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원제는 <Inside Llewyn Davis> 그러니까 <르윈 데이비스의 내면>. 타이틀대로라면 르윈의 내면 변화를 보라는 것 같다. 고로 이 영화를 보다 재미있게 보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이 해보기를 권한다. 나 스스로 르윈이 된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을 보듯 말이다. 르윈이 맞닥뜨리는 사건과 상황에서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지... 르윈의 선택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리고 르윈의 선택과 나의 선택이 어떻게 다른지 고민해본다.



이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1961년 어느 추운 겨울날 르윈은 뉴욕의 가스등이라는 바에서 연주를 마치고 나서 바깥으로 나가 한 노신사에 두들겨 맞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두운 바 뒷골목을 벗어나는 노신사를 뒤로 하고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한다 르윈이 왜 맞았는지 궁금하지 않냐고. 그리고 요청한다. 알고 싶다면 르윈 데이비스의 내면으로 들어오겠냐고.


이어서 영화는 르윈이 어떤 인물인지 보여준다. 기타 하나 들고 포크송을 부르며 생계를 유지하는 그냥 그런 포크 가수. 하지만 대중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기보다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나름 예술 지향적인 뮤지션.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반면, 르윈이 수준낮다고 생각한 노래를 부르는 트로이나 짐 같은 가수는 인기를 끌고 좋은 기획사도 있고 대형 레코드회사에서 녹음도 한다.


결국 르윈은 가난하다. 집도 없어 남의 집을 전전하며 다니고 코트 한벌 없어 벌벌 떨며 다닌다. 듀엣으로 활동한 동료는 자살까지 한다. 자신의 직업으로 돈을 못버니 삶은 그야말로 궁핍 그 자체다. 설상가상 전 여친 진은 너의 아이를 임신한 것 같으니 낙태 비용을 달라하고 하면서 루저라 몰아부치고, 전전 여친은 자신의 아이를 지우지 않고 낳아 어디선가 키운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르윈의 삶은 궁극의 절망으로 향해 가는 것 같다.


눈 내리는 날 르윈은 코트도 없이 구멍난 양말을 신고 이차 저차 얻어타고 시카고의 한 프로듀서 그로스만에게 찾아가 기획사 오디션을 보게 된다. 속물이 되고 상업적 성공을 기대하면서 부른 노래는, 아이를 살려달라는 간청을 하며 아이를 낳다가 죽은 헨리 8세의 3번째 부인에 대한 이해하기 힘든 가사의 노래. 전혀 대중적이지 않은 이 노래를 들은 프로듀서는 르윈에게 이야기한다. "Good... I don't see here a lot of money..." 르윈이라는 인물에 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이다.



성공하는 뮤지션이 되기 위한 틀에 우겨 넣을 수 없는 예술은 그만하고 딴따라를 하라는 그로스먼의 조언을 뒤로하고 뉴욕으로 돌아온 르윈은 음악을 버리고 보통의 사람들처럼 살기로 한다. 그토록 싫던 아버지의 삶이었던 선원이 되기로 하지만 그것도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협회비가 밀려 배를 탈 수 없다더니 힘들게 마련한 협회비를 내고 나니 이번엔 선원 자격증이 없어진다. 아 이 놈의 삶이란 참....


기타를 안잡겠다 했건만 결국 다시 가스등으로 돌아온다. 기타를 들고 노래를 할 예정이다. 공연 전날 찾은 가스등. 사장은 진과 잤다고 떠벌린다. 르윈은 진 때문에 자신이 다시 가스등 무대에서 연주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인가 분노하며 연주하던 뮤지션을 비아냥거리다가 쫓겨나지만 뭐 다음날 무대에서 노래를 한다. 그리고 노래를 마치고 바 뒷골목에서 다시 한번 노신사에게 두들겨 맞게 된다. 영화는 이렇게 끝난다.


<인사이드 르윈>은 뉴욕에서 시카고, 시카고에서 뉴욕... 르윈이 겪은 일주일간의 오디세이다. 트로이 전쟁 후 귀국까지 오디세우스(율리시즈)의 10년간 시련과 모험의 대서사시인 <오디세이아>의 뉴욕 예술가 버전이라고나 할까... 음악에서 벗어나 방랑하다 다시 음악으로 돌아왔고, 르윈이 데리고 다니던 고양이 율리시즈도 뉴욕을 떠돌다가 제 집으로 돌아가고, 잠깐이나마 다른 삶과 직업을 전전하던 르윈도 다시 기타를 들고 가스등 무대에 오른다. 다시 원점으로... 라고 해도 좋고 새로운 출발이라 해도 좋다.


단 되돌아 온 원점은 이전의 반복은 아닐 것이다. 달라진 부분이 있다. 결굴 이 차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내가 삶에 대하는 의미가 달라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르윈은 자신을 두들겨 패고 떠나는 노신사에게 혼잣말로 이야기한다. Au Revoir... 영어로는 see you again 의 의미인데 아마도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노래를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루저의 시대에서 급속하게 속물의 시대로 변해버린 이 세상. 이제는 비천한 신분이 되어버린 르윈같은 예술가의 삶을 살면서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고민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자발적 잉여의 삶을 사는 것일 수도 있고 아직 속물이 되지 못한 잉여일수도 있겠다. <인사이드 르윈>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코엔 형제는 아마도 이 속물의 시대에 세상 어딘가 숨어 있을 또 다른 르윈들에게 힘겨운 오디세이 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삶의 속성을 보여주면서 그래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며 너무 좌절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렇게 보면 감독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일수도 있겠다)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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