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한줄기 새어 들어오지 않는 칠흑같이 어둡고 바람소리 한 획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서재 안에서 나는 책상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음악이 유발하는 인간의 감정은 그 음악이 통제하고 있는 것일까?... 으음..."

그리고 "똑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누구지, 이 늦은 시간에?  다시 한번 "똑똑똑, 똑~". 누구야? 지금이 몇시인데... 혹시 밤의 정령? 나를 데려가기 위해 온 저승사자? 아니면 과일 한접시를 들고 문 맞은 편에 서 있는 엄마?  갑자기 휙휙 바람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하면서 오싹해진다.

순간 깊이 생각하고 있던 그 문제에 대해 한가지 힌트를 얻었다. 첫번째 노크로 나는 당황했고, 두번째 노크로 나는 두려워졌다. 이어지는 "똑똑똑,똑~ 똑똑똑,똑~ 똑똑똑,똑~" 나는 초조해졌다. 문을 열수가 없다. 도대체 문 건너편에는 누가 서 있는 거지?  그래 이 일련의 노크가 어떤 음악이었다면 그 음악이 유발하는 나의 감정은 그 음악의 통제 하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감히 문을 열지도 못하고 점점 더 몸을 움츠린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최고의 명연으로 꼽히는 카를로스 클라이버 (Carlos Kleiber) 와 비엔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그 1악장을 들으며 난 늘 이런 상상에 빠진다. 나의 운명을 관장하는 신이 나의 세계로 들어오는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한다. "똑똑똑, 똑~" 나는 일순간 당황한다. 두번째 "똑똑똑, 똑~" 나는 두려워지고, 세번째 "똑똑똑, 똑~" 나는 도망간다. 나의 귓가를 계속 울리는 그 소리, 운명이라는 침입자의 노크 소리,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노크 소리는 계속 나를 뒤쫓아 온다.

1악장의 울림은 내 운명을 짊어진 침입자를 맞이하는 나의 감정 상태를 그려내기도 한다. 아, 이 침입자는 나의 감정을 통제하고 있다. 그 울림이 통제하는 혼돈의 상태에서 내가 느끼는 두려움과 걱정, 슬픔, 기쁨, 안도감의 변화를 통해 음악과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1악장 노크의 도입부다. "솔솔솔 미b", 운명의 노크 "똑똑똑, 똑" 한음 내려 "파파파 레" 다소 신경질적 감정변화가 실린 듯한 "똑똑똑, 똑" . 이어서 각 관악, 현악, 타악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처음부터 끝까지 이 '두 높이의 음만 4번'의 울림으로서 사정없이 문을 부수려는 듯이 노크의 난타를 해대며 귓가를 때리며 나를 밀어붙인다.

오로지 두 음만으로 만들어진 이 노크의 4연타음 모티브는 추진력을 달고 반복된다. 이 모티브를 벽돌로 생각해도 좋다. 감정의 단편들. 벽돌이 쌓이고 쌓이고 쌓여 웅장하고 위대한 하나의 건축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교향곡'의 공간이 세워진다. 그리고 감정의 단편들도 쌓이고 쌓이고 쌓여 인간의 복잡하고 가장 위대한 감정의 세계가 그 공간 안에 만들어진다. 단순한 벽돌이 아니었으면, 감정의 단편이 아니었다면 축조의 위대함은 생겨나지 않는다. 이 곡의 긴장감과 역동적이며 유연함으로 구성되는 음 축조의 미학은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손에서 가장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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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바이올린, 2nd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베이스,의 향연이 만들어 내는 도입부의 노크 모티브 벽돌 및 감정의 파편들로 세워지는 위대한 건축물 축조 과정은 가히 경이롭다 할만하다.

참고로 이 교향곡 5번 C 마이너의 이 1악장은 4악장에 이르러서는 C 메이저로 바뀌며 운명의 노크에 대한 두려움의 감정을 넘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로 전환된다. 축조의 미학으로 쌓아올린 음들의 향연이자, 가장 완벽히 절제된 형식미학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의 떨림과 한계 극복의 의지, 구조로 통제되는 감정, 이것이 고전주의이며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교향곡, Beethoven 의 <Symphony No.5 in c minor (Schicksal) Op.67> 이다. 교향곡의 처음이자 끝이다.


2008년 11월 23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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