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탈리아 기타리스트 Alex Masi 의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기타로만 연주되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 3악장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 음반에는 비슷한 연주 스타일의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 1악장 변주도 첫트랙으로 실려 있다. 리스트의 필사본을 참조했다면서.

아울러 독일 메탈밴드 At Vance 의 2001년 3rd 앨범 <Dragonchaser> 에도 <운명> 교향곡 1악장 연주가 실려 있는데 완성도가 꽤 높다. 특히 기타 사운드를 Left, Center, Right 3 채널로 구분해서 (아마도 오버더빙을 통해) 원곡의 1st 바이올린, 2nd 바이올린, 비올라의 역할을 재현해 내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 교향곡의 축조 미학을 살리고 있다. 내 생각에는 꽤 참조할만한 이상적인 메탈로의 변주 스타일이다.



At Vance 는 전반적으로 관현악으로 연주되는 원곡의 비장함과 고전주의 형식상의 미학을 가능한 살리려고 한 것 같아 나중에 혹시나 밴드 음악으로서 베토벤의 <운명>을 해석하고자 하는 밴드가 모델로 삼을만 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Alex Masi 의 연주는 기타만 사용하는 나홀로 버전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메인 선율를 축으로 해서 나머지 서포트 트랙을 오버더빙하는 식이 될 것 같다. 감정적으로 매우 절제된 하나의 모노톤으로 연주되는 만큼 At Vance 의 빠방한 연주에서 느껴지는 박진감과 역동성은 좀 부족하지만 생각보다는 고풍스런 느낌을 주고 조용하고 어두운 방에서 홀로 들으면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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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progress 를 멈추고 regress 하기 시작한 시점을 나는 (아마 많은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할 듯 한데) 베토벤의 죽음 이후라고 보는 편이다. 그 이후는 세상에 뭘 내놓아도 별로였다. 서양에서 계몽주의가 신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킬 때 음악도 인간을 위한 예술로 해방되는 것 같았지만 실은 베토벤에서 음악은 끝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래서 그런가, 난 인상주의와 신고전주의 전까지의 기교 중심의 낭만주의 음악을 그다지 즐기지는 않는 편이다.)

그 이후?  음악이 과연 인간의 무엇을 위해 쓰여지고 연주되기 시작했는지 난 이제 잘 모르겠다. 이전글에서 나는 인간이 과연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를 고민했는데 그렇다면 음악도 결국은 인간의 선을 위해 봉사한 것인지 악을 위해 봉사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거다.

어떤 특정 시대의 음악이 더 훌륭했다,를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믿지도 않고. 그러나 낭만주의가 고전주의를 밀어낸 것, 이것은 어쩌면 혹시 악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요즘은 한다. 음악을 regress 시켜야만 되는 어떤 계(界)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 어쨌건 과학-기술의 발달은 기계의 힘으로 결국은 음악을 엄청나게 퇴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으니까.

확실한 것은 베토벤 이후 음악은 regress 했다. 지금 만들어지는 것들? 대부분이 차마 이 두 귀로 들어줄 수가 없다. 이것은 확실하다. 난 그래서 <운명>을 들을 때마다 음악이라는 예술의 운명에 대해 생각한다. 기타와 메탈 사운드로 연주되는 <운명>을 들을 때면 더더욱 그렇다. 음악 스스로는 음악의 운명을 관장하는 신을 어떻게 맞고 있을까?

2008년 11월 24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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