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88만원 세대에 관한 이야기 <Reality Bites 청춘스케치>, 바보 상자 텔레비전의 폐해에 관한 이야기 <The Cable Guy>, 글로벌 기업의 노동 착취에 관한 이야기 <Zoolander> 등등, 꽤나 유치한 코미디에 강한 메세지를 담은 작품들을 연출하면서 희극과 비극을 묘하게 뒤섞는 재주를 보여왔던 벤 스틸러는 2013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를 공개한다.


제임스 서버라는 작가의 1939년 단편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을 영화화, 아니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라기보다는 실은 그 설정을 가져다가 거의 새롭게 창작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대적 상황에 맞게 재해석을 한, 이 영화 역시 현실의 비극과 상상 속 희극을 묘하게 뒤섞은 작품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벤 스틸러의 이전 영화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보이지만 이 영화 역시 그 완성도가 높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영화가 끝난 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강한 매력이 있다. 실은 벗어나고자 했던 그 괴로운 현실에 돌파구가 있을 수도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음악이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하고, 그렇게 현실에 도전하며 치열하게 사는 삶이야말로 활화산보다도 아름다울 수 있는 풍경이 될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 이 영화는 메세지와 음악과 영상을 버무려 만든 아름다운 한 편의, 삶에 대한 헌정 서사시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영화 내용상 보더라도 영화의 주요 배경이자 월터가 오랜 시간 일했지만 떠나야 하는 그리고 2007년 실제로 폐간한 LIFE 매거진에 대한 헌정 영상같아 보이기도 한다. 위 포스터 문구처럼 상상을 멈추고 삶을 시작하라, 그러면 벗어나고픈 현실은 상상에서나 가능했던 놀라운 경험으로 가득차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보여준다.


월터같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하는 상상, 나를 괴롭히는 상사에 어퍼컷을 날리고 싶지만 주먹이 날아가는 상상을 멈추자. 나의 삶을 경이롭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최소한 거기에 있지는 않다.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아프리카 초원을 얼룩말과 함께 달리는 상상을 멈추자. 위대한 자연과 호흡하는 그 놀라운 체험은 당장 아프리카로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는 열망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릴수록 현실도피적인 상상은 더해간다. 오랫동안 이러한 상상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도전하라고 힘을 주는 음악일 수 있으며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같은) 내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그 도도함에 대해 깨닫게 되는 설범의 자태에 대한 열망일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을 쫓아 모든 것을 과감히 내던질 수 있는 무모함과 열정이기도 하다.



그 열정의 화신인 라이프 매거진 사진작가 션의 25번째 사진은 월터로 하여금 전세계 오지를 돌아다니며 삶을 다채로운 경험(상상에서나 가능했던)으로 채우게 하였고, <Space Oddity>는 월터에게 자신감을 주었으며, 그래서 상상을 멈추고 현실에 도전한 그 결과는 마치 <타인의 삶>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한 감동으로 되돌아온다. 션이 월터에게 선물한 삶의 정수가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하게 되는 순간 당신의 입가에는 분명히 긍정의 미소가 번질 것이다.


내일 내가 맞이할 삶, 어쩌면 어제와 같고 오늘과도 별반 다르지 않을 내일.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어디 히말라야 산중 깊이 살며 어쩌다가 볼 수 있는 설범과 조우하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나 울부짓는 활화산의 그 거대한 연기 속으로 뛰어드는 무모함 넘치는 아주 특별한 경험만큼이나 특별할 수도 있으니 내일을 한번 열정을 다해서 뛰어보는 것이 어떠니,라고 벤 스틸러는 넌지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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