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전에 이 영화 포스터와 대략의 줄거리를 접하고서 들었던 생각은, "이 아저씨 비밀경찰 치고는 너무 착하게 생겼네...."


날카롭다기보다는 선한 눈빛을 가진 이 비밀경찰이 궁금해지기도 하고 주위의 추천도 있고, 비가 꽤 쏟아지던 며칠 전 밤, CGV 의 작은 인디영화 상영관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영화 첫부분에서의 비즐러 (Ulrich Mühe)... 동독의 비밀경찰답게 포스터에서 본 것보다 좀더 차갑고 다소 냉정한 성격에 어두워 보이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비즐러가 예술에 대해, 그리고 인간에 대해 애정과 연민을 느끼게 되가는 것을 보면서 차갑다고 여겼던 그의 눈빛에서는 어느덧 따뜻함이 깊어져만 가고, 결국 그의 인간애와 용기는 저를 한참이나 눈물짓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2006년 79회 미국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은<Leben der Anderen, Das> (The Lives of Others, 2006) 은 구동독을 배경으로 한 예술인 부부의 삶을 도청하게 된 비밀경찰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사상과 충성도를 검증하기 위해 도청을 시작했던 Wiesler는 브레히트의 시, 베토벤의 소나타, 그리고 순수하고 강직한 연극인들의 체제에 대한 저항과 좌절을 함께 느끼고 아파하게 되고, 결국 단순한 관찰자의 역할을 그만 넘어서게 됩니다.



고지식하게 맡은 바 임무를 철저하게 완수하던 냉정한 인물에서부터 묵묵히 맡은 일을 하며 거리를 걷던, 그리고 잊지 못할 마지막 대사를 말하던 비즐러를 보며 Ulrich Mühe 의 연기에 그저 감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꽤 진통을 겪기는 했더라도 장벽을 허물고, 과거를 낱낱이 공개하는, 그리고 과감하게 통일을 이룬 독일이 부럽기도 했구요.

냉전시대 비밀요원들을 다룬 영화들은 스파이를 낭만적이거나 다소 냉철한 영웅적인 시각으로 묘사하는 게 대부분인데, 이 영화는 이데올로기의 충돌이나 긴박한 첩보 작전 등이 아닌 자유와 사상을 억압하는 체제가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사상 통제의 수단인 도청이 오히려 자유로운 예술의 참의미를 알게하는 수단으로 변하게 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부분이긴 했지만...
          
역경과 고군분투해야 하는 당사자들에게는 비극일 수밖에 없지만, 폭압적인 체제나, 비인륜적인 전쟁 상황, 극단적인 고난에 처한 상황에서 예술혼과 인간애가 더욱 빛을 발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나온 예술작품들이 특별히 감동적인 이유를 다시 한번 새긴 기회였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드물게 창작되기는 하지만, 이런 좋은 작품들은, 삶에 있어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왜 예술을 보호하고 아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07년 4월 1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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