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헤인즈 감독의 <아임 낫 데어> 에서 밥 딜런은 흑인 꼬마 우디 거스리가 되어 기타 하나 둘러 매고 병원 침대에 누워서 죽어가고 있는 자신의 우상 우디 거스리를 찾아 가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한다. 병원 누구도 그가 진정한 미국인의 정신을 노래하던 목소리의 주인공인 우디 거스리임을 모른다. (<밥딜런 자서전> 을 보면 뉴저지 모리스타운의 한 병원에 자주 찾아 갔다고 나온다.) 정말 가슴이 뜨거워지는 장면이다.

불치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기 전까지 미국 전역을 떠돌면서 가난에 허덕이는 미국인의 아픔을 기타 하나로 노래했던 인물이 우디 거스리 (Woody Guthrie) 다. 그리고 그를 이어 받은 것이 밥 딜런 (Bob Dylan) 이다. 이 장면은 아마도 밥 딜런을 통해 바치는 우디 거스리에 대한 감독의 헌정일지도 모른다.

이 장면을 더욱 강렬하게 만드는 것은 그 뒤로 흐르는 밥 딜런의 <Blind Willie Mctell> 이라는 곡이다. 원래는 1983년에 발표된 <Infidels> 라는 음반에 들어갈 곡이었는데 밥 딜런은 그 곡을 뺐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부틀렉 음반에 수록되었다. 왜 뺐는지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들이 있다. 이 곡은 루이 암스트롱이 불러서 유명해진 <St. James Infirmary> 에서 그 선율을 차용하기도 했다.


뉴올리언즈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내내 문기둥에 그려진 화살을 봤어.
"이 땅은 저주 받았어..." "저주 받은 땅이라고..."

많은 희생자들이 쓰러졌던 동부 텍사스를 떠돌았지.
아무도 블라인드 윌리엄 멕텔처럼 블루스를 부르지는 못할거야.

그들이 텐트를 걷고 있을 때 난 부엉 부엉 노래하는 올빼미 소리를 들었어.
메마른 나무들 위로 별들만이 그 노래를 들었지.

숱처럼 까만 집시 처녀들이 날개를 펴고 뽐내며 걸어도
아무도 블라인드 윌리엄 멕텔처럼 블루스를 부르지는 못할거야.

저 큰 농장이 불타는 것이 보여. 철썩하는 저 날카로운 채찍소리가 들려.
활짝 핀 매그놀리아의 향기가 나. 그리고 노예를 실은 배의 유령이 보였지.

난 그 부족의 애닲은 슬픔을 들을 수 있어. 장의사의 종소리도 들려.
아무도 블라인드 윌리엄 멕텔처럼 블루스를 부르지는 못해.

강가에는 잘 생긴 젊은 남자와 함께 있던 여인이 있어.
그는 잘 차려 입고, 그의 손에는 몰래 만든 위스키가 쥐어져 있었어.

도로 위에 하나의 쇠사슬에 노예들이 죄수처럼 묶여 있고, 그 반항아들의 외침이 들리지.
아무도 블라인드 윌리엄 멕텔처럼 블루스를 부르지는 못할거야.

천국에 계신 하느님?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천국을 원하지만,
거기에는 권력과 탐욕과 부패의 씨앗만 넘쳐 나는 것처럼 보여.

나는 성 제임스 호텔에서 창 밖을 바라 보고 있지만,
아무도 블라인드 윌리엄 멕텔처럼 블루스를 부르지는 못할거야.


아프리카 노예들을 착취했던 남부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미국의 그 부끄러운 역사를 들추어 내기도 하는 이 곡에서 밥 딜런은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를 한다. 그리고 기타는 마크 노플러가 연주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이 곡을 원테이크에 녹음했다고도 한다.

나 고딩 시절의 우상이 마크 노플러였고, 대딩이 되어서는 밥 딜런을 들었는데, 밥 딜런의 노래를 노래로 듣지 않기 시작하면서부터 밥 딜런의 음악은 뜨거워졌다. 밥 딜런의 노래를 노래로 들으면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 영국에서 가난을 노래하던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마크 노플러와 밥 딜런의 이 음악은 그야말로 뜨겁다. 이 음악을 들으면 자꾸 눈물이 난다.

난 지금 MB 가 밀어 부치는 우리나라의 모습이 그 옛날 미국의 남부같고,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체인갱에 매달려 채찍을 맞으며 노동을 하는 그림이 자꾸 그려진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 마크 노플러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나? 밥 딜런은 노래를 하고 있나?  나는 몇백번을 들어도 이것이 음악으로 들리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나의 맘 속에서도 여전히 음악인 음악이라는 것이 있나?  나에게는 사랑이고, 열정이고, 슬픔이고, 분노이고, 아픔만이 남는 거다. 그러니까 그들은 사랑을 연주하고, 열정을 연주하고, 슬픔을 노래하고, 분노를 외치고, 아픔을 삼키는 거라는 거다. 그런게 음악이다.

그리고 마크 노플러는 저항을 연주하고, 밥 딜런은 저항을 외치고 있다. 이걸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착각이다. 이건 저항이다. 반쯤은 뭔가에 막힌 듯, 그러나 그것을 뚫으려는 그의 목소리 자체가 저항이고 그것과 동행하는 기타 한대 자체가 저항이라는 거다.

부자는 돈 때문에 저항하겠지만 가난한 자는 화나고 슬퍼서 저항한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는 저항 말고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2008년 6월 6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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