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의 경제를 일으키려고 할 때 '부품의 규격화'라는 것이 중요하다. 애니콜이 기종마다 전용 부품을 사용한다면 부품 비용을 절감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채산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조립 라인에서 '부품의 규격화 및 공유화' 를 이루어 내야만 한다. 이렇게 해야 소위 말하는 글로벌 기업의 조건이기도 한 원가의 절감, 다양한 기종의 생산, 제품의 가격 파괴가 가능하다.

프로그래밍을 할 때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된다. 전체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 내에서의 일련의 절차 (Procedure) 를 만들고, 순차적으로 처리하면서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호출하여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서브 모듈을 만드는 방식이 있다. 위 예에서 보면 전자에 해당한다. 그리고 부품에 해당하는 모듈은 전체 구조 및 절차에 종속 (Dependent) 된다. 전용 모듈이다보니 비용은 많이 들지만 아무래도 가장 원하는 출력을 내준다. 이런 프로그래밍을 절차지향 (Procedural-Oriented) 또는 구조화 (Structured) 프로그래밍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C 언어 같은 것들.

이 절차지향 다음에 등장한 것이 객체지향 (Object-Oriented) 언어다.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은 위 예에서 후자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는 어떤 절차에 종속되는 서브 모듈이기보다는 어떤 특별한 기능을 하는 독립적인 객체 모듈로서 어떤 전체의 절차나 구조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Independent) 이어서 모듈의 공유화가 가능하다. 따라서 모듈의 관리와 업그레이드도 더 쉽다. 물론 모듈은 계속해서 재사용된다. 자바나 C++ 언어 같은 것들.

객체 (Object) 는 보통 그 속성과 기능을 정의하여 만드는데, 이때 중요한 개념은 객체는 서로 메세지를 주고 받으며 '상호작용'을 한다는 데에 있다. '상호작용'이다. 요즘 유행하는 단어 인터액티브, 양방향 뭐 그런거다. 객체를 이용하는 입장에서는 그 내부구조는 관심거리가 아니다. 이것좀 해줘, Input 만 주고 원하는 Output 만 받으면 되는 상호작용만 알면 된다. 그런데 절차지향에서는 전체 절차에 종속된 서브 모듈이기 때문에 그 내부 구조도 간섭을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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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를 이해할 때 나는 보통 절차지향과 객체지향의 개념을 적용시키곤 한다. 언뜻 드는 생각으로는 국가간 무역을 떠올려 객체지향이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나는 지금의 세계 경제를 절차지향으로 짜여져 있다고 보는 편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아래 그림 같다는 거다.


이것을 어떤 절차지향 프로그램이라고 하고 C ~ F 는 서브 모듈이라고 하자. 각자 뭔가를 한다. main() 즉 A 가 돌아간다. 그러면 가장 그 메인 모듈 안에 있는 어떤 하나의 절차 모듈 B 가 돌아간다. B 는 돌아가면서 C ~ F 모듈을 돌린다. 만약에 세계 경제가 이러한 구조라 한다면...

이렇게 보면 된다. C ~ F 들은 국가들이고 A 와 B 는 국제 조약이나 기구 들이다. 브레튼 우즈 협정, IMF, IBRD, WTO, OECD, UN ... 뭐 이런 것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IBRD) 은 위 그림과 대단히 유사한 속성을 보인다. 외채에 대한 조건으로 개도국으로 하여금 톱니를 깍아 만들게 하고 그 톱니는 세계 경제 질서 톱니에 꽉 들어 맞어야 한다. 깍여져 나가는 것에 해당하는 것들은 저임금 경제나 노동시장의 유연화의 강요 및 한 국가의 정책 담보, 복지예산 삭감 등등... 그리고는 무조건 A 와 B 돌아가는 데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A 를 돌리고 있는 실체는 누구인가 하는 거다. 정확하게 기계적인 시장 논리만 적용하는 신의 손?  사채업자?  거대 금융자본?  몇 사람?


우리가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실체가 바로 이 ? 인데 이들은 많은 경제 이데올로기의 왜곡을 유도 및 조장하고 실제로는 자유 무역이 아닌 것을 자유 무역으로 포장해 왔다고 한다. 거대 자본을 확보하고 '외채'라는 무기를 통해서 세계를 휘저으며 모든 나라의 정부를 압박하고 채무국으로 만든 다음 위 그림의 C ~ F 처럼 ? 에 의해 통제되는 세계 질서에 종속을 시켜 왔다. <시대정신>이라는 다큐도 이런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C, D, E, F 를 모두 다 다른 속성과 기능을 하는 독립된 객체로서 바라 본다면 다른 세계 경제 논리가 만들어 진다. 객체지향 세계경제. 모든 국가는 상호작용을 한다. 상대 국가의 내부 경제와 정책에 간섭하지 않고 원하는 것만을 주고 얻어 간다.


여전히 모든 나라들이 톱니를 깍긴 하지만 이 경우에는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거래를 위한 것이므로 종속의 개념이 포함되지 않는다. 적어도 정책담보도 없고 계약이 법 위에 군림하기가 어렵다. 순수하게 비교우위론에 의해 무역이 발생할 수도 있고, 양자간 거래이므로 구속력도 상대적으로 적다. 이런 경제는 국가 또는 정부간 신뢰에 기반한다. FTA 라는 것이 아마 이 범주에 들어가야 하는 것일 텐데, 유독 한미FTA 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은 이런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절차지향 경제의 하나의 부속으로서만 들어가는 경향이 지나치게 세기 때문이다.

어쨌건 보통 이런 것들이 모여 하나의 경제 공동체를 이룰 수도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렇게 객체지향에서 절차지향 쪽으로 한 단계 나아간 형태. 여기서 B 도 객체라는 점이 중요하다. 전체 모듈이 아니다. 대표적으로는 EU 나 NAFTA 같은 것들. 보통 이런 것들을 경제블록이라고 한다.


나는 객체지향을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경제에 있어서도. 경제 주권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절차지향은 강대국이 아니라면 너무나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세계 질서로의 편입이라는 것은 메인 모듈을 돌리는 강자와 서브 모듈을 돌리는 약자의 주종 관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브 모듈은 자체 관리나 업그레이드가 대단히 어렵고 혼자서는 뭘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세계화라는 것을 나는 객체지향을 뒤엎고 절차지향으로 세계 경제를 재편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당연히 뭐 그리 반기지도 않는다.


2009년 1월 7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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