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의 노래를 듣고 계십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노래를 자신의 소설 제목으로 사용했는데요. 1960년대 산업화와 대중문화 속에서 젊은이들의 방황을 이 노래로 이미지화시켜 상징적으로 나타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의 원제이기도 한 이 노래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2009년 2월 첫날 방송된 430회 <도전 골든벨> 48번째 문제였다. 답은 <Norweian Wood 노르웨이의 숲>. 최후의 1인으로 남은 소년은 음악이 흘러 나오자 바로 뭔가를 적었는데, 이어서 아나운서가 문제를 낭독하자 쓴 것을 지우고는 고민하다가 노르웨이까지만 적었다. 도전은 멈췄다.

이 최후의 1인이 고민하는 사이 화면은 잠깐 학생들의 반응을 보여 주었는데 어떤 여학생 둘의 멘트가 잡혔다. 매우 흥미로운 반응이다. 그 두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걸 어떻게 알아?"
하긴, 20 여년 전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40 여년 전에 나온 비틀즈의 음반 <Rubber Soul> 에 실려있는 <노르웨이의 숲> 를 지금의 아이들이 어떻게 알겠어...

"비틀즈? 무라카미 하루키? 들어는 본거 같아. 그런데 노르웨이의 숲? 이런 걸 어떻게 알아?" 난 이것이 지금 대부분의 아이들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어떻게 알겠어 이미 나온지 몇 십년이 지난 노래와 소설들인데.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아무도 그런 것이 있었다고 알려 주지도 않는데.

참조할만한 <Wired> 의 좀 된 좀 긴 칼럼 하나.

지금 음반/음원 산업계도 돈벌고 싶으면 '저작권 보호'를 외칠 때가 아닌 거 같은데. 최신 히트곡과 신곡 몇 개만으로 이 산업이 유지가 된다고 보나... FM 라디오가 안되면 인터넷에서라도 어떻게든 무너져 버린 "접근 인프라" 부터 만들어 줄 생각은 안하고 거꾸로 접근에 대한 원천적인 차단을 시켜버리면 뭘 어쩌자고... 대형 메이저 음반사와 수많은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의 단타 위주의 스타산업이라면 몰라도.

음악이 한번 듣고 버리는 상품인가? 사업 관점에서 중요한 건 지속적인 노출일텐데...

2009년 2월 2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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