그리고 "경제가 회복이 되면 정말 나의 불안감은 해소가 될까" 라는 고민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경제적으로 성취한 사람은 불안이 없어야 하지만, 그런가? 오히려 그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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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가치관 점령 능력은 실로 대단하다. 꿈과 자아, 관념적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실체적이어야 하는 '내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인간은 늘 고민하지만 이것을 방해하는 최대의 걸림돌은 바로 이 '돈'이라는 거란다. 하지만 생계비가 어느 수준 이상만 되면 경제력과 행복, 성취감, 존경심 등은 더 이상 비례하지도 않고 사실 상관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조장당하고 있는 것일 뿐.

인간에게는 마술적 사고 (Magical Thinking) 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예측 불가능한 심리 상태를 처리하기 위해서 마술적 사고를 한다는 거다. 윈시인들은 함께 살던 가장 순결한 처녀를 바치면 위험이 사라질거야, 스스로 이런 불합리한 사고 체계를 만들고는 불안을 통제하여 왔고, 이런 의식들은 오랫동안 더욱 확대되어 왔다고 한다. 종교도 이런 '마술적 사고' 관점에서 보면 꽤 흥미로울 듯 싶다.

엄마가 많이 아픈 어떤 아이가 있는데 엄마가 아픈 것이 통제가 안된다. "하루에 100쪽씩 책을 읽으면 엄마가 나을거야" 그러면서 아이는 안심한다. 물론 엄마가 아픈 것은 아이의 바램과는 무관할 뿐이다. 그러다가 엄마가 죽으면 아이는 "내가 책을 덜 읽어서 그런거야... " 라며 죄의식까지 생길 수도 있다. 통제할 수 없는 불안에 대응하는 마술적 사고가 이런 것이라고 한다.

돈? 아무리 많이 벌어도 나의 무기력함과 불안 해소의 해결은 되지 않는데도 해결될거야, 라고 돈의 가치에 종속되는 '마술적 사고'에 사람들은 쉽게 빠진다. 이거 어떻게 해결하나... 돈의 가치관 점령 능력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가 아닌가, 고민 한번 해보자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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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존재 의미' 찾기를 방해하는 두번째 걸림돌은 바로 '학벌'에 대한 마술적 사고라고 한다. 최근 미네르바의 지식과 학력을 가지고 인간을 조롱하며, 정부 스스로 그 생각의 수준을 다시 한번 만천하에 공식천명한 사건도 비슷하다고 한다. 정부는 분해서 그를 가뒀다는데 왜 분할까? 그 분함에 공감하면 순결한 처녀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원시인 수준의 의식을 가진 거라고 밖에 할 수 없겠지...

돈보다 더 고급화된 마술적 사고의 구속력이 이 '학벌'이라는 거다. "돈 있는 사람은 안 무서운데 배운 사람은 무섭더라..." 우리나라의 이 돈보다 더 무서운 학력의 가치관 점령 능력은 실로 오래된 것이기도 한데, 과거급제만 하면 고시만 패스하면 명문대만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행복할거야... 라고 몰입하지만 실은 모두 행복의 본질과 관계없는 엉뚱한 짓들일 뿐이다.

"경제력만 성취되면 만사 OK" 라는 행복에 대한 경제의 마술적 사고... 직장을 얻지 못해도 자격증만 계속 따고 공부를 계속 하고 대학원만 가면 해결되겠지, 라는 명분을 스스로 열심히 만들지만 실체적으로는 본질과 멀어지는 것이며 본질 대면을 자꾸만 계속해서 유예하는 사고와 행동일 뿐이다.

"일단 멈춰" 식의 사고가 필요하다. "도대체 이게 뭐야..." 살펴봐야 지금 돌아가는 상황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어떤 가치관의 개입없이 나와 세상의 관계 상에서 일체의 자기대면 체험의 장을 가지라는 거다. 자기대면? 이 사회에서 지식인들의 역할이 바로 이런거 아닐까... 왜냐하면 세상을 진짜 제대로 배운 사람은 결코 수구적인 생각을 할 수 없으니까. 난 그래서 '보수 지식인' 이라는 개념이 황당무개하다고 여기는 편이다.

자기대면은 관념론적이어서 설명하기 어렵지만 개인에겐 구체적이고 실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정혜신의 주장이다. 자기대면은 일단 자기 감각에 충실한 것에서 시작한다. 우는 본능에 충실했는데 밥 안주면 아예 울지 않게 되듯이 정당한 감각에 마비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큰 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반응이 없어 감각이 퇴화되면 결국 자기 보호 기제가 작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우리나라가 지금 그렇다. 울어도 반응이 없으니 생각과 감각이 마비되어 버리고 셀프 보호 기제가 사라져 버린다. 그럼 어떡해? 정혜신은 자기대면을 위해서 우선 마술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자기 감각에 충실하라를 이야기하는데, 이미 마술적 사고의 틀에서 커 버린 보통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이라면 뭐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고민부터가 그 시작이다. 아마도 이런 것이 이 시사IN 신년 강좌의 의미이기도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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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결의 예시로서 이런 것을 이야기했다. 누군지는 기억 안나는데 어떤 정신분석대가가 제안했다는 "Here & New" 라는 개념. "내일이 시험이라 열라 공부를 한다. 그러면 머리에는 공부가 전경이요 나머지 모든 욕구가 배경이 된다.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배고프다는 생각이 전경이 되고 시험 공부는 배경이 된다. 라면으로 허기를 채우면 배고픔은 다시 배경으로 돌아가고 시험이 다시 전경으로 온다." 전경과 배경으로 욕구가 계속 바뀐다.

가령 나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거 해서 먹고 살지 못한다고 하면서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한다. 하지만 만화가라는 꿈은 늘 나와 함께 있다. 이 경우 만화가의 꿈은 계속 전경에 있는데 욕구 총족이 안되고 있다. 그리고 이 생각이 배경으로 나가지를 못하고 계속해서 전경 언저리에서 배회를 한다. 그러다 보니 도대체가 삶의 진도가 나가지를 않고 삶의 에너지만 소모된다.

그러니까 "Here & Now" 란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그 욕구를 풀어주어야만 배경으로 보낼 수 있게 된다는 것.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욕구 충족이 성공이냐 실패냐는 상관 없다. 만화가가 되건 안되건 해보고 결과를 본 후 적어도 그 꿈을 배경으로 보낸 것이므로 그것이 일종의 행복이요 성공일 수 있다. 적극적인 "Here & Now" 의 실천. 행복의 지름길.

예측 불가능한 공포가 내면화되고 생각의 전경에서 계속해서 머무르고 있다면 이거야 말로 끔찍한 삶이 아닐 수가 없다. 이것을 푸는 방법? 태어나서 길러지는 본질아닌 본질과 참고 사는 본능이 충돌할 때 과감히 본능이 일러주는 대로 선택을 해 봐라. 적어도 그 공포는 배경으로 보낼 수 있다. 욕구충족이 비록 실패할지라도 말이야... 머리 안에서만 해결하지 말라는 거다. 정헤신과 김어준은 바로 이런 충고를 나에게 한거다. 야매식으로 표현하면 "똥 마려우면 빨리 싸"...

우리를 감동시키는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들도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너 안에 잠자고 있는 너의 본능을 깨워. 그리고 그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한번 해봐. 그래서 꿈이 깨지고 너를 좌절시키더라도 걱정하지는 마. 최소한 너의 공포와 불안의 실체는 더 이상 너의 전경에서 배회하지 않고 저 멀리 생각의 후미진 곳으로 가버릴 테니까."

2009년 1월 26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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