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의 아이디어가 각 가정의 오디오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져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하나의 진정한 음악으로 완성되기까지의 그 모든 과정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이거다.

아무리 천재 작곡가라 하더라도 각 악기의 음역대와 특성, 그리고 리듬, 선율, 화성이라는 요소를 버무려 완벽한 하나의 악곡을 만들어 놓고 자신의 상상 속에 가둬 놓기만 한다면 우리들은 그가 천재인지 그 음악이 마스터피스가 될지 알 길이 없다.

작곡가가 자신의 상상을 현실 공간의 물리학적 울림으로 구체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악곡 또는 아이디어의 요소들을 연주자와 공유해야만 한다. 악보를 그리건, 선율을 흥얼흥얼거리건, 직접 연주를 들려주건...

모든 연주자가 한번 듣고 바로 따라 연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아마도 악보의 형태가 가장 현실적일거다. 지휘자가 사용할 교향곡 악보라면 모든 관현악 악기들의 악보를 모아 놓은 총보여야 할 것이고, 개개의 연주자들은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의 악보면 될거다.

그래서 지휘자는 관현악단을 모아 놓고 관현악 전체 울림의 조화와 균형을 위해서 각 파트별로 강약, 속도, 크기 등을 정해주고 지휘를 한다. 연주자들도 그 지휘자의 요구에 맞추어 최상의 기량으로 그리고 자신 만의 개성을 살려 연주를 한다.

음악 제작 및 완성의 과정이 여기까지라면 우리는 콘서트홀에 직접 갈 때만 들을 수 있다. 즉, 작곡→악보→연주 (→감상) 의 과정이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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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간은 가만히 있지 않고 자꾸 뭔가를 발명하고 발견하더라. 미디어와 녹음 기술 말이다. 그래서 앞에서 이야기한 작곡→악보→연주 과정에서 연주 다음에 '녹음→음원→유통' 이라는 새로운 과정이 추가된다. 즉 연주자의 연주를 레코딩해서 음원을 생성하여 LP 에 CD 에 담는 포스트 프로덕션과 미디어에 담아 널리 퍼뜨리는 유통 산업이 붙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CD 로 LP 로 집에서도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작곡→악보→연주 의 과정에서는 연주자와 지휘자가 디렉터라면, 녹음→음원→유통 의 과정에서는 오디오 엔지니어나 사업자가 디렉터가 된다. 그리고 작곡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에 참여하며 총괄을 담당하는 프로듀서가 생기기도 한다.

자 이제 우리는 작곡→악보→연주→녹음→음원→유통 (→감상) 이라는 이 긴 과정을 통해서 우리집 안으로 음원이 배달되고 하이파이로 들으면서 감동도 하고 눈물도 흘리게 된다. 사실 여전히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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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세상은 정말로 끈임없이 변화하더라. 남의 이야기로만 취급했던 전자 계산기가 위의 전 과정을 간단하게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엄청난 도구로 성장하게 되고 온라인이라는 초간단 초고속 유통망까지 생겨나 버린거다. 작곡부터 유통까지 누구나 관심만 가지면 혼자서도 북치고 장구치고 말아먹는 컴퓨터 음악의 시대가 열렸다.

음향학과 사운드체이서 관점에서 연구되고 연주되던 테레민이나 무그의 아날로그 신서사이저 이후 다양한 방식의 수많은 디지털 신서사이저가 개발되고 악기의 소리를 흉내내는 음원 모듈이 만들어지고 아예 실제 악기소리 하나하나를 녹음해서 메모리에 넣고 필요할 때 꺼내쓰는 샘플러가 개발되고, 각각 수많은 회사들이 생겨난다.

제각각이던 그 수많은 장비들의 제어 방식의 통일을 위해서 Roland 라는 회사를 중심으로 컴퓨터 음악의 표준으로 미디 (MIDI) 라는 통신 규약이 만들어지고, 전 과정이 컴퓨터 안에서 구현되는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아울러 컴퓨터의 속도 또한 비약적으로 빨라지고 크기도 작아지고 편해지고, 대중음악은 삽시간에 이 모든 과정을 한 방에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 음악으로 편입되고 고전음악 종사자는 여전히 제 갈 길을 간다. 그래서인지 대중음악에서는 오케스트레이션의 고급스러움이 많이 딸리는 경향을 보인다.

인터넷 또한 사업자보다는 이용자의 철학의 가치를 반영하면서 초고속으로 성장하고 전 세계를 하나로 묶게 되며 음원 유통에도 혁명이 일어난다. 수많은 음반 회사가 저작권을 들먹이며 몰락의 속도를 더디게 하면서 새로운 유통 모델을 찾는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용자에게 모든 권한이 넘어 올지 모를 일이다.

이제 누구나 작곡→악보→연주→녹음→음원→유통 의 시대다. (때에 따라 작곡은 포함 안될 수도 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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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악보→연주→녹음→음원→유통 과정의 총괄 프로듀서는 이제는 전문 프로듀서일 필요도 없고, 그 감독은 지휘자나 연주자일 필요도 없고, 오디오 엔지니어나 음반 사업자일 필요도 없다. 그 과정은 그야말로 '누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시대가 지금이다.

'누구나'의 가치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작곡→악보→연주→녹음 에 있어서의 '질적하락'의 위험성을 내포하지만 음원→유통 에 있어서의 '소수집중'으로 인한 지나친 상업성의 유통 폐해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그 부작용과 그 긍정의 대결에서 부작용이 더 커 보이는 것이 사실인 듯 하다. 전자의 질적인 가치를 유지하면서 후자의 장점을 살려야 하는 숙제가 생긴거다.

테크놀러지가 일부 개발자나 사업자의 손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의 삶 속으로 파고 들어 위에서 말한 장점의 가치를 실현할 때 비로소 '테크널리지는 진보했다'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현재까지는 긍정의 가치가 사라지고 심하게 훼손되고 있는 편이라 실은 일단은 경계를 하고 볼 일이다.

블로그라는 툴과도 비슷한 개념이다. 누구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질적 가치의 유지'라는 부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값싸고 좋은 음악 툴이 개발되어 널리 유통되더라도 진지한 음악을 추구하는 이들은 외면하는데 값싼 음악들 생산하는 이들이 달라붙어 독점함에 따라 음악계는 몸살을 앓는다.

난 사람들이 블로그를 그 '진보'의 가치를 유지하는 툴로서 사용하기를 바라고, 나도 가능하다면 그러한 관점에서 앞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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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예 하나만 들고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보통 미디를 사용하여 레코딩 스튜디오를 꾸민다고 하면 <믹서 / 음원모듈 / 이펙트 / 시퀀서> 의 4 부분으로 장비를 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곡→악보 이후의 과정에 해당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 음원이 악기를, (컴퓨터와) 시퀀서와 이펙트가 연주를, 믹서가 믹싱 작업을 담당한다. 참고로 작곡과 악보는 기계가 대신 해주지는 않는다. 도와줄 뿐이지.

Propellerheads 사의 REASON 은 이 4 가지를 한꺼번에 그리고 직관적으로 구현한 소프트웨어다. 그래서 크게 4 부분으로 구성된다. <믹서 / 음원 / 이펙트 / 시퀀서>. 아래 이미지에서 빨간 표시 부분이 믹서, 노란 부분이 악기 음원, 파란 부분이 이펙트, 녹색부분이 시퀀서. 생긴 것도 랙 장비를 흉내내고 있고 랙장비 구성을 그대로 따왔다. 시퀀서 기능은 가장 기본적인 것만 포함하고 있어 제한적이기는 하다.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진짜 어려운 것은 작곡 그 자체이지. 음원모듈 하나하나의 사용방법이 아닌 전반적인 사용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용 방법과 시스템 구성이 실제의 녹음과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컴퓨터 음악 제작 시스템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최적의 도구라는 생각이다. 틈나는 대로 관련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참고로 아래 사운드 샘플은 리즌과 나노키라는 USB 컨트롤러 두가지만 가지고 만든 것으로 찍지 않고 직접 연주를 해서 그런지 약간 어눌하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툴을 사용하여 MR 이나 백킹 트랙을 만들고 연주 연습에 활용하면 꽤나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2009년 1월 18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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