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2009년 신년강좌 2월 9일 : 조한혜정에게 우석훈이 '문화적 상상력'을 묻다.


"상상력은 어떻게 해서 생기나"


최근 본 영화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도쿄 소나타>. 아버지가 실직을 하자 이내 붕괴되어 버리는 가족을 묘사하고 있다. 아버지가 실직을 하면 아버지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보호와 위로를 받아 힘을 얻는 것,이 가족을 형성하는 본래의 의미 아니었을까. 아빠가 실직했다고 엄마, 아빠, 형, 동생 이라는 관계가 그렇게 쉽게 끊어질거면 그들은 애초에 '가족'이었을까?

가족에서 공동체라는 의미를 제거시킨 놈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지. 강좌를 들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본 영화인 탓인지 가족에서 '공동체'라는 것의 의미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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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뛰면 먹히고 마는 정글. 소수의 육식 맹수가 다수의 초식을 사육하고 통제하는 이 정글 세상에서 부모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식을 명문대와 좋은 직장을 보내 맹수로 키우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자식은 짧은 삶의 경험에서 세상의 본질은 파악하지 못하고 그렇게 배운터라 잠재된 초식의 본능을 억누르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순응하고 받아 들인다. 여기서 육식은 기득권을 획득하는 직업, 초식은 문화, 예술 등 그 외 다양한 직업을 말한다고 보아도 좋다.

세상의 정글화를 마치 세상의 이치인냥 당연시 받아 들이게 만들고, 그래서 가족의 의미도 돌봄이 아니라 맹수 훈련의 장으로 변질시켜 사교육 시장을 무섭게 키우고, 맹수로 키울 자신이 없는 이들은 아예 자식 낳기를 포기해 버린채 가족 형성 자체를 기피하게 되는 현실. 조한혜정 교수는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라는 것의 정체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전 세계의 정글화, 그것은 자본의 글로벌화를 통해 간단하게 이루어 낼 수 있다. IMF 의 역할이기도 하다. 한 국가의 공공영역 (나는 이것을 가족 공동체의 확장적 의미로 이해한다) 을 수익성과 효율성의 개념의 민영화라는 논리로 붕괴시키고, 그 틈으로 자기계발과 생존경쟁의 가치를 주입 전파시킨다.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부문에 걸쳐서. 인간은 존재가 아니라 도구로 전락하고 맹수들에게 초식동물은 함께 살아가는 초원의 식구가 아닌 그저 맛나게 잡아 먹을 식량일 뿐, 이라는 논리를 역설한다.

이런 정글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철저하게 맹수 훈련에만 집중되어지게 되고 여성의 파워는 점점 약해지고 부부라는 관계는 사랑이 아닌 맹수를 계속 키우고 싶은 기득권층의 재생산을 위한 일종의 협력관계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글로벌 경쟁판에서의 3대 필수 조건. "할아버지 재력, 엄마 정보력, 아이 체력" 는 그래서 나온 말인듯 하다. 결국 아이들의 언어도 협동과 돌봄의 언어가 아닌 경계와 경쟁의 언어로 변질한다. 그래서일까 여자 아이들도 욕이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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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대처와 로날드 레이건, IMF, 세계은행, 시카고 학파 등은 정말 끔찍한 신자유주의의 첨병들이다. 이들의 주장과 요구는 기본적으로 '사냥꾼 자본주의'에서 출발한다고 조한교수는 이야기한다. 내가 살려면 남을 죽여야 한다는 죽음의 논리. 똑똑한 사냥꾼 클럽의 출현. 이것에 방어하기 위해서 인문학자가 경제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에 적극 공감을 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은 대단히 유기적이며 상호작용할때만 굴러간다. 우석훈 박사는 한국 소녀 13세가 커피에 중독되기 시작하는 나이, 용돈으로 기초화장품을 사는 나이라고 했다. 순간 스쳐가는 생각들. 학교가 아닌 학원을 전전하는 십대들에게 몸짱, 얼짱 예쁜 십대 모델들을 내세워 열라 마케팅하는 저가 화장품들, 그들을 외모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십대 연예인을 쏟아내는 사업자들, 그리고 이들을 늘 아이들 곁에 머무르도록 하는 TV 와 인터넷 미디어들의 일종의 암묵적 합의가 아이들을 망쳐 가는구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초식의 본능을 억제하고 맹수로 성장하기 위해 갖은 스트레스를 다 받고 견뎌야 아이들. 이들에게서 어떤 창의성과 상상력을 기대할 수 있을지 생각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문화의 소비자로서 철저하게 훈육받으면서도 말로는 창의성이 중요하다 세뇌받는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는 더욱 깊어가고 더더욱 소비에 탐닉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이명박은 싫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돈케어라는 좀 깨는 논리를 가진 20대들을 꽤 접한다.

이에 대한 방어책으로 우석훈 박사와 조한혜정 교수가 협동으로 홍보하고 있다는 문화생산자 (Cultural Animator) 라는 개념을 나는 옵션 플러그인이 아닌 디폴트 장착 모듈이 될 것을 블로그에다가 희망하기도 한다. 문화의 소비라는 것은 사치문화 조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문화는 '생산' 개념과 결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 '생산'이다. 소비 조장의 신천지 TV 를 끄고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꿈을 그려 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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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란 '공부'한다고 해서 얻어 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얘들아, 창의성을 키워라" 한다고 해서 갑자기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문화란 생산이야" 이러한 의식을 사회 전반, 아이들의 의식으로 침투시키는 것이 방법의 하나일 수도 있다.

그렇게 뛰어나다고는 볼 수 없지만 개성있는 한 락 밴드. 3천명만 이들을 따라다닌다면 먹고 산다고 할 때, 결국 그 3천명을 찾아 주는 일을 정부나 문화계는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블로그라는 플랫폼이 그런 기능을 하기를 바란다. 문화를 생산으로 이해하는 아이들이라면 이들은 주입식 소비가 아닌 적극적 생산의 개념으로 그 밴드를 지지하게 될테니까.

일본의 각 분야의 "오타쿠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 그 다양하고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의 세계적인 컨텐츠들이 나올 수 있다는 밑거름이 된다는 현실... 거대 기업이 "우리 상상력을 발휘해서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어 보자" 하고 돈 쳐들여도 그런게 나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지만 문화는 대기업이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소비 즉 사치조장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일 뿐이겠지.

상상력은 어떻게 해서 생기냐구? 책상에 앉아 재미없는 공부만 하지 말고, 즉 맹수가 되기를 포기하고 자신 안에 억누르고 있던 초식 본능의 오타쿠를 끄집어 내던가, 락 콘서트 장을 죽어라 쫓아 다니며 소리 치던가, 극장가서 사는 헐리우드 키즈가 되던가, 잉베이를 넘을거야 목숨걸고 기타 연습하던가, 나만의 위대한 걸작의 꿈을 가지고 끊임없이 습작을 써보던가... 뭐라도 하라 이거지, 그것이 공부가 아니기만 하다면.


2009년 2월 24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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