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

OLD POSTS/그외 2014. 2. 3. 00:58


어떤 유명 배우가 막 개봉한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영화 너무 재미없다 어쩌구..." 라고 자기 미니홈피에 글을 남겼더니 사람들이 그 글에 선동당해 "이 영화 너무 재미없대 난 안볼래 어쩌구..." 너도나도 영화를 안보더라. 그래서 영화제작자는 약 100억은 벌어 들여야 하는 영화였는데 10억 밖에 거두지 못해 90억의 손해를 보았다고 징징대며 그 배우에게 물어내라고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다.

민사소송이라면 원고인 영화제작자는 90억원의 금전적 피해를 비롯한 각종 유무형의 피해에 대한 보상을 원하는 것이므로 자신이 입었다고 주장하는 그 피해에 대해 직접 증거를 제시해야 하고, 형사소송이라면 원고가 그 배우를 처벌하고 범죄자로 낙인찍고 싶다는 것이므로 검찰이 그 미니홈피 글과 90억 피해의 관련성을 아주 정확하게 입증을 해야 한다. 애꿎은 사람 잡는거면 골치 아파지니까.

검찰이건 제작자건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유명 배우의 "영화 재미없다" 라는 미니홈피 글 하나가 과연 100억 충분히 벌 수 있을 만큼 재미있는 영화를 말아 먹을 수 있는지 증명해야 한다는 거다. 그 답을 알면 당장 영화사업해야 한다. 다들 그거 몰라서 안달인데. 뭐 고민은 한번 해볼 만한 문제이나 그러할 가능성을 점치는 것 자체가 내가 보기에는 뜬구름 잡는 발상이다. 유명 배우 한사람의 발언 때문에 재미있는 영화를 말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이 없다면 우리나라 영화시장은 궤멸되어도 이미 한참 전에 궤멸되어 없어져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재미있어"는 별로 없이 "재미없어" 라는 글만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면 그 때는 (제작자는 혼자 깔깔대고 볼지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관객들에게는 정말로 재미가 없는 것이므로 애당초 피해 보상 또는 관련자 처벌을 하라고 소송을 제기한 그 영화제작자만 결국 공인 또라이가 될 수 밖에는 없다. 재미없는 것을 재미없다고 의견을 표현한 것은 범죄라는 주장인데 어떤 멍청한 제작자가 이런 소송을 걸겠나. "이 영화가 재미있건 없건 닥치고 있어 이거뜨라, 피곤하게 살고 싶으면 계속 나불대던지..." 누가 이러겠느냐 말이다.

마케팅에 종사하건 제작자건 사업가건 평론가건 교수건 뭐 간에 첫번째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 이거다. "사람들은 재미 있으면 보고 재미 없으면 안본다. 재미 있으면 소문나고 재미 없으면 소문 안난다" 단, 황당해서 "대체 그게 뭐야" 라고 소문이 나서 보게 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물론 재미의 기준이라는 것도 전국민 대상인지 아니면 특정 매니아 대상인지 그 범위 또한 대단히 다양하다. 마찬가지 논리로 사람들은 좋은 물건이라 판단되면 사고 나쁜 물건이라 판단되면 안산다.

유명 배우 한 사람이 "이 영화 재미없어" 라고 했다고 해서 나에게 재미있을 영화가 갑자기 재미없어진다거나 아니면 재미없을 영화가 갑자기 재미있어진다거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보통 사람들은 단순히 유명 배우 한 사람의 발언 때문에 뭔가를 구매하거나 소비하기로 얼마든지 결정한다,라는 발상이므로 비상식에 가깝다. 아무데나 선동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는게 아니다.


ooo


이번에는 황당한 상상을 한번 해보려고 한다. M 사의 패스트푸드를 미워하는 A 가 있다. A 는 점심시간 M 을 찾아가 대형햄버거를 주문한다. 음식이 나오자 미리 준비해 간 10일 정도 묵힌 정체불명의 똥을 쇠고기 패티에 교묘하게 묻힌다. A 는 용의주도하게도 CCTV 와 목격자로부터 안전한 위치를 미리 파악해 놓고 있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한 입 베어 문다. 소리를 지른다. "윽, 웩웩웩 꽥꽥꽥..." 바로 사진을 찍고 M 사 지점장과 한바탕 개난리를 친다.

열이 받을대로 받아 집에 돌아 온 A 는 똥 묻은 고기 패티 사진을 블로그에 올린 다음 "M 사의 햄버거 쇠고기에는 똥이 들어 있더라. 너네 햄버거를 먹느니 청산가리 입에 털어 넣는 것이 낫겠다. M 사 이 개자식들아..." 라는 글을 남긴다. 참고로 이런 종류의 글은 "M 사 햄버거는 정말 맛대가리가 없어..." 라는 글을 남기는 것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이 영화 정말 재미없어" 는 의견이지만 "똥이 들어 있더라" 의견이 아니니까.

A 의 블로그는 삽시간에 인터넷에 쫙 퍼진다. 각종 언론과 미디어가 난리가 났고 여기저기서 음식 위생 관련 토론이 벌어지고 소비자들은 M 사 불매 운동을 벌이고 나라 전체가 난리가 난다. 거의 한달 내내 이 소동이 지속된다. M 사는 억울하고 분노한 여론에 일일이 대응하기가 버겁다. 지친다. 그 와중에 여기저기 문 닫는 지점이 속출한다. 피해가 장난이 아니다.

자, M 사는 A 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까?  "저 놈의 거짓말 때문에 우리 망하게 생겼으니 피해 보상은 물론 넌 콩밥 좀 먹어야 해" 라며 민사 및 형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느냐, 하는 거다. 결론은 "쉽지 않다" 다.

A 가 평소 "나는 M 사를 싫어해" 라고 주변 인물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아무도 A 가 똥을 묻혔을 것이라고는 의심하기가 어렵다. 목격자도 없고 국과수에 보내 정체불명의 똥을 분석하라 하기도 그렇고 설령 의심한다 하더라도 A 가 묻혔다는 것을 입증해 내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햄버거 패티의 전 제조 과정과 고기 굽고 햄버거 만드는 과정에서 똥같은 이물질이 패티 속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것이 덜 피곤하기 때문이다.

피해 보상을 위한 민사 소송이면 M 사가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마땅한 증거도 없이 덤볐다가 역으로 명예훼손당할지도 모르고, 처벌을 위한 형사 소송이면 검찰이 수사를 해야 하는데 확실한 증거없이 함부로 기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고한 사람에게 콩밥을 먹이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M 사는 재빨리 소비자들에게 무조건 사죄하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 라고 열라 마케팅하고 이벤트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최선이다. 여론에 등돌리고 성공하는 기업 봤나? 그래서 블로거가 파워 있는 미디어일 수 있다는 거다. 잘 활용해보자. 개인적으로는 싫은 기업 불매 운동 하기에 아주 좋다 여긴다. 참고로 약간의 억지가 있을 수 있으니 감안하시기를.

***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자들이 김민선과 PD수첩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김민선이 미니홈피에 "광우병 쇠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 넣겠다" 라는 글을 남겨서 사람들이 선동당해 정말로 미국산 쇠고기를 안사먹어 영업상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 황당한 논리다. 그것이 논리적으로 분석되고 증명이 되는 문제던가. 개인의 의견과 먹거리 매출 감소의 연관성이. 국민들은 일개 배우의 의견에 선동당하는 바보, 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김민선이라는 배우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의견을 피력한 것에 불과하다. "재미없다" "맛없다" "그걸 먹느니 차라리 농약을 먹겠다" 는 모두 의견일 뿐이라는거다. 따라서 민사 소송이면 쇠고기 수입업자는 영업상 피해와 그 의견이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입증 자료를 제시해야 하고, 형사 소송이면 검찰이 수사를 통해 김민선을 잡아 넣도록 관련 확증을 만들어 내야 한다. 가능할까. 심증과 일방의 억지 주장일 뿐인데. 앞서 언급했지만 의도적으로 똥을 묻힌 다음 난리를 쳐도 소송은 쉽지 않다.

김민선은 그저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했을 뿐이다. 의견과 사실은 그 판단 기준이 참으로 다르다. "나쁜 놈" 과 "뇌물 먹은 놈" 과의 차이라고나 할까. 김민선은 "쇠고기 수입업자 개새끼들" 이라고 한 것도 아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해버린 "광우병 위험 물질까지 모두 포함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재개" 에 대해 "그것은 먹지 못할 것" 이라는 생각을 밝힌 거다. 만약 사업가 입장에서 우려가 되었다면 MB식 마인드로 그냥 업종을 바꾸면 될 일이다.

의견이란 것이 원래 그렇다. 따지고 보면 촛불집회도 의견의 표현이다. 안그래도 정부가 여론을 무시하고 독재자 맘대로 식이어서 별로였는데 위험한 먹거리를 몰래 전면 수입 재개를 하니 정부에 대한 전국민적인 반감의 표현을 안할 수가 없고, 또 수용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고 기만을 시도하니 저항감을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민선의 미니홈피 글은 그 수천 수만개의 표현 중 아주 작은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수입업자 스스로도 관련 입증 자료를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검찰도 이 의견과 쇠고기 매출과의 관련성을 정입증할 증거를 찾기는 쉽지 않을거다. 영화 재미없다고 블로그에 글 남겼는데 극장 관객이 뚝 떨어져 영화제작사가 너 때문에 피해가 막심하니 네가 피해 보상하라는 논리니까. 그럼에도 수입업자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저러는 이유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여론 입막음이라는 거지. 즉 닥치고 먹어 이거뜨라, 피곤하게 살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나불대던지"

2009년 8월 12일 작성


Posted by bopboy
TAG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